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이 곧 돈으로 연결되는 ‘탄소 경제’가 본격화하면서, 이를 자국에 더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국가 간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EU(유럽연합)는 지난 14일 세계 최초로 탄소 국경세(CBAM) 도입을 공식화했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나라에서 만든 상품을 수입해 올 때 추가 세금을 내게 한 일종의 ‘징벌적 관세’다. 이를 통해 자국 제조업 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세원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여당인 민주당도 최근 3조5000억달러(약 4020조8000억원)의 친환경 예산안을 마련하면서 그 재원 조달 방안으로 탄소 국경세와 유사한 ‘오염 유발국 수입세’를 제안했다. “사실상 중국과 러시아 등 주요 탄소 배출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이 국가들 역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원자재가 된 탄소 배출권
EU 탄소 국경세 영향을 먼저 받는 상품(1차 적용 대상)은 철강과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기 등이다. 제조 과정에서 대량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품목이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탄소 국경세 부과로) 러시아와 중국, 터키 등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알루미늄과 철강, 전기를 유럽에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다. 터키는 시멘트와 철강을, 중국은 주로 철강을 유럽에 수출하고 있다. 한국도 유럽에 알루미늄과 철강을 수출하고 있어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러시아는 이번 조치로 입게 될 손실이 연간 76억달러(약 8조6700억원)에 달할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EU의 탄소 국경세 도입은 그동안 역내 탄소 배출권 거래를 중심으로 탄소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배출권 거래 제도에 이어 탄소세까지 등장하면서, 대부분의 상품 제조 원가에 ‘탄소 배출 비용’이 새로운 항목으로 등장, 원가 부담이 더해지게 됐기 때문이다.
메리츠증권은 최근 ‘녹색 원자재(Green Commodity)’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제 탄소 배출권도 원자재의 일종으로 봐야 하는 시대”라고 주장했다. 아직 신재생에너지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제조업 경기가 계속 회복세를 타면 탄소 배출권 수요가 급증하면서 탄소 배출권 시장 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다. 이는 결국 원유나 구리 같은 원자재 가격 상승처럼 제조업의 비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대응 나선 중국
이런 우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라가 ‘세계의 공장’ 중국이다. 중국은 지난 16일 전국 8지역에 퍼져 있던 탄소 배출권 거래소를 하나로 합친 ‘통합 탄소 배출권 거래소’를 상하이에 출범시켰다. 중국 내 탄소 배출권 거래를 활성화해 탄소 배출권 시장을 키우고, 가격도 낮추겠다는 목적이다. 중국 경제지 제일재경은 “탄소 국경세 도입으로 현재 t당 50위안 수준인 중국 내 탄소 배출권이 2025년에는 71위안, 2050년에는 167위안으로 급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이산화탄소 배출국(전체의 약 27%)이나, 탄소 배출권 시장 규모는 지난해 2억5700만유로 수준으로 여전히 한국(8억7000만유로)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전 세계 탄소 배출권 시장이 지난 3년 새 4배가량 급성장해 온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은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65% 줄이겠다는 ’3065 목표'를 내놓고, 막대한 보조금을 뿌리며 태양광과 풍력 등 친환경 발전의 누적 발전 설비 용량을 늘이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친환경 발전 용량을 240GW(기가와트) 수준으로 늘렸고, 2030년까지 1200GW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화보는 “전국적 탄소 거래 시장 출범을 계기로 중국은 EU보다도 큰 세계 최대 탄소 거래 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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