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금융회사는 어디일까. 신한금융이나 KB금융을 떠올리기 쉽지만, 주식시장이 평가하는 기업가치로 본다면 단연 카카오뱅크다. 8일 현재 이 은행의 시가총액은 34조3497억원으로 국내 양대 금융지주인 KB금융(21조8299억원)과 신한금융(19조9407억원)을 가볍게 따돌린다. 핀테크<키워드> 기반의 이른바 인터넷 은행이 수십 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대표 은행을 모두 제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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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7월 초 영국에서는 국제 송금 스타트업 ‘와이즈(Wise)’가 상장 첫날 주가가 급등, 시가총액이 120억달러(약 14조원)에 육박했다. 이는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한 기술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일 뿐 아니라, 금융시장 전망치(60억~70억달러)를 두 배 가까이 웃돈 것이다. 와이즈는 2011년 “은행의 비싼 해외 송금 수수료를 낮추겠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핀테크 기업이다.

본래 핀테크는 전통 금융의 빈틈을 메우는 틈새 비즈니스로 시작했다. 하지만 적극적 인수·합병(M&A)으로 은행·증권·결제·환전·송금 등 금융 전 영역을 장악, 기존 금융회사들을 밀어내고 주류로 등극하고 있다. 시류에 민감한 돈(투자)의 흐름이 이를 증명한다. 5년 전, 글로벌 금융주 시가총액 최상위는 중국공상은행(3080억달러), 웰스파고(2250억달러), JP모건(2180억달러), 중국은행(1853억달러) 등 기존 은행들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이 중 지금도 시가총액 최상위에 남아 있는 기존 은행은 JP모건(4766억달러)과 뱅크오브아메리카(3454억달러) 단 2개뿐이다. 나머지는 첨단 기술로 무장한 핀테크 중심의 금융회사들이다. 세계 최대 결제 서비스 업체 비자(4940억달러)가 1위, 페이팔(3397억달러)과 마스터카드(3357억달러)가 각각 4·5위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벤처캐피털(VC) 전체 투자액(1562억달러)의 약 22%인 337억달러(약 39조원)가 핀테크로 흘러들어 갔다. 같은 기간 전자 상거래(163억달러)나 인공지능(154억달러), 사이버 보안(67억달러) 등에 몰린 투자액의 2~5배에 달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핀테크에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금융시장의 반란군이었던 핀테크가 이제 기득권(the establishment)으로 올라섰다”고 했다.

◇틈새시장에서 시장의 주류로

핀테크 기업의 주류 등극 과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지불·결제 사업에서 시작해 여신(카드·할부 등)과 은행, 증권 등 다양한 영역으로 몸집을 불려가며 성장하는 경우다. 적극적 신사업 진출과 M&A가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핀테크 투자은행 FT파트너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핀테크 M&A 규모는 1356억달러(약 157조2280억원)로 2018년 한 해 동안 이뤄진 M&A 규모(1301억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특히 10억달러 넘는 초대형 M&A가 전체의 21%를 차지했다. 지난해(14%)의 약 1.5배다. 경쟁사를 인수하거나, 종합 금융 서비스(플랫폼)로 성장하고자 다른 분야의 핀테크 업체와 손을 잡는 형태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대표적 사례가 ‘스퀘어’다. 잭 도시 트위터 창업자가 이끄는 스퀘어는 2010년 기존 카드 결제 생태계에서 소외된 소상공인들을 노린 소형 카드 단말기 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2013년 전자 지갑 서비스 캐시앱을 전격 출시, 판매자(seller) 위주 사업에서 개인용 모바일 결제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뒤이어 올해 3월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예금·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 사업을 출범시켰고, 지난달에는 신종 코로나 대유행(팬데믹) 이후 급부상한 BNPL(선구매 후지불) 회사 ‘애프터페이’를 인수하며 BNPL 서비스까지 거느리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퀘어는 애프터페이 인수로 전 세계 판매자 10만명과 소비자 1600만명을 얻었다”며 “(이번 인수가) 캐시앱과 판매자 사업을 강력하게 연결해 더 빠른 성장을 견인하리란 기대가 나온다”고 했다.

거대 IT(정보 기술) 기업이 독점 서비스(플랫폼)와 강력한 디지털 역량을 바탕으로 핀테크에 진출, 기존 금융회사를 뛰어넘기도 한다. 중국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금융 계열사 앤트그룹이 대표적이다. 앤트그룹은 알리바바 사용자 10억명을 대상으로 ‘알리페이’를 만들어 세계 최대 결제 서비스 중 하나로 키웠다. 뒤이어 알리페이 충전 서비스로 사실상의 예금 서비스에 진출했고, 충전액이 부족하면 할부· 리볼빙을 제공하거나, 단기 대출 서비스 등을 붙여 여신과 소액 대출까지 진출했다. 이후에는 보험과 자산 관리 서비스까지 붙이면서 사실상 종합 금융 회사로 성장, 중국 내 상업은행들을 위협했다.

/자료=이마케터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카카오는 국내 시장을 독점한 카카오톡 메신저를 기반으로 지난 2014년 ‘카카오페이’ 간편 결제를 시작, 인터넷 은행인 카카오뱅크를 출범시켰다. 이를 통해 투자, 대출, 보험 중개, 송금, 자산 관리 등 금융 사업 총 12개를 펼치고 있다. 또 지난해엔 증권사를 인수했고, 연내엔 디지털 손해보험사도 설립할 예정이다. 사실상 금융 전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시(SEA)와 그랩(Grab), 인도네시아 고젝(Gojek), 아르헨티나 메르카도리브레(MercadoLibre) 등도 전자 상거래나 차량 공유 플랫폼을 기반으로 금융 서비스를 통합해가고 있다.

/자료=CB인사이츠
그래픽=백형선

◇'재난지원금’ 수혜 본 핀테크

신종 코로나 대유행(팬데믹)도 핀테크 기업의 주류 등극에 큰 역할을 했다. 먼저 인터넷 쇼핑과 배달 주문 등 비(非)대면 소비가 급증하는 과정에서 현금·신용카드 대신 핀테크 업체의 간편 결제를 쓰는 사람이 급증했다. 이마케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모바일 결제 이용자는 9230만명으로 전년보다 29% 늘었다. 각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지급한 재난지원금과 실업수당도 핀테크 이용자를 크게 늘렸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저소득층 상당수가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가 없다. 직업이 안정되지 않거나 주거가 불확실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들에게 쏟아진 재난지원금과 실업 수당이 누구나 쉽게 결제 서비스(계좌)를 쓸 수 있는 핀테크 업체로 들어갔다. 은행 계좌가 없는 미국 저소득층 상당수가 스퀘어의 ‘캐시앱’이나 페이팔의 ‘벤모’ 같은 전자 지갑 앱으로 재난지원금을 받았다.

미국 디지털 은행 차임(Chime)은 이런 기회를 적극 활용했다. 재난지원금 지급이 확정될 때마다 정부 지급일에 앞서 고객들에게 재난지원금을 먼저 지급한 것이다. 비상장회사인 차임은 고객 수를 공개하지 않지만, 차임 CEO(최고경영자) 크리스 브릿은 “경기 부양책 집행 이후 회사 역사상 가장 많은 고객이 신규 등록했다”고 밝혔다. 팬데믹 전인 2019년만 해도 15억달러(약 1조7500억원)에 불과했던 차임의 기업 가치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250억달러(약 29조1600억원)로 불어났다.

팬데믹 이후 직접 주식 및 가상 화폐 투자에 뛰어드는 개인 투자자가 늘어난 것도 핀테크 이용자 급증에 기여했다. 스퀘어에 따르면 지난해 1차 재난지원금 집행 후 캐시앱 잔액은 전년보다 257% 증가했다. 늘어난 잔액은 고스란히 캐시앱 내에서 주식 및 가상 화폐 거래, 송금, 결제 등에 사용돼 매출 증대로 이어졌다. 지난 한 해 캐시앱 매출은 59억달러(약 6조8800억원)로 전년보다 353% 증가했다.

◇생존 위해 발버둥 치는 전통 은행

기존 은행들은 이중의 위기에 처했다. 저금리 장기화로 주(主) 수익원인 예대마진(대출 이자 수익과 예금 이자의 차이)이 악화해 수익이 줄어든 데다, 어느새 어깨를 나란히 한 핀테크와 생존 경쟁까지 해야 한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지난 4월 주주 연례 서한에서 “은행들은 핀테크 및 빅테크 기업과의 광범위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며 “결제·예금·대출 같은 상품들이 기존 은행 시스템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글로벌 은행들은 우선 구조 조정에 나섰다. 주요 고객을 부유층과 기업으로 좁히고, 조직의 덩치를 줄이고 있다. 씨티그룹은 올 들어 한국을 포함해 중국, 호주 등 13국에서 개인 고객을 상대로 한 소비자 금융 업무를 철수키로 했다. 웰스파고는 올해 상반기에만 전체 지점의 3%인 지점 154곳을 폐쇄하고, 인력을 6% 감축했다. 국내에서도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이 지난 한 해 동안 점포 216곳 문을 닫았다.

동시에 핀테크 기업 인수, 핀테크 기업과 파트너십 체결 등의 보완책을 내놓고, 디지털 전환도 도모 중이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은 작년 12월 이후 6개월 동안 자동 재무 포트폴리오 구축 업체 ‘55ip’, 영국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넛메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특화 자산운용사 ‘오픈인베스트’ 등 핀테크 업체 세 곳을 인수했다. 이로 인해 올해 2분기 JP모건과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등 미국 5대 은행의 비용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 넘게 급증했다. 액수로는 66억달러(약 7조7000억원)에 달한다.

국내 대형 금융지주들은 금융 당국에 “인터넷 전문 은행 허가를 달라”는 요청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대면 금융을 보완하는 모바일 앱 만으로는 독점 메신저 카카오톡에 기반한 카카오뱅크는 물론, 다음 달 출범할 토스뱅크 등과도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융권에선 “내년 대선 이후 본격적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핀테크에도 본격 규제 가능성

핀테크 기업이 금융 업계의 주류가 됐다지만, 기업 가치가 지나치게 과대평가됐다는 지적도 있다. 대표적 핀테크 주식인 미국 스퀘어(263.2배)와 우리나라 카카오뱅크(236.3배)의 PER(주가수익비율)은 200배가 넘는다. 대표적 은행주인 JP모건(10.6배)이나 KB금융(5.1배)의 수십 배다. PER은 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지표로, 높을수록 주가가 기업 실적에 비해 고평가됐음을 뜻한다. 테슬라(383.6배)를 제외하면 넷플릭스(62.5배), 아마존(60.6배), 애플(30.2배) 등 고평가 논란이 있는 빅테크들과 비교해도 높다. 로닛 고스 시티글로벌인사이츠 수석은 “1990년대 후반 닷컴 붐 이후 살아남지 못한 기업도 많다”며 “핀테크 붐에서도 수많은 기업이 다양한 이유로 실패할 수 있다”고 했다.

규제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보고서에서 “대부분 국가의 핀테크 규제가 금융 부문에 미치는 빅테크의 영향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며 “금융 위험과 소비자 보호 외에도 데이터 보호 및 반(反)독점 문제도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해 말부터 핀테크 기업 옥죄기에 나섰다. 중국 금융 당국은 자본의 무질서한 확장 및 정보 독점 등을 이유로 지난해 11월 앤트그룹의 상장을 중단시키고, 지주사로 개편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 4월엔 징둥닷컴의 금융 자회사 징둥테크놀로지가 지주사 개편을 이유로 상장을 포기했고, 틱톡 운영사 바이트댄스는 연내에 증권 사업 부문을 매각하기로 했다.

미국에선 비자가 핀테크 업체 플레이드(Plaid)를 53억달러(약 6조원)에 인수하려다 작년 11월 법무부에 반독점 소송을 당해 인수를 포기한 바 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핀테크의 부상에 따라 규제 당국은 금융 규제, 독점 금지 정책, 개인 정보 보호 규제를 총체적으로 혼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핀테크(FinTech)

‘Finance(금융)’와 ‘Technology(기술)’의 합성어로, 금융과 IT(정보기술)를 융합한 금융 서비스 및 산업의 변화를 통칭한다. 핀테크 업체들은 모바일,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IT를 활용해 지급 결제, 송금, 자산 관리 등의 금융 서비스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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