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 가격이 최근 약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4~5월 두 달 새 7% 이상 하락하며 한때 8만원 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업계 1위인 대만 TSMC 주가는 지난달 29일 주당 600대만달러가 무너지더니 13일 547달러로 고점 대비 10% 이상 하락하기도 했다. 미국 대형 반도체 기업의 주가를 반영하는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SOX)는 4월 초 3300선에서 이달 중순 2850선까지 밀리며 14% 하락했다가, 소폭 반등해 3100선에 머물고 있다. 모두 세계 반도체 경기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지표들이다.

“반도체 대호황(수퍼사이클)이 곧 시작된다”며 투자자들이 한껏 들떴던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이다. “곧 10만 전자(삼성전자 주가 10만원 돌파)가 온다”는 기대도 컸다. 신종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비대면 생활에 필요한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었고, 반도체 부족 현상까지 나타났다. “앞으로 수년간 반도체 시장이 큰 폭의 성장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하지만 최근 이런 장밋빛 전망이 ‘과도한 낙관론’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현재의 실적은 코로나 이후의 반짝 호황에 불과하다”는 경계론과 함께 “호황 착시로 초래된 반도체 업계의 설비 투자 증가가 가격 폭락(다운 사이클)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까지 커지고 있다.

반도체 경기의 향방은 세계 경제는 물론, 한국 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슈다. 반도체는 IT(정보 기술) 제품은 물론이고 자동차와 가전제품, 각종 완구에 이르기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는 ‘필수 소재’가 됐다. 서비스 산업마저 반도체 기반의 IT 인프라가 떠받치고 있다. 반도체는 한국 전체 수출의 5분의 1(19.3%)을 책임지는 기둥이다. Mint가 반도체 시장의 미래를 둘러싼 낙관론과 경계론을 분석해봤다.

◇“가격 상승 지속, 초호황 온다”

반도체 경기의 가장 중요한 지표인 ‘가격’은 분명히 상승세다. 프로그램 실행용 메모리 반도체인 D램의 경우, 가장 수요가 많은 DDR4 8Gb(기가비트) 칩의 고정 거래(기업 간 대량 거래) 가격이 지난 4월 3.8달러(약 4280원)까지 치솟았다. 이는 3월의 3.00달러보다 26.67%나 오른 것이다. 같은 기간 메모리 카드와 USB 메모리,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에 쓰이는 낸드플래시 범용 제품(128Gb MLC 제품)의 고정 거래 가격도 전달보다 8.57% 상승했다. 낸드플래시 가격이 오른 건 2020년 3월 이후 1년 1개월 만이고, 상승 폭은 2017년 3월(13.87%) 이후 최대였다.

데이터 연산 기능을 하는 시스템 반도체와 이를 만드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는 지난해 말부터 세계적으로 공급 절벽 현상이 벌어지며 ‘웃돈’을 줘도 못 사는 상황이 이어졌다. 여러 면에서 반도체 산업은 지금 호황을 누리는 셈이다. 이 외에도 반도체 산업 경기를 밀어 올리는 요인은 많다. 반도체 업계는 “비대면 생활양식의 확산이 다양한 분야의 반도체 수요를 폭발시키고, 반도체 부족 우려가 가수요(假需要)마저 유발했다”고 분석한다. 더불어 구글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의 클라우드(원격 컴퓨팅) 투자도 급증하며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모두 크게 늘었다.

낙관론자들은 이러한 수요 증가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본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이에 따라 (계속 가격이 오르는) 호황이 수년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시장조사 업체 IDC의 마리오 모랄레스 부사장도 “반도체 수퍼사이클은 이미 2019년 말 시작됐고, 올해 더 강화되고 있다”며 “반도체 산업은 또 한번 강력하게 성장하는 궤도에 올랐다”고 했다.

◇“반짝 호황, 코로나로 인한 착시”

하지만 낙관론이 대세가 되려는 순간, “미래에 대한 기대가 과도하다”는 우려가 싹트기 시작했다. 시작은 요즘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반도체 업체, TSMC의 마크 리우(Liu) 회장이었다. 그는 지난 3월 말 “현재 반도체 공급 부족은 가수요에 의한 것이며, 실질 생산량은 (실제) 수요를 능가한다”며 “(가수요가 해소되면) 시장도 빠르게 안정될 것”이라고 했다.

시장은 이를 ‘반도체 수요가 갑작스레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시장의 가수요가 해소되는 듯한 현상도 나타났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각종 반도체 재고 비축에 나섰던 오포와 비보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지난달부터 10% 수준의 오더컷(주문 축소)을 시작했다. 곧이어 쿼츠(Quartz) 등 미국 경제 매체들이 이달 초부터 “갑작스러운 글로벌 공급 부족은 코로나 사태로 비롯된 작은 수요 과잉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반도체 가격 상승이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단기 호황일 뿐, 향후 장기적인 신규 수요 확대를 예상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윌리 시(Shih) 교수는 이를 ‘소 채찍 효과(bullwhip effect)’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채찍을 쥔 손을 조금만 움직여도 채찍 끝의 변화는 매우 커지는 현상에서 따온 경제 용어다. 그는 “코로나가 촉발한 작은 수요(채찍을 쥔 손)의 변화가 전 세계 공급망을 크게 흔드는 현상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반도체 수요 초과와 가격 급등 현상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따라서 공급 업체가 수요를 다시 제대로 예측하고, 사재기 주문을 거절하는 등의 대처를 하면 반도체 수요가 ‘과잉’에서 ‘정상’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시 교수는 전망한다. 자연스레 반도체 가격은 내려가면서 기대했던 ‘대호황’은 오지 않을 수 있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코로나 때 갑자기 급증한 수요가 내년, 후년에도 똑같이 이어질 것이란 보장이 없다”면서 “내년 이후 시장의 성장 폭은 갈수록 완화할 것이므로 수퍼사이클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초과 공급’ 우려도 커진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면 오히려 ‘공급 과잉’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반도체 생산량 확대를 위한 설비 투자가 유례없는 규모로 급증해서다. SK하이닉스가 최근 업황 개선을 예상하고 내년도 설비투자분 일부를 올해 하반기로 당겨 집행하기로 했다. TSMC와 인텔은 각각 1000억달러(약 112조2500억원·3년간)와 200억달러를 들여 미국에 파운드리 공장을 추가 설립한다. 삼성전자도 역시 미국에 170억달러(약 19조1000억원)를 투자해 제2의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정부마저 반도체에 돈을 쏟아붓는다. 반도체 산업을 국가 경쟁력과 동일시하게 되면서다. 미국이 지난 3월 반도체 인프라 투자에 500억달러(약 56조3000억원)를 쓰겠다고 발표했다. EU(유럽연합)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 공급량 중 역내 생산 비율을 20%로 끌어올리겠다”며 최대 500억유로(약 68조9000억원)를 쏟아붓기로 했다. 중국도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달성하겠다며 반도체에 돈을 퍼붓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 규모는 지난 1년 새 4.7배로 성장, 1400억위안(약 24조5000억원)까지 늘어난 상황이다. 올 한 해에만 세계 반도체 업계의 설비투자액은 1250억달러(약 1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091억달러보다 14.6% 증가한 수치로, 사상 최대 규모다.

반도체 업계는 벌써 긴장하고 있다. “이르면 2023년부터 반도체 전 분야에서 막대한 공급량 증가가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TSMC 마크 리우 회장도 수익성 없는 생산(non-profitable capacity)만 엄청나게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결국 초과 공급에 따른 급격한 반도체 가격 하락, 즉 ‘다운 사이클’이 닥칠 수 있다. 과거에도 크고 작은 반도체 호황 뒤엔 생산 설비 증가로 인한 초과 공급과 가격 하락이 뒤따랐다. 2018년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호황기가 시작됐다가, 설비 투자로 공급이 해소되자 1년 만에 가격이 폭락한 것이 일례다. 당시 미국 시장조사 업체 가트너는 “D램 과잉 공급으로 (업계의) 매출은 37% 감소했고, 평균 판매 단가는 47%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美·中 관계가 반도체 미래 결정”

이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우선 “초과 공급에 대한 우려가 과장됐다”는 말이 나온다. 수요 증가의 큰 흐름이 결국 공급 증가를 뛰어넘을 것이란 주장이다. 나름 이를 뒷받침하는 숫자도 있다.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는 2020년 622억달러(약 70조원)였던 D램 시장 규모가 2021년에는 794억달러(약 89조원), 2022년에는 1005억달러(약 113조원)로 2년 만에 61.6% 성장할 것으로 본다. 또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시장은 지난해 610억달러(약 68조원)에서 2022년 738억달러(약 83조원)로 2년 만에 22.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호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신종 코로나 영향과 지금까지의 주기론을 무시해도 될 만큼 자율 주행 차량, 이미지 센서, 가상 세계 구축 등에 필요한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앞으로 10년간 반도체 시장이 10배 이상 성장할 수도 있다”고 했다.

“반도체 시장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시장이 아닌 국제정치”라는 주장도 나온다. 미·중의 패권(覇權) 갈등과 국가 간 반도체 경쟁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국이 하필 대만과 한국이라는 지정학(地政學)적 요인이 문제의 핵심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은 중국 바로 옆(대만과 한국)에 반도체 공장이 몰려 있다는 것이 불안하다”며 “TSMC와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를 종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경제 협력과 안보 위협을 양 축으로 하는 중국의 패권 전략에 대만과 한국이 굴복하면 첨단 반도체 기술과 생산 시설이 통째로 중국 품에 들어가고, 이는 미·중의 패권 균형을 깰 수 있다. 미국이 이런 위험을 피하려 세계 반도체 산업 재편에 나설 경우,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반도체 시장은 상당 기간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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