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회장의 일본 소프트뱅크가 최근 노르웨이 기업 ‘오토스토어’의 지분 40%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투자액은 무려 28억달러(약 3조1290억원)다. 이 회사가 한국 인터넷 쇼핑업체 쿠팡에 투자한 총액(30억달러)과 맞먹는다. 오토스토어의 전체 기업가치는 77억달러(약 8조6000억원)로 평가됐다.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12월 소프트뱅크에서 사들인 미국 로봇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당시 11억달러)의 7배다. 대체 어떤 기업이기에 될성부른 기업만 찍어서 투자한다는 손 회장이 3조원이 넘는 돈을 단번에 털어 넣었을까.

칼 요한 리어<사진> 오토스토어 CEO(최고경영자)는 Mint와 단독 인터뷰에서 “요즘도 물류 창고는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운영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기술은 상품의 적재부터 피킹(출고할 상품을 창고에서 꺼내는 일)까지 모두 로봇이 한다”고 했다. 이른바 ‘창고 자동화(warehouse automation)’라고 불리는 첨단 물류 기술이다. 리어 CEO는 “온라인 주문·판매가 오프라인을 앞지르고, 신종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자동화 창고가 대세가 됐다”고도 했다. 주문 처리와 배송 속도를 크게 높여주면서, 인건비 부담까지 확 줄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온라인 판매만 전담하는 다크스토어(도심 내 소규모 창고형 매장)까지 등장하며 창고 자동화 기술의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의 기술은 이미 전 세계 35국 300여 기업의 600여 개 물류 창고에 적용 중이다. 월마트, 화이자, 인텔, DHL, 파나소닉, 구치, 이케아, 지멘스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쟁쟁한 기업들이다. 롯데쇼핑의 온라인 전용 배송센터 ‘오토프레시 의왕센터’도 오토스토어의 기술로 운영된다. 2019년 국내 유통업계 최초로 자동화 물류 시스템을 도입한 곳이다. 소프트뱅크는 이런 자동화 물류 시스템이 글로벌 대기업에서 중견·중소기업으로, 선진국에서 중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급격히 확산될 것으로 보고 베팅(betting)을 했다. 오토스토어의 매출은 지난 2015년 4220만달러(약 471억원)에서 작년 1억8230만달러(약 2037억원)으로 5년 만에 4배 이상 성장했다.

노르웨이의 물류 자동화 기술 업체 오토스토어는 ‘큐브 스토리지 자동화’라는 독자적 기술로 기존 팔레트랙(오른쪽 아래) 방식보다 더 많은 상품을 보관하면서 자동화 수준도 끌어올리는 혁신을 이뤄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줄지어 있는 선반에 물건을 차곡차곡 쌓는 대신, 창고 전체를 수백~수만개 직육면체 박스로 구성된 벌집처럼 만들어 이 박스마다 상품을 저장할 수 있게 만든 것이 비결이다. 칼 요한 리어 오토스토어 CEO(왼쪽)는 “적재 용량은 3~4배 늘려주고. 토지 비용은 25~50%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토스토어

노르웨이의 물류 자동화 시스템 업체 오토스토어는 원래 전자부품을 유통하는 회사였다. 1996년 ‘하텔란드’라는 기존 사명(社名)과 주력산업을 모두 바꾸며 자동화 창고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 분야에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기술 판매를 시작한 2004년부터다. 물류 업계의 입소문을 타면서 매년 실적이 크게 성장했다. 출시 첫해 이 회사의 물류 로봇 판매량은 5대에 불과했지만, 지금까지 판매한 로봇은 2만대에 달한다.

오토스토어가 독자 개발한 창고 자동화 기술은 ‘큐브 스토리지 자동화’라고 불린다. 알루미늄 프레임으로 짜인 큐브형 공간(그리드)과 그 안을 채운 플라스틱 상자, 프레임 상부에서 초속 3.1m의 속도로 이동하는 무선조종 로봇들로 구성돼 있다. 테트리스 게임처럼 로봇들이 그리드 안의 상자를 넣거나 빼고, 필요한 곳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기존에 쓰이던 ‘팔레트 랙(pallet rack)’이라는 선반형 방식과 비교해 저장 밀도가 훨씬 높다. 선반과 복도가 사라지면서 창고 용량을 키우고, 줄어든 면적으로 부동산 비용도 아낄 수 있다. 격자 형태 레일을 오가는 로봇이 사람이 하던 ‘피킹(출고할 상품을 꺼내오는 일)’ 작업까지 하므로 인건비를 더 아낄 수 있다.

큐브 스토리지 자동화

◇상품 적재는 물론 출고도 자동

—기존 물류 자동화 기술과 또 다른 차별점이 있을까요.

“평평한 바닥만 있으면 작은 면적에도 설치가 가능합니다. 선반식으로 구성된 자동화 창고를 설치하려면 최소 수백평 이상의 공간이 필요하고, 규모가 크지 않으면 효율이 떨어져 비용을 회수하지 못합니다. 물류 자동화가 ‘대기업만 가능하다’는 편견이 생긴 이유죠. 오토스토어 설비는 선반과 복도가 필요 없는 방식이기 때문에 가로 70㎝, 세로 48㎝(약 0.1평)의 좁은 면적에도 설치 가능합니다. 현재 우리 기술이 적용된 창고 중 가장 작은 면적은 가로 3.5m, 세로 2.5m(약 2.6평)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높은 공간 밀도 덕분에 이 작은 공간에도 360개의 적재용 상자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설치 비용은 면적에 비례하기 때문에 도입 비용 역시 일반 자동화 물류 설비보다 낮습니다.”

리어 CEO는 “기존 기술과 비교해 동일 면적 대비 적재 용량을 3~4배 늘려 주고, 설치 면적을 줄이면 토지 비용을 25~50%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도 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발간하는 과학기술전문지 ‘테크놀로지 리뷰’는 이러한 오토스토어의 기술이 향후 소규모 물류창고(마이크로 풀필먼트 시스템) 시장의 해답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신종 코로나 여파로 온라인 주문 판매가 대세를 이루자 대형 창고를 가진 전자상거래 기업뿐 아니라 소매업자들 역시 배송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물류 자동화 설비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로부터 투자받게 된 계기는 이 독자 기술 때문인가요.

“맞습니다. 손 회장이 우리 기술을 ‘전 세계 기업을 위한 빠르면서 효율적인 비용의 물류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 기술’이라고 평가해 준 덕분이죠. 소프트뱅크의 투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우리 회사의 성장을 도와줄 든든한 지원군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Mint는 소프트뱅크의 또 다른 투자처인 쿠팡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도 물었다. 리어 CEO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으나, 오토스토어 한국지사 측은 “협력을 논의 중이고, 아직 진행된 것은 없지만 이번 투자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같은 면적에 3배 많은 상품 적재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뭔가요.

“오토스토어가 설립될 당시 하텔란드 그룹의 CFO(최고재무책임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며 취급하는 부품 수 역시 많이 늘었지만, 이를 보관할 물류 창고를 확장할 돈은 부족했죠. 그때 기술 이사가 ‘창고에서 제일 많아 보이는 게 무엇이냐’고 질문했습니다. 답은 ‘공기’였습니다. 복도와 선반, 층간 공간을 줄이면 더 많은 물건을 보관할 수 있다고 본 거죠. 1996년부터 (큐브 스토리지의) 프로토타입(초기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고, 8년 뒤 상용화가 이뤄졌습니다. 시스템을 만들어 직접 사용해보니 다른 회사에 팔아도 될 만큼 뛰어난 기술이라는 판단이 섰죠.”

—한국 시장에 진출(지난해 10월)한 이유는 뭔가요.

“한국 지사는 여섯 번째 해외 지사입니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서 큰 잠재력을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 지역의 주요 국가고, (물류) 자동화 시스템이 잘 갖춰진 선진국입니다. 땅값과 인건비가 굉장히 비싸고, 도시화도 많이 이뤄져 있죠. 앞서 언급한 오토스토어의 서비스 장점과 매우 잘 맞아 떨어지는 시장이기 때문에 기대가 큽니다.”

—지난해 매출이 전년(1억9820만달러) 대비 8% 줄어들었는데요.

“신종 코로나 여파로 (고객 기업들이 타격을 받으면서) 투자가 연기되거나 미뤄진 계약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주력 시장인 유럽과 미국에서 이미 연간 목표 매출을 넘겼습니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3억달러(약 3352억원)로 전년 대비 64%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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