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1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술은 개(dogs)를 위한 것이다.”

미국 IT(정보 기술) 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지난달 11~14일 열린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인 CES(소비자 가전 전시회)를 소개하며 이런 표현을 썼다. 미국 자동문 제조업체 체임벌린 그룹이 만든 반려견 전용 자동 출입문 ‘펫 포털(Pet Portal)’이 이 행사의 터줏대감인 삼성전자와 일본 소니의 신제품 못지않게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펫 포털은 전 세계 1958기업이 참가한 올해 CES에서 수많은 첨단 제품을 제치고 단 27제품에만 수여하는 ‘최고 혁신상(Best of Innovation)’까지 받았다.

펫 포털에는 실시간 영상 전송(스트리밍)과 양방향 오디오, 블루투스 접속, 움직임 감지기, 전용 앱까지 다양한 최신 기술이 적용됐다. 블루투스 목걸이를 착용한 반려견이 펫 포털을 통해 출입할 때 자동으로 문이 여닫히고 스마트폰 앱으로 알림 메시지도 보내준다. 보안이 걱정된다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영상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줄 수도 있다. 미래 주택에서나 볼 법한 스마트 도어 기술이 반려견을 위해 사용된 것이다. 반려동물을 위한 첨단 기술, 이른바 ‘펫 테크(Pet technology)’의 대표적 사례다.

◇초고속 성장하는 펫테크 산업

펫 테크 산업은 반려동물 관련 시장은 물론, 첨단 기술 업종 중에서도 성장 그래프가 가장 가파른 분야에 속한다. 시장조사 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펫 테크 산업 규모는 2018년 기준 45억달러(약 5조300억원)로 매년 24%씩 성장, 2025년에는 200억달러(약 22조3600억원)에 이르리라 전망된다. IoT(사물 인터넷)과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의 기술이 적극적으로 적용되면서 펫 포털 같은 첨단 제품이 계속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펫펄스’ 같은 펫 테크 제품은 반려견과 소통을 도와준다. 반려견의 목에 걸어 놓으면 짖는 소리를 실시간으로 분석, 행복·슬픔·불안·분노·안정 등 5가지 감정으로 가려서 알려준다. 정확도는 8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80여 견종의 1만 가지 짖는 소리를 기반으로 서울대 융복합대학원 음악오디오연구소와 함께 개발한 AI 알고리즘 덕분이다.

실종된 반려동물을 찾는 데 안면 인식 기술이 쓰이기도 한다. 실종된 반려동물 사진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현재 동물 보호소에서 보호 중인 개와 고양이의 사진과 비교해 찾아준다. 미국의 ‘파인딩 로버'라는 기업이 이런 서비스를 개발해 미국 전역의 동물 보호소와 제휴를 확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1만5000마리 이상의 반려동물을 주인 품으로 돌려보냈다.

일본 스타트업 ‘토레타캣’이 개발한 ‘토레타’는 고양이 화장실 제품으로, 고양이의 배변을 분석해 건강 상태를 진단해주는 기능이 있다. 월 500엔(약 5300원)에 구독 형식으로 빌려 쓸 수 있다. 반려묘의 소변량과 빈도, 체중 변화를 지속적으로 체크해 스마트폰 앱으로 알려준다.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우고 있어도 문제없다. 화장실 안에 인공지능 카메라가 설치돼 각각의 고양이를 식별하고 별도로 분석해주기 때문이다. 만성 신부전 등 고양이들이 걸리기 쉬운 비뇨기 질환을 조기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반려동물 인식 바뀌며 지갑 열려

펫 테크 산업의 급성장 배경엔 반려동물을 사람과 같이 대하는 ‘펫 휴머나이제이션(pet-humanization)’ 현상이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저출산·비혼·고령화 등으로 종래 가족 구성원의 빈자리를 반려동물로 대체한 가구가 늘었다”면서 “이로 인해 부재 시 반려동물을 돌볼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1인 가구와 이른바 ‘딩펫족'(아이 없이 반려동물을 기르며 사는 맞벌이 부부)이 펫 테크의 가장 큰 소비자라는 것이고, 이들이 증가하면서 펫 테크 시장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변화는 펫 테크 제품에 대한 씀씀이가 커지는 것으로 연결됐다. 첨단 기술이 적용된 제품일수록 가격도 높기 마련이다. 자동으로 모래를 갈아주고 배설물을 치워주는 전자동 고양이 화장실은 가격이 통상 30만~40만원대이고, 100만원이 넘는 제품까지 있다. 하지만 수요가 넘쳐 모방 제품이 우후죽순 생겨날만큼 인기다. 120만원대 전자동 고양이 화장실을 사용 중인 이모(47)씨는 “자식에게 돈 아끼는 부모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실제로 전 세계 펫 테크 시장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반려동물 지출 규모는 2005년 360억달러(약 40조2600억원)에서 작년 990억달러(약 110조7300억원)로 2배 가까이가 늘었다. 심지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2008~2010년)에도 줄지 않고 연평균 5.4% 성장했다. 신종 코로나로 인한 실물 경기 침체에도 펫 산업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