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인사관리 단체 인사관리협회(SHRM)는 지난 3월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이 끝나면 ‘이직 쓰나미(Turnover Tsunami)’가 예상된다”고 했다. 팬데믹 기간 고용 한파로 억눌렸던 퇴사 욕구가 조만간 폭발할 것이라 본 것이다. 실제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 4월 이직률은 2.7%로 이직률을 추적하기 시작한 200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사정이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국내 기업 538사(社)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예년과 비교해 퇴사자가 늘어난 것 같다”고 답한 기업이 37.4%에 달했다.
취업 전 그토록 갈망하던 일이 왜 지금은 언제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 돼 버렸을까. WEEKLY BIZ는 더 나은 직장 생활을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묻고자 이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빌 버넷(64) 스탠퍼드대학 라이프디자인랩 설립자 겸 이사장과 데이브 에번스(68) 공동 설립자를 인터뷰했다. 두 사람의 강의는 실리콘밸리 인재의 산실(産室)이라 여겨지는 스탠퍼드대 혁신교육기관 디스쿨(D.School)에서 최고 명강의로 꼽힌다. 매 학기 약 20%의 스탠퍼드대 재학생들이 그들의 강의를 듣고 졸업 이후 삶을 설계한다. 과거 애플에서 랩톱 개발팀을 이끌었던 버넷과 세계적 게임사 EA(일렉트로닉 아츠)의 공동 창업자였던 에번스는 실리콘밸리의 여러 기업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실질적인 방안을 연구해왔다.
◇전 세계 직장인 85%가 불행
-왜 직장인은 불행할까?
“직장인들의 불만은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여론조사 기관 갤럽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직장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 채 불평불만을 품는 직장인 비율은 85%에 이르죠. 특히 코로나 사태로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면서 직장을 다시 생각할 여유가 더 생겼고 이런 불만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직장에서 불행한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직업’보다 좋은 직업이 포함된 ‘좋은 삶’을 바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긍정 심리학 연구를 살펴보면,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따라오는 겁니다. 특히 자율성과 관계성, 숙련도는 인간의 가장 대표적인 내재적 심리 욕구인데 자기 결정에 따라 일하고(자율성)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관계성), 자신이 하는 일을 잘할 때(숙련도) 사람은 그 자체로 만족하는 심리적 보상(행복감)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은 이런 측면을 간과하고 있죠.”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예컨대 저(버넷)는 2년 전 삼성과 함께 피부에 붙여 건강 상태를 추적하는 패치형 무선 센서를 개발하면서 삼성의 젊은 직원들과 협업한 적이 있습니다. (버넷은 스탠퍼드대 기계공학과 겸임 교수기도 하다) 당시 삼성 직원들은 자신들의 근무 환경에 만족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관리자 직급인) 윗세대와의 사고방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 미덕이었던 윗사람들은 ‘지금 열심히 고생하고 나중에 보상받아라’는 식으로 생각하지만, 젊은 직원들은 ‘현재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간극이 불만으로 변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관리자의 문제인가.
“직장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는 움직임은 사실 10여 년 전부터 나타난 추세입니다. 하지만 많은 기업과 관리자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고, 그 결과 많은 직원이 미친 듯이 퇴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둘 역시 기업에서 임원과 관리직으로 일했는데, 관리직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회사와 상사들은 ‘당신이 왜 이 회사에 중요한지’ ‘이 회사가 당신에게 왜 중요한지’ ‘이 회사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관리 감독 방식은 이제 먹히지 않는 시대입니다.”
◇이직보단 직무 변경이 유리
-하지만 직장인이 일터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할 순 없다. 이직만이 답인가.
“새로운 직장을 찾는 건 지금 직장에서 새 일을 찾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이직처가 정해지지 않았다면 ‘아직 그만두지 마라’고 조언합니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더 높은 만족감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직무를 그만두고 회사 내 다른 직무를 하고 싶다면 해당 직무에 종사하는 이들과 티타임이나 점심 모임을 만들어 어떤 전문성이 필요한지 정보를 모으고, 친분을 쌓는 노력을 하세요. 외부에서 같은 직무를 지원하는 것보다 더 수월하게 일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다른 직무에 대한 전문성을 쌓기 위해선 업무 외 시간을 쏟아야 하지만, 자신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면 문제 될 건 없습니다.”
-사내 정치를 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회사 내에서 권력과 영향력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올해 출간한 저서 ‘일의 철학’에서 사내 정치를 이해할 수 있는 다이어그램을 만들었는데, 권력(결정권)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구분해야 합니다. 조직의 전략과 문화를 따르면서 조직을 위해 가치를 창조한 직원이 그 가치를 인정받으면 영향력이 생기는데, 이 사람은 변화가 필요할 때 리더를 움직일 힘을 얻게 됩니다. 결정권이 없는 평사원도 얼마든지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정치의 진정한 정의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사내 정치는 어느 조직에나 있기 마련입니다. 직접 사내 정치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이런 역학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기만 해도 자신이 원하는 직무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한국 직장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신에겐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이 있습니다. 충분하지 않더라도 조금씩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걸 간과하지 마세요. 우리는 100세까지 살 거고 직업은 12번도 더 바뀔 겁니다. 큰 걸 기다리지 말고, 완벽한 걸 바라지 마세요. 그 대신 작은 기회를 잡아서 당신의 일을 더 즐겁게 만들고, 무엇보다 스스로 해낸다는 주도권을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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