지난달 24일 오전 8시 30분, 중국의 공정거래위원회인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이 “알리바바가 기업들에 양자택일(兩者擇一)을 강요한 혐의를 조사하기로 했다”는 한 줄짜리 보도자료를 냈다. 알리바바가 입점 기업들에 징둥(京東) 등 다른 플랫폼에서 물건을 못 팔도록 강요한 혐의를 조사하겠다는 뜻이었다. 이 소식으로 홍콩 증시의 알리바바 주가는 8% 가까이 급락했다. 중국 정부가 알리바바의 과거 백화점 인수를 문제 삼아 50만위안(약 8300만원)의 벌금을 매긴 지 불과 열흘 만에 나온 ‘관치(官治)’ 공세였다. 이틀 후엔 더 충격적인 내용이 발표됐다. 인민은행,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외환관리국 등 4기관은 알리바바의 핀테크 관계사인 앤트그룹에 “본업인 결제 업무로 돌아갈 것”과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할 것”을 주문했다. 사실상 회사를 쪼개라는 명령이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

이 모든 소동은 지난해 10월 말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80% 지분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앤트파이낸셜의 상장을 앞두고 중국 금융 당국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비롯됐다. 이후 중국 정부는 앤트파이낸셜 상장을 전격 중단시키면서 역공에 나섰다. 알리바바 주가는 이후 두 달만에 30% 가까이 떨어졌고, 텐센트와 메이퇀뎬핑, 바이두 등 다른 중국 대표 테크 기업들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그동안 투자자들이 간과해 온 중국의 ‘관치(官治) 리스크'가 투자의 주요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중국 정부 “무분별한 자본 확산 막는다”

중국 정부는 중국 테크 기업 투자자들에게 우군(友軍) 같은 존재였다. 알리바바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는 중국 정부가 2009년 무렵부터 페이스북·구글 등 주요 미국 IT(정보기술) 서비스 사용을 사실상 금지하면서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가 중국 인터넷 시장을 독차지한 덕분이다.

이번에 거론된 알리바바의 독점 문제는 중국 정부가 사실상 눈감아준 것이다. 예컨대 일본계 의류업체 유니클로는 2015년 알리바바의 라이벌 징둥에 입점했다가 알리바바로부터 ‘양자택일’을 요구받았다. 시장 점유율이 50%가 넘는 알리바바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기에, 유니클로는 3개월 만에 징둥에서 철수했다. 2019년엔 일부 대형 가전 업체들도 알리바바로부터 유사한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거대 유통망을 가진 알리바바의 횡포에 대한 고발이 잇따랐으나 중국 당국은 침묵을 지켰다.

주요 중국 테크 기업의 최근 한달 주가 변동률

중국 정부의 태도 변화는 관영 언론 인민일보 사설에서 드러났다. 인민일보는 지난달 14일 자에서 “(중국의) 테크 기업들이 진짜 혁신은 도외시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고 비판했다. 그 이틀 뒤인 12월 16일 막을 내린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는 새해 중점 임무 중 하나로 ‘반(反)독점 규제 강화’를 제시했다. 경제 성장을 강조했던 이전의 기조와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블룸버그는 최근 알리바바 소동을 두고 “태양을 향해 날다 추락한 이카루스처럼, 마 회장도 지구로 떨어지고 있다”고 평했다. 빅터 시 UC샌디에이고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는 중국 정부가 ‘누가 중국의 진짜 주인’인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확실한 경고를 던진 것”이라며 “공산당 지도부와 호흡을 맞추지 않는 기업은 언제든 ‘스톱 버튼’이 눌러질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중국 테크기업 투자자 손실 커질 수도

중국의 독점금지법은 ‘우월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점이 인정되면 전년도 매출의 최대 10%를 벌금으로 매길 수 있게 돼 있다. 이 법이 중국 경제계에서 화제가 되는 건 2008년 제정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업, 통신업 등 많은 분야에서 수많은 공룡 기업이 등장했으나, 중국 정부가 이 법을 적용한 적은 거의 없었다. 기업의 덩치를 키워 세계시장에서 활약하게 하는 게 낫다는 계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 기조에 변화 조짐이 일면서 알리바바와 위챗을 운영하는 텐센트, 음식배달업체 메이퇀뎬핑 등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플랫폼 기업들의 앞날도 어두워지고 있다.

현 시점에선 역대 최대 규모의 IPO로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던 앤트파이낸셜의 운명이 최대 관심사다. 중국은 지난달부터 앤트파이낸셜을 겨냥, 새 규제를 속속 도입 중이다. 금융자산 1000억위안 이상인 비(非)은행 금융사에 금융지주사를 설립하게 하고, 지주사 면허를 받지 못하면 금융회사 지분을 팔거나 경영권을 포기하게 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초 앤트그룹의 상장이 전격 중단된 이유 중 하나도 금융지주사 면허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소액대출업체가 대출 재원을 조성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는 것도 자본금의 4배 이하로 제한했다.

앤트그룹이 이 모든 규정을 따르려면 자본금을 대폭 늘려야 한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앤트그룹이 새로운 투자자를 찾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앤트그룹은 2018년 6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국부펀드, 칼라일 등 총 10곳의 기관투자가로부터 140억달러(약 15조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하지만 해체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대규모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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