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오노기 제약은 지난 7월 시오노기 카나데(塩野義カナデ)란 신입 사원을 유튜브 홍보 담당으로 발령 냈다. 소속은 ‘버추얼커뮤니케이션’부, 업무는 회사를 대표하는 유튜버(Youtuber·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는 창작자)로 활동하면서 ‘노래로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이다. 지난해 10월엔 한국에서 ‘루이 리’라는 유튜버가 데뷔했다. 루이는 싱어송라이터로,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K팝 히트곡 메들리, 가요 커버 영상, 여행 브이로그를 올리며 이름을 알리고 있다. 벌써 가구 업체 광고 모델, 복지재단 홍보 대사를 할 만큼 유명해졌다.

그래픽= 김영석

이들은 모두 실존 인물이 아니다. 각각 디지털 애니메이션과 AI로 창조된 가상의 유튜버(Virtual Youtuber), 이른바 ‘버튜버(Virtuber)’다.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버튜버는 현재 1만3000명 이상이 활동하면서 유튜브 채팅 수입 상위권을 휩쓸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와 연예인들이 맡아 온 기업 홍보와 모델 업무에까지 진출했다. 이들을 쓰는 기업들은 “흥행이 확실치 않은 유명인이나 연예인에게 홍보를 맡기기보다, 버튜버를 쓰는 게 비용이나 메시지 전달 면에서 이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인간 유튜버 이기는 ‘버튜버’

버튜버의 개념은 2011년 ‘아미 야마토(Ami Yamato)’라는 유튜브 채널이 처음 선보였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유튜버로 등장, 브이로그(비디오 블로그) 등의 영상을 올렸다. 지금도 15만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버튜버라는 용어가 쓰이며 본격적 주목을 받은 것은 2016년 10월 등장한 키즈나 아이(キズナアイ)부터다. 일본 애니메이션풍의 가상 인물로, 일상 잡담과 게임 해설, 노래, 댄스 커버 등 유튜버들이 하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이른바 ‘오타쿠(특정 분야에 심취한 이들)’를 양산하면서 구독자가 2일 현재 298만명에 달한다. 그 사이에 TV 광고 모델, 일본 관광 대사도 맡았다. 웬만한 인간 연예인 뺨치는 수준이다.

일본의 버튜버(가상 인간 유튜버) ‘키류코코’가 동료 버튜버와 함께 요리 방송을 하는 모습(위). 한국에서는 AI로 움직이는 ‘루이’라는 버튜버가 등장해 활발한 활동을 하며 팬을 모으고 있다(아래). /유튜브 캡처

키즈나 아이를 시작으로 유사한 콘셉트의 다양한 버튜버가 쏟아졌다. 빅데이터 기업 유저로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유튜브에서 활동 중인 버튜버는 1만3000명에 달했다. 인기도 사람 유튜버 못지않다. 플레이보드 집계에 따르면 지난 7월 한 달간 전 세계에서 수퍼챗으로 돈을 많이 번 유튜버 상위 1위부터 8위까지가 모두 버튜버다. 수퍼챗은 유튜브의 라이브 채팅창 기능으로, 유튜버에게 후원금을 줄 수 있다. 1위는 2019년 말 ‘드래곤 종족의 3500세 여성’이란 설정으로 데뷔해 활동 중인 키류 코코(桐生ココ)다. 7월에만 수퍼챗으로 3억6000만원을 벌었다. 채팅창 내용은 성우가 읽고 반응해주고, 버튜버의 모습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 보여준다.

◇“버튜버, 인간 약점 뛰어넘어”

사람 유튜버를 제치고 버튜버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인간이 가진 인격적 약점이 없기 때문”이라며 “이것이 (사람에 대한) 기술의 우위를 상징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버튜버는 철저히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만 보여준다. 스캔들이나 구설에 휘말릴 일도 없고, 시간이 흘러도 늙지 않는다. 마케팅 차원에서 특정 집단을 공략하기 위해 맞춤형 외모와 목소리, 말투 등을 갖출 수 있다.

/자료=유저로컬

버튜버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첨단 기술이 점점 인간의 역할(일자리)을 뺏어가고 위축시킨다는 디스토피아(dystopia)적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공장·사무실의 일자리뿐만 아니라, 기업 홍보와 엔터테인먼트의 영역까지 사람이 아닌 기술로 창조한 가상 인간이 대체하게 됐다는 것이다. 현재 활동 중인 버튜버 대부분은 상당한 규모의 전문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 운영하고 있지만, AI를 이용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이른바 ‘자율 버튜버’의 등장도 멀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소셜미디어를 통한 메시지나 유튜브 댓글을 AI가 자동으로 답변하거나 관리하는 기술이 버튜버에 도입되고 있다. 성우 대신 음성합성(TTS) 기술을 사용해 라이브 채팅을 하는 버튜버도 나왔다. AI로 ‘루이 리’를 창조해낸 디오비 스튜디오의 오제욱 대표는 “AI가 캐릭터의 몸을 움직이고 목소리를 대신 내는 기술 자체는 지금도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며 “비용 문제만 해결된다면 적어도 버튜버 업계에선 빠른 속도로 AI 기술이 인간을 대체해 나갈 것”이라고 봤다.

◇AI 역할 늘어…“내 업무도 대체할 것”

기업 입장에서 보면, 비용이나 효율성 면에서 기술이 인간을 넘어설 경우 대체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당장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기업의 홍보 영상이나 신제품 발표회에 이런 버튜버가 등장할 수도 있다. 국내 한 ICT(정보통신) 대기업의 홍보담당 임원은 “최근 메타버스 관련 기술 전문 업체의 제안을 받아 회사 유튜브에 가상 인간을 등장시키는 것을 검토 중”이라며 “머지않아 보도자료 작성과 배포 등을 자동화하는 설루션(기술)도 등장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미 금융 업계에 AI 은행원, AI 보험 심사원이 등장해 인간을 대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작년 9월 인크루트 설문에서 직장인 614명 중 무려 67.9%가 ‘AI가 내 업무를 대신할 수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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