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지수가 바닥(1457.64)을 찍은 지난해 3월부터 사상 첫 3200을 돌파한 올해 초까지, 지난 1년간의 주식시장에선 월급쟁이들의 ‘투자 혁명’이 일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개월 가까이 쭉 이어진 상승장에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주요 6대 증권사에선 총 723만개의 신규 계좌가 개설됐고, ‘동학개미운동’부터 ‘주린이(주식 초보자)’까지 다양한 신조어가 쏟아졌다.
난생처음 증시에 뛰어든 월급쟁이 투자자들은 믿을 만한 조력자가 부족했다. 자연스레 포털사이트 주식 종목토론방(종토방)이 북적대기 시작했다. 공짜로 좋은 투자 정보도 얻고, 종목 공부도 하겠다는 심산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주식 광풍의 시대, 종토방은 고수익에 눈이 먼 사람들의 욕망이 부글대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려운 ‘위험한 놀이터’였다.
◇주린이 ‘뇌동매매’의 주범
중견기업 직원 홍모(30)씨는 지난해 12월 초 종토방에서 ‘국내 바이오업체 에이비프로바이오 자회사가 신종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영국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 계열과 합작했으니 내년에 유망할 것’이라는 분석글을 봤다. 곧바로 매수에 나서 잠깐 짭짤한 수익을 내는가 했지만, 두 달 만에 주가가 2990원에서 975원으로 3분의 1 토막 나면서 적잖은 손실을 봤다. 추가 투자를 하려다 현금 마련에 실패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홍씨는 “종토방에 다시 가 보면 요즘도 ‘바닥 찍었으니 이제 반등이다. 풀매수(있는 돈을 모두 투자해 주식을 사는 것) 간다!’ 같은 글이 널려 있는데, 저런 소리를 의심도 없이 믿었다 생각하니 한심할 따름”이라고 했다.
주식 초보자들에게 홍씨 얘기는 남 일이 아니다. 자기 주관 없이 남의 말만 믿고 주식을 매매한다고 해서 ‘뇌동매매’란 말이 나올 정도다. 부화뇌동(附和雷同)에서 차용한 말이다. 백찬규 한국투자증권 자산전략부장은 “과거엔 종토방에 가치 있는 의견 교환이 이뤄졌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의 종토방은 광고와 낚시, 찬반 선전으로 가득 차 (토론방이란) 제 기능을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초보 노린 ‘사냥꾼’의 놀이터
종토방 게시판에는 사냥감을 노리는 ‘늑대’도 적지 않다. 이른바 ‘리딩방(전문가가 매매를 이끌어주는 모임)’ 장사가 대표적이다. 운영자가 종토방마다 돌아다니면서 그럴듯한 정보와 링크를 게시해 소셜미디어 채팅방으로 유인한다. 처음 몇 차례는 무료로 수익 실현을 도와주다가 차츰 유료 메신저방으로 끌어들인다.
진지하게 주식 매매를 돕고 돈을 버는 운영자도 있지만, 사기적 목적에 악용되는 리딩방도 있다. 가입금을 받고 메신저 방을 폭파시키거나, 매수하라고 해놓고 자기 보유 주식을 매도해 떠넘기는 것이다. 김모(33)씨는 “시키는 대로 투자를 했다가 크게 물렸는데 갑자기 ‘초장기 투자니 계속 보유하라’고 말을 바꿔 어안이 벙벙했다”고 했다. 그는 이 리딩방 회원비로 10개월 동안 매달 36만원씩 냈다.
종토방과 리딩방이 이른바 ‘작전(주가시세조작)’에 활용되기도 한다.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는 “시가총액이 작은 종목이면 시세 조작도 불가능하지 않다”면서 “악의를 가진 사람들이 처음부터 노리고 (종토·리딩방에) 들어왔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리딩방 피해가 잇따르자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6월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팬심이 빚은 ‘株我一體’
“오늘은 곰(熊)탕 제대로 먹는 날” “메디충들 설쳐댄다 살충제 좀 뿌려라” 지난해 대웅제약과 메디톡스 간에 보톡스 균주 분쟁이 벌어지자 응원과 야유가 주식 게시판을 점령했다. 검찰과 식약처 조사 결과, ITC(국제무역위원회) 판정이 언급될 때마다 두 회사 주가가 요동치면서 주주들이 수익과 손실을 보는 상황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비방을 늘어놓는 이들을 ‘안티’, 반대로 찬양 글을 올리는 이들을 ‘찬티’라고 부른다.
안티·찬티는 의도했든 안 했든 허위·과장 정보를 자주 게시해 다른 주주들에게 금전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주주들이 ‘소망적 사고’를 하다 보니 정보를 선택해 받아들이는 상태까지 갔다”면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사랑하는 것처럼 주식을 좋아하게 되고, 극단적으로는 주식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주아일체(株我一體)’에 이른 것”이라고 봤다.
◇정보는 뒷전, 손해 본 투자자 조롱
아예 주식 정보는 뒷전이고 손실을 본 투자자들을 놀리는 글을 올리려 종토방을 찾는 이들도 등장했다. 예컨대 이런 내용이다. “포장마차에서 물린 주식 때문에 울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종목을 묻더라. 나도, 그 사람도 종목명을 교환하고 말없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오늘 19% 급락했다. 더 떨어질 거다. 하지만 나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이유를 아는가? 나는 이 종목을 안 샀기 때문이다.”
종토방은 정녕 주식 투자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걸까. 전문가들은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한다. 홍진채 대표는 “종토방에서 양질의 정보를 얻을 가능성은 ‘0(제로)’에 가깝다”며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보는 게 제일 유익하고, 그렇지 않다면 정제된 경제·금융 전문가의 글을 보고 공부하는 게 차라리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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