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현국

세계 최대 커피 체인 스타벅스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신종 코로나 대유행(팬데믹)의 가장 큰 피해를 본 기업이었다. 1만5000여 미국 매장 중 약 절반이 문을 닫으면서 지난해 1분기(1~3월) 순이익은 전년 대비 51%나 줄어든 3억2840만달러(약 3800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1월 90달러대였던 주가는 두 달여 만에 30% 넘게 추락하면서 주당 58달러까지 떨어졌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1971년 창업한 스타벅스가 창사 50주년(올해)을 앞두고 큰 위기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스타벅스의 주가는 한 달 만에 77달러로 가파르게 회복하더니, 곧이어 3분기 매출이 2분기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지난 12월 스타벅스 주가는 사상 처음으로 100달러를 돌파했다. 작년 하반기 주가 상승률은 45%로, 같은 기간 코스타커피를 운영하는 코카콜라와 맥카페를 운영하는 맥도널드 등 경쟁 업체의 주가 상승률(20%)을 두 배 이상 뛰어넘었다. 이 회사는 올해 1분기에도 전년 대비 11.2%의 매출 증가를 보이며 주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2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23일 현재 스타벅스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인 125.97달러다. 작년 3월과 비교해 2.1배가 된 것이다.

신종 코로나의 최대 피해자에서 수혜자로 변신한 스타벅스의 극적 ‘V자’ 반등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스타벅스는 겉으로는 커피 기업이지만, 속은 일찌감치 디지털 기업으로 변신했다”면서 “덕분에 비대면(非對面) 경제라는 뉴노멀(new normal)에 쉽게 적응했다”고 설명한다. 맹명관 중소기업혁신전략연구원 전임교수는 “스타벅스는 이미 십 수년 전부터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일찌감치 디지털 기업으로 변모하고자 했고, 이것이 적중했다”면서 “미래의 전염병(신종 코로나) 사태까지 대비해 시뮬레이션해 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라고 했다.

◇‘디지털 기업’이 된 커피 회사

스타벅스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전환)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진 2008년이다. 창사 이후 처음으로 매출이 감소하는 위기를 겪으며 하워드 슐츠 이사회 의장이 CEO(최고경영자)로 전격 복귀했고, 새 성장 전략의 하나로 디지털 전환을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때 “주문과 결제, 멤버십을 디지털화하고 개인화해 성장의 모멘텀으로 삼겠다”는 이른바 ‘디지털 플라이휠(Digital Flywheel)’이란 개념이 나왔다. 이를 위해 2015년엔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850만달러(약 100억원)를 썼고, 이듬해엔 엔지니어 1000명을 새로 채용했다.

스타벅스의 디지털 전환 노력은 2017년 슐츠 CEO의 후임으로 IT(정보 기술) 업계 출신의 케빈 존슨 현 CEO를 영입하며 방점을 찍었다. 그는 1981년 IBM에 프로그래머로 입사해 마이크로소프트(MS) 임원과 네트워크 장비 업체 주니퍼 CEO를 역임한 인물이다. “스타벅스의 디지털화를 이끄는 데 최적화된 사람”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존슨 CEO는 클라우드(원격 컴퓨팅)와 블록체인, IoT(사물인터넷), AI(인공지능) 기술 등도 도입했다. 클라우드와 연결돼 스스로 성능을 관리하고 고장을 분석하는 디지털 커피머신 ‘클로버’, 상하기 쉬운 우유와 식재료의 유통 기간을 추적 관리하는 스마트 냉장고, 매장 운영 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잠기는 스마트 도어록 등이 등장했다. 원두(原豆) 유통 경로 추적과 매장 운영 현황을 본사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고, 고객 각각의 소비 패턴을 분석해 신제품을 소개하거나 쿠폰을 제공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스타벅스는 이를 위해 브라이트룸(Brightloom)이라는 IT 기업에 투자, 지분도 확보했다.

한국에서 ‘사이렌 오더’로 알려져 있는 모바일 주문, 자체 모바일 결제 시스템(스타벅스 페이), 멤버십 혜택(스타벅스 리워드) 등이 도입됐고, 2018년에는 차량 번호를 등록해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승차 주문)에서 자동 결제가 이뤄지는 ‘마이디티패스(My DT Pass)’도 시작했다. 또 매주 쏟아지는 1억건의 거래 데이터와 날씨·재고 데이터를 분석, 음료 쿠폰과 무료 업그레이드 같은 맞춤형 서비스를 멤버십 회원에게 제공한다.

스타벅스의 미국 내 모바일 주문 비율은 2017년 1분기 8%에서 2020년 3분기 24%로 3년여 만에 3배가 됐다. 손님 4명 중 1명은 계산대를 거치지 않고 주문을 한 것이다. 존슨 CEO는 지난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스타벅스의 디지털화는 구매 및 판매 영역에서 비효율을 최소화해 바리스타와 고객이 서로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게 했고, 모두에게 더 많은 자유를 부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래픽=김성규

스타벅스의 디지털 투자는 신종 코로나 상황에서 진가(眞價)를 발휘했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는 지난해 4월 “미국인의 3분의 1 이상이 온라인이나 앱을 통해 식사나 음료를 주문한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그만큼 비대면 주문이 대세가 된 상황이지만, 던킨도너츠와 코스타커피, 맥도널드 맥카페 등 경쟁 업체들은 모바일 앱 주문 시스템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고, 사상 초유의 팬데믹 위기에 속수무책이었다.

모바일 주문과 드라이브 스루 주문 시스템이 완비된 스타벅스는 달랐다. 스타벅스 차이나의 벨린다 웡(Wong) CEO는 “중국에선 전체의 80%에 가까운 매장의 문을 닫는 상황까지도 갔지만 (다른 커피 업체들과 달리) 모바일 주문을 통해 비대면(contactless) 주문을 할 수 있었고, 매장에서 고객들이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하면서도 영업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올해 1분기 드라이브 스루와 모바일 판매 비율은 스타벅스 미국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했다”고 전했다. 이는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10% 넘게 증가한 것이다.

◇“디지털로 고객 삶의 일부 됐다”

케빈 존슨 스타벅스 CEO

글로벌 경영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이러한 스타벅스의 디지털 전환을 오프라인(매장)과 웹사이트, 모바일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른바 ‘옴니 채널(omni-channel) 유통’의 성공 사례로 꼽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식음료 주문과 결제, 멤버십 혜택 적립, 상품권 구매와 선물 등이 모두 가능하고, 이를 기반으로 식음료와 상품권 외에 컵과 보온병, 가방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맥킨지는 “(디지털을 기반으로) 더 다양한 상품과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게 되면서, 스타벅스 브랜드가 고객 삶의 일부(part of their lifestyle)가 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스타벅스를 매일같이 소비하는 고객들이 급증하면서 스타벅스 결제 충전액은 10억달러(약 1조1500억원)에 달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디지털화한 스타벅스는 단순한 커피 회사가 아닌 은행의 경쟁자”라고 했을 정도다.

스타벅스는 성공적 디지털 전환을 등에 업고 대대적인 변신에 나섰다. 우선 대형 매장 비율을 줄이고, 픽업(pickup) 매장을 늘렸다. 픽업 매장은 대면(對面) 주문을 받지 않고,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만 주문과 결제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또 차를 탄 채 창문 밖에서 커피를 받아 갈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교외에 늘리고, ‘우버이츠’와 제휴해 배달 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케빈 존슨 CEO는 “지난해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이 드라이브 스루와 모바일 주문·결제로 발생했고, 배달 주문도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스타벅스가 코로나 사태에도 빠르게 매출을 회복할 수 있었던 비결인 셈이다. 스타벅스는 이런 식으로 2021년 한 해에만 매장을 1100곳 늘릴 예정이다.

스타벅스는 외출이 줄면서 집 안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기 시작한 소비자의 행태 변화에도 빠르게 적응했다. 스위스 식품업체 네슬레와 제휴해 원두와 캡슐 등 가정용 커피 제품을 대폭 늘린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스타벅스 브랜드의 가정용 커피 판매량이 크게 늘면서 (제조사인) 네슬레의 올해 1분기 매출이 10여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단골 고객이 늘면서 미국 내 스타벅스 멤버십(스타벅스 리워드) 고객은 2300만명으로 전년 대비 18%나 늘어났다. 중국과 한국 등 미국 외 해외 시장의 매출도 급증했다. 지난 1분기에 미국 내 매출은 9% 증가한 데 반해, 해외 매출은 17%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선 1분기 매출이 지난해 대비 124%나 급등했다.

◇커피 기업의 정체성 무너질까

빠른 실적 회복으로 스타벅스는 직원들의 고용 보장도 할 수 있었다. 존슨 CEO는 “팬데믹으로 점포들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도 회사는 직원들의 임금과 복리 후생비를 계속 지급하고 휴가나 감원은 피했다”고 했다. 스타벅스는 덕분에 숙련된 매장 근로자들을 고스란히 지킬 수 있었고, 올해 초부터 시작된 미국 내 고용난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디지털 전환의 성공은 그러나 스타벅스에 ‘양날의 검’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바일 기반의 비대면 판매를 통해 신종 코로나 사태를 성공적으로 극복했지만, 이는 커피를 마시는 공간과 그 안에서 하는 교감의 중요성을 늘 강조해 온 스타벅스의 정체성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커피 ‘맛’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는 경영 이념을 가진 스타벅스가 블루보틀 등 후발 커피 전문점들에 ‘맛’의 우위를 위협받고 있는 점도 잠재적 위험 요소다. 스타벅스는 지난 2007년 미국 소비자 전문 매체 컨슈머리포트의 시음 테스트에서 맥도널드 커피보다 낮은 점수를 받으며,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등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그러나 “올해 스타벅스 매출은 전년 대비 21% 증가할 것”이라며 스타벅스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스타벅스는 과거 금융 위기 때도 무리한 매장 확대 등으로 큰 난관에 봉착했다가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해 커피 브랜드 1위 자리를 공고히 다진 경험이 있다. 강도 높은 디지털 혁신, 과감한 매장 철수와 조직 개편, 고객과 커뮤니케이션 강화 등을 통해 ‘제2의 도약’을 일궈냈다. 맹명관 교수는 “신종 코로나 이후 ‘공간’으로서 카페의 개념이 크게 바뀌고 있다”면서 “공간을 파는 곳으로 브랜드화해 성공한 스타벅스가 그들의 정체성을 어떤 방식으로 회복할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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