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의균

프랑스 신경공학 스타트업 ‘넥스트마인드’는 지난해 말 뇌파로 컴퓨터와 VR(가상현실) 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 기기를 399달러(약 45만원)에 출시했다. 이 기기의 센서 부분이 머리 뒤통수에 붙도록 쓰고 블루투스 방식으로 PC와 연결하면 센서에 달린 9개 전극이 대뇌 시각피질에서 나오는 뇌파를 디지털 신호로 전환해 PC에 전달한다. 영화에서처럼 자유롭지는 않지만, 시선과 생각만으로 영상 재생이나 간단한 게임을 조작할 수 있다.

공상과학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생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사물을 조작하는 기술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른바 BCI(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이다. 뇌파 형태로 전달되는 두뇌 속 전기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한 다음, 그 내용을 해석해 전자 기기나 로봇을 조작한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지만, 두뇌에서 나오는 미약하지만 복잡한 전기 신호를 측정하는 첨단 센서(전극 장치)와 AI(인공지능) 기반 데이터 분석 기술이 발전한 2010년대 들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 CEO(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와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등 세계적 기업가들이 앞장서 BCI 기술의 본격 상용화를 이끌고 있다.

BCI 기술 분야에서 일론 머스크(위)의 뉴럴링크와 마크 저커버그(아래)의 페이스북 간 주도권 경쟁이 뜨겁다. 뉴럴링크는 BCI로 인간 두뇌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려 하고, 페이스북은 미래형 가상·증강현실 서비스에 BCI를 결합하려 한다. /AP·Verge

◇인간과 컴퓨터를 하나로 연결

BCI 기술에 먼저 뛰어든 것은 일론 머스크다. 그는 2016년 BCI 스타트업 ‘뉴럴링크’를 창업해 지금까지 1억5800만 달러(약 1800억원)를 투자했다. 이 중 1억달러가 자신의 사재(私財)였다. 머스크는 BCI를 이용해 인간과 컴퓨터를 하나처럼 연결, 인간 두뇌의 잠재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려 한다. 생각만으로 로봇이나 기계 장치의 복잡한 움직임을 제어하고, 컴퓨터에 프로그래밍 명령을 내리는 건 기본이다. 역으로 컴퓨터에 저장된 대량의 정보를 시각이나 청각 같은 감각 기관을 통하지 않고, 바로 인간의 뇌에 입력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머리에 꽂은 전극을 통해 헬리콥터 조종법을 순식간에 입력받는 것과 비슷하다.

BCI는 외과 수술로 두개골 속 뇌 표면에 센서를 심어 직접 뇌의 전기 신호를 읽는 ‘삽입형(Invasive)’과 헤드셋 같은 장치로 두피를 통해 간접적으로 뇌의 신호를 읽는 ‘비(非)삽입형(Non-Invasive)’ 두 가지가 있다. 뉴럴링크는 뇌와 정보를 주고받는 정밀도를 높이고자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50원짜리 동전 크기의 센서 칩을 삽입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다만 뇌에 직접 전극을 꽂는 기존 삽입형 방식이 아니라 대뇌 피질을 감싸는 외부 보호막인 경막(dura)에 칩을 심어 센서의 탐침이 일으키는 염증이나 감염 등 뇌 손상 우려를 불식하려 한다.

삽입형 방식은 더 많은 뇌 신호를 측정할 수 있지만, 두개골을 건드리는 외과 수술이 병행된다는 점에서 진입 장벽이 높다. 그래서 뉴럴링크는 관련 수술을 마치 라식 수술처럼 쉽게 만들어주는 칩 이식 수술 로봇부터 개발했다. 지난해 8월 공개된 이 로봇은 1000개 이상의 전극을 뇌혈관을 피해 정밀하게 심을 수 있고, 1시간 내에 수술을 끝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창완 한양대 뇌공학연구센터장은 “뉴럴링크의 수술 시스템이 보급되면 삽입형 BCI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뉴럴링크가 BCI 플랫폼(기반 기술) 회사로 거듭날 수도 있다”고 했다.

자료=밸류에이츠

◇5~10년내 본격 상용화

반면 저커버그는 BCI를 VR과 AR(증강현실) 기기와 결합해 쓰는 데 관심이 많다. BCI가 키보드나 마우스, 조이스틱을 대체토록 하는 것이 목표다. 뉴럴링크처럼 사람이 컴퓨터에서 정보를 받는 것은 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헤드셋 형태의 비삽입형 BCI 기술을 개발 중이다. 그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증강현실을 이용하거나 PC와 직접 통신하겠다며 머리에 구멍을 뚫고 싶어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19년 7월에는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연구팀과 함께 생각만으로 컴퓨터에 글자를 입력할 수 있는 헤드셋 기술을 선보였고, 지난달 18일에는 뇌가 손 근육으로 보내는 운동 신호를 해석하는 손목 밴드도 개발했다. 이르면 올해 말 출시 예정인 AR(증강현실) 안경에 먼저 적용된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순간 눈앞에 떠 있는 증강현실 화면이 원하는 대로 조작되는 식이다. 페이스북은 관련 스타트업(컨트롤랩스) 인수에 최대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조사 기관 밸류에이츠는 BCI 시장 규모가 연평균 14.3%씩 성장해 오는 2027년에는 35억85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향후 5~10년이면 BCI 기술이 대중에 보급되리란 예측도 나온다. 비삽입형 BCI 기술을 개발 중인 김래현 한국과학기술원(KIST) 책임연구원은 “대부분의 기술은 구현된 상태로, 반응 속도를 계속 개선해 가는 단계”라고 밝혔다. 수술이 필요 없는 삽입형 BCI도 개발되고 있다. 호주 멜버른대학 연구팀이 미국 신경공학 스타트업 ‘신크론’과 함께 개발한 ‘스텐트로드(Stentrode)’는 목 혈관에 작은 구멍을 낸 뒤 센서를 삽입해 뇌혈관으로 보낸다. 연구팀은 작년 10월 전신 마비 루게릭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인체 실험에도 성공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이 기술을 통해 90% 이상 정확도로 타자를 치거나 마우스 커서를 조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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