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백신 접종과 함께 실물 경기의 회복세가 완연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경제 전체가 골고루 살아나기보다 중·상류층의 소득은 빠르게 늘고, 그 이하는 소득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K자형 회복’이 나타난다. 요즘 유통 업계의 상황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고급이 아니면 초저가를 표방한 업체들이 호황을 누리는 ‘유통 양극화’ 현상이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두드러진다.
미국의 고급형 편의점 스타트업인 폭스트롯(Foxtrot)은 최근 “2020년 매출이 2019년 대비 100% 이상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2014년 문을 연 이래 최고 실적이다. 이 회사는 여전히 외부 투자를 받고 있는 상황으로, 회사 실적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인터넷 쇼핑이 급증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종말’이 거론되는 상황이지만 이 회사만큼은 성장세가 가파르다. 최근 워싱턴DC, 뉴욕 등 주요 대도시로 빠르게 지점을 확장해 가고 있고, 매장마다 줄이 길게 늘어선 광경까지 종종 목격된다.
이 편의점은 유행을 선도하는 이른바 힙(hip)한 물건을 주로 들여다 놓는 것이 특징으로, 가격 역시 다른 매장에 비해 비싼 편이다. 매장 내 진열장은 수제 맥주와 고급 와인, 부티크(boutique·소규모 고급 상점) 제과점의 도넛, 10~20달러짜리 아침 식사 등 ‘고품질 소량 생산’의 느낌이 나는 로컬(지역) 제품들로 채워졌다. 또 껌이나 젤리, 민트 등 가벼운 스낵조차 대량 생산 제품이 아닌, 개당 10달러에 육박하는 비싼 제품들이다. 매장은 스타벅스 매장처럼 환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비교적 고급 인테리어로 꾸며놨다.
폭스트롯의 성공은 미국 내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유통업의 보수적 분위기가 깨지고 있다는 신호여서다. 실용적인 미국인들은 값비싼 제품을 주로 취급하는 유통점을 못마땅하게 여기곤 한다. 중고가 제품을 주로 파는 대형마트 타깃(Target)을 프랑스식 발음인 ‘타흐제’라고 부르며 비아냥거릴 정도다. 그만큼 일반 대중에겐 브랜드를 내세운 값비싼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반대로 ‘초저가’ 제품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 이후 일자리를 잃은 저소득층이 소비를 줄이려는 경향도 강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초저가 수퍼인 ‘달러제너럴’은 지난해 337억달러의 매출을 내면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달러제너럴은 한국의 ‘다이소’와 비슷한 개념의 유통 업체다. 판매 제품의 대부분이 1~10달러 사이의 제품이다. 달러제너럴의 지난해 매출 성장률은 22%에 달했다. 10% 안팎이었던 지난 수년간 평균 매출 성장률을 2배 이상 뛰어넘었다.
반면 중산층이 주요 고객인 대표 유통업체들의 실적은 초라했다. 월마트의 지난해 매출은 5590억달러(620조원)로 전년 대비 5% 늘어나는 데 그쳤고, K마트는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억3000만달러(25%) 줄었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고급 쇼핑을 지향하는 현대백화점의 ‘더현대서울’과 신세계백화점의 ‘스타필드’가 인기를 누리면서 두 회사의 올해 1분기 매출은 11%, 37%씩 늘었다. 정반대의 초저가 유통점인 다이소도 2년 연속 ‘2조 매출’을 달성하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 다이소 운영사 아성다이소의 지난해 매출은 2조4216억원으로 전년 대비 8.3% 증가했고,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126.6%와 113.7% 급증했다. 반면 중산층을 주 타깃으로 삼아온 대형 마트는 실적 악화의 여파로 폐점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롯데마트의 경우 올 들어 12곳이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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