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직장인 박모(31)씨는 올해 초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여자친구를 만났다. 작년 말부터 꾸준히 자신을 소개하는 ‘셀소(셀프 소개팅의 준말)’ 글을 올린 끝에 거둔 성과다. 박씨는 “원래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했지만, 신종 코로나 사태로 사람 만날 기회가 없어 블라인드 앱을 이용하게 됐다”고 했다.

블라인드는 본래 직장인 간 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한 커뮤니티 앱이지만, 최근 연인을 찾는 ‘블라인드 데이팅(blind dating·잘 모르는 남녀가 처음 만나는 것) 앱’으로도 급부상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이런 목적의 수요가 폭발했다. 지난 한 해 셀소나 미팅을 주제로 올라온 게시글은 총 11만건으로 전년(5만5000건) 대비 2배 증가했다. 블라인드 운영사인 팀블라인드는 아예 직장인 미팅 전용 앱 ‘블릿’을 지난해 11월 출시했다.

일러스트=김영석

◇주식 시장 흔드는 데이팅 앱

블라인드뿐만이 아니다. 모바일 시장분석 서비스 앱엔이프에 따르면 작년 12월 국내 데이팅 앱 사용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3% 증가했다. 구글 앱 스토어에서도 매출 순위 상위 25위 중 데이팅 앱 등 만남 주선 앱이 44%(11개)였다. 이런 트렌드는 전 세계적이다. 모바일 시장 조사업체 ‘앱애니’는 최근 “작년 한 해 데이팅 앱 이용자들의 지출 규모는 30억달러(약 3조4000억원) 이상으로 전년 대비 15% 성장했고 앱 다운로드 건수는 5억6000만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에서 많이 쓰이는 데이팅 앱 ‘틴더’는 게임 분야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소비자 지출이 가장 높은 모바일 앱으로 집계됐다. 코로나 사태 최대 수혜기업이라 불리는 틱톡(2위), 유튜브(3위), 넷플릭스(6위)보다 위다. 앱애니는 “데이팅 앱이 대면 만남 제한에 더 탄력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폐쇄 조치가 계속됨에 따라 올해도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바야흐로 온라인 데이트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덕분에 데이팅 앱 업체들의 기업 가치도 폭등했다. 틴더와 매치, 힌지 등의 데이팅 앱을 보유한 미국 매치그룹의 주가는 지난 1년 새 60달러대에서 150달러대로 2.5배가 됐다. 지난달 11일에는 틴더의 경쟁 서비스인 데이팅 앱 범블(Bumble)이 나스닥에 상장, 시가총액(공모가 기준) 21억5000만달러(2조4300억원)를 기록했다. 2월 중순까지만 해도 미국 증시 최대 IPO였다.

◇'영상 데이트'도 급성장

비대면이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영상 데이트도 붐이다. 작년 5월 미국에선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활용한 가상 데이트 방송 ‘줌 배츨러렛(Zoom Bachelorette)’이 큰 인기를 끌었다.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와 벤처 캐피털에 다니는 두 명의 직장인이 코로나 기부금을 모으겠다며 만든 단발성 기획 프로그램에 총 12명이 참가했다. 이들이 줌을 이용해 온라인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동영상 플랫폼 트위치를 통해 실시간 방송됐다. 미국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 15달러 이상을 기부하고 보도록 한 일종의 ‘유료 방송’이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1000명이 넘는 시청자가 몰렸고 2주 만에 4만2000달러(4740만원)가 모였다.

화상 데이트는 단순 매칭에 머무르던 기존 데이팅 앱에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틴더는 작년 10월 말부터 화상 데이트 서비스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중국 텐센트 역시 라이브 스트리밍 기반의 화상채팅형 데이팅 앱 ‘환위(歡遇)’를 작년 말 정식 출시했다. 범블과 글램 같은 데이팅앱에도 화상 채팅 기능이 도입돼 있다.

◇데이팅 앱 만남이 더 오래간다

온라인 데이트는 세대 변화와 함께 ‘대세’가 됐다. 젊은 세대일수록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을 접해 온라인으로 맺은 관계에 대한 거부감이 낮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지난해 6월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25~39세)는 14.3%가, Z세대(15~24세)는 22.3%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을 ‘친구’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X세대(40~50세)의 10.7%, 86세대(51~59세)의 11.3%보다 훨씬 높다.

데이팅 앱을 통해 만난 관계가 더 오래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온라인으로 만난 사이는 통상 단기적이거나 가벼운 관계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위스 제네바대학 연구진이 지난해 말 내놓은 연구 결과는 이런 상식를 깼다. 데이팅 앱으로 만난 커플의 관계 만족도는 오프라인에서 만난 커플과 다를 바 없고, 오히려 함께 살려는 욕구가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오히려 여성의 경우 가까운 미래에 임신하길 원하는 경향이 더 높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는 최근 10년 내 연애 경험이 있는 성인 3235명의 사례를 비교분석한 결과다. 연구를 주도한 지나 포타르카 제네바대 교수(사회과학)는 “언론은 데이팅 앱이 관계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지만, 이런 사실을 입증할 증거는 아직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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