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도시 트위터 창업자가 이끄는 미국 핀테크 업체 스퀘어가 최근 호주의 ‘BNPL(Buy Now Pay Later·선구매 후지불)’ 스타트업 애프터페이를 290억달러(약 34조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호주 M&A(인수·합병) 역사상 최대 규모 거래다. BNPL은 소비자 대신 결제 업체가 먼저 물건값을 가맹점에 전액 지불하고, 소비자는 결제 업체에 물건값을 일정 기간에 걸쳐 분할 납부하게 해주는 서비스다.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급성장했다. 애프터페이의 올 1분기 글로벌 매출은 52억호주달러(약 4조4138억원)로 1년 전보다 104% 증가했다.

게티이미지뱅크·그래픽=김의균

BNPL의 무서운 성장세에 세계 최대 간편 결제 기업인 페이팔부터 신용카드 회사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 대기업들도 잇따라 뛰어들었다. 애플 역시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BNPL 서비스인 ‘애플 페이 레이터’ 출시를 준비 중이다. 미국 전체 소매업체의 85%가 애플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애플페이 결제를 받고 있어 애플이 본격적으로 BNPL을 시작할 경우 서비스 이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로 인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득이나 신용도가 부족해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BNPL의 ‘편리함’이 막대한 가계 부채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2000년대 초 발생했던 ‘신용카드 버블’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계 부채 ‘숨은 고리’ BNPL

BNPL은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18세 이상 성인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신용등급이 낮거나 소득이 불안정해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는 사람도 BNPL이라면 할부 결제를 별도의 이자나 수수료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BNPL은 소비자의 과소비를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온라인 대출업체 렌딩트리가 소비자 10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3분의 2 이상이 “일반 결제보다 BNPL을 이용했을 때 더 많은 지출을 한다”고 답했다. “소비자들이 BNPL 서비스를 신용 상품이라기보다는 디지털 결제 수단으로 인식해 앞으로 대금을 상환하지 못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연체료 등의 위험 요소를 간과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 소비자가 한 번에 여러 BNPL 업체를 이용하면서 실제 상환 능력보다 과다한 채무를 떠안을 수도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달 ‘BNPL의 부상’이라는 보고서에서 “BNPL로 발생한 빚은 신용 기록에 남지 않아 차용인(소비자)이 여러 BNPL 회사에서 빚을 끌어쓸 수 있다”며 “이는 다른 금융회사들이 대출을 내줄 때 차용인의 기존 대출을 과소평가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피치는 또 “차용인이 BNPL로 생긴 빚을 갚으려 신용카드나 다른 고금리 금융상품을 쓰면서 리스크가 신용 시장 전체로 전이될 수 있다”고도 했다. 실제로 호주증권투자위원회에 따르면 호주 BNPL 소비자의 15%가 BNPL 지출액을 갚으려 추가 대출을 받았다. 아거스리서치의 스테픈 비거 이사는 CNBC에 “경기가 나빠지면 BNPL이 ‘지금 사고 나중에 안 갚는다(Buy Now, Not Pay Later)’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영국광고실행위원회(CAP)는 지난해 12월 “소비자에게 BNPL이 신용 상품이라는 점을 이해시키라”는 광고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BNPL 업체들은 무이자 할부 결제 혜택만을 제시하거나, 직불카드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 소비자 행동 편향을 일으키는 광고를 해선 안 된다. 스웨덴도 지난해 7월 소비자들이 BNPL을 결제 기본 옵션으로 여기지 않도록 BNPL을 직불카드 옵션보다 먼저 설정하는 것을 금지했다.

네이버와 쿠팡이 시범 운영 중인 한국형 BNPL(선구매 후지불) 서비스 ‘네이버페이 후불 결제’와 ‘쿠팡 나중결제’의 소개 화면. /네이버파이낸셜·쿠팡

◇한국도 BNPL 시장 ‘꿈틀’

BNPL은 최근 한국에도 등장했다. 쿠팡과 네이버가 유사한 후불결제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이다. 쿠팡은 지난해 일부 고객을 대상으로 물건을 먼저 구입하고, 대금은 다음 달 15일에 일괄 지불하는 ‘나중결제’ 서비스를 도입했다. 올해 5월부터는 월 30만원이었던 한도를 50만원까지 높였다. 원래 국내 규정상 신용카드업자만 후불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쿠팡은 직접 산 로켓배송 상품에 대해서만 후불결제를 허용하기 때문에 금융 당국 승인 없이 서비스가 가능했다.

네이버도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아 지난 4월부터 일부 고객을 대상으로 월 20만~30만원 한도의 ‘네이버페이 후불결제’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이다. 물건을 먼저 산 뒤 다음 달 5일, 15일, 25일 중 이용자가 선택한 결제일에 대금을 지불할 수 있다. 카카오페이는 올해 4분기 모바일 교통카드에 월 15만원 한도의 모바일 후불형 교통카드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한국도 BNPL에 대한 우려에서 자유롭지만은 않은 셈이다. 다만 신용카드 발급이 해외처럼 까다롭지 않고, 무이자 할부 서비스가 잘되어 있어 BNPL이 해외만큼 활성화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고은아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 후불결제 서비스는 BNPL의 핵심인 분할 납부 기능이 없고, 금액이 소액이라 해외와 같은 인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다만 금융위의 규제 내용에 따라 후불결제 시장의 확장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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