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에너지 대란이 식량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농사에 필수적인 비료는 에너지 소비가 많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자 비료 가격이 치솟고, 이에 따라 농사 비용이 상승해 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연쇄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철이 다가오는 중이라 전문가들은 에너지 대란과 비료값 급등이 단기간 내 해소되지 못하리라 전망하고 있다. 러시아 VTB캐피털의 엘레나 사크노바 분석가는 블룸버그에 “비료 원재료값이 최근 10년간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올랐다”며 “비료 가격은 세계 식량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의균

◇비료값 상승 ‘퍼펙트 스톰’

26일 기준 유럽 천연가스 벤치마크인 네덜란드 TTF 선물 가격은 1메가와트시(MWh)당 89.5유로로 연초(17.59유로)보다 409% 상승했다. 세계 석탄 가격의 기준이 되는 호주 뉴캐슬 발전용 석탄도 연초(80.05달러)보다 179% 오른 1t당 223.4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치솟자 천연가스나 석탄으로 생산되는 농업용 비료 가격도 덩달아 급등하고 있다. 밀과 옥수수 경작에 사용되는 질소 비료인 요소(尿素)의 미국 멕시코만 인도분 선물 가격은 톤당 705달러로 연초(253.5달러)보다 180% 가까이 올랐다. 블룸버그가 집계하는 주간 북미 비료 가격 지수는 이달 22일 1013.7로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8년 8월(930)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에선 천연가스 가격이 요소 생산 비용의 70~90%를 차지한다. 천연가스에서 추출한 수소와 공기 중의 질소를 고온·고압으로 합성해 요소의 원료인 암모니아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천연가스는 암모니아의 원료인 동시에 합성 공정에 들어가는 에너지로도 활용된다.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자 유럽 최대 비료업체인 노르웨이 야라는 지난달부터 암모니아 생산량을 40% 감축하기로 했다. 미국 비료업체 CF 인더스트리스 역시 영국 내 공장 두 곳의 조업을 잠정 중단했다. 새뮤얼 테일러 라보뱅크 이사는 마켓워치에 “비료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퍼펙트 스톰(동시다발적 악재)’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각국 정부의 규제도 비료 가격을 밀어 올리는 원인 중 하나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지난 8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철권통치를 문제 삼아 경제 제재를 가했다. 여기에는 벨라루스 최대 국영기업이자 세계 3대 칼륨 비료 생산업체인 벨라루스칼리가 포함됐다. 제재가 발표되자 벨라루스칼리 측은 “서방의 제재가 전 세계 칼륨 가격 상승과 농작물 비료 공급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요소 공급의 44%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 요소 생산국 중국 역시 요소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중국은 풍부한 석탄 매장량을 활용해 요소를 생산하는데, 주요 요소 비료 생산지인 윈난성이 전력난과 탄소 배출 억제를 위해 비료업체에 감산을 명령했다. 또 지난 15일부터 중국 당국은 요소 등 비료 관련 29개 품목 화물 선적 시 새로운 수출 증명서를 요구해 사실상 비료 수출을 금지했다.

비료값이 급등하자 유럽 농가들은 비상이 걸렸다. EU 최대 곡물 재배국이자 수출국인 프랑스에선 비료가 많이 드는 옥수수 농사를 포기하려는 움직임도 나온다. 프랑스 농수축산사무국 곡물위원회 의장인 브노와 피에트르망은 “가격과 상관없이 내년 봄 농가에 비료가 공급될 수 있을지가 문제”라며 “일부 농민은 옥수수 대신 비료가 적게 드는 보리나 해바라기씨로 눈을 돌릴 수 있다”고 했다.

◇곡물·농기업 ETF 주목

아직까지 소맥과 옥수수 등 주요 곡물 가격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9월 세계 곡물 가격 지수는 전월보다 2% 올랐다. 그러나 본격적인 파종 시기가 시작되면 비료값 상승이 곡물 가격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최진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겨울밀과 남미 지역 옥수수 파종을 앞두고 급등한 비료 가격이 곡물 가격에 후행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며 “겨울철 라니냐(동태평양 적도 지역 저수온 현상) 재발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곡물 대란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했다.

곡물에 투자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농산물 관련 ETF(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하는 것이다. 특정 곡물에 직접 투자하고 싶다면 ‘투크리움 옥수수 ETF(CORN)’나 ‘투크리움 소맥 ETF(WEAT)’ 등 단일 농산물 선물에 투자하는 ETF를 구입하면 된다. 다만 개인 투자자 입장에선 개별 농산물의 시기별 수급을 파악하기 쉽지 않으므로 다양한 농산물에 투자하는 종합 농산물 선물 ETF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인베스코 DB 농산물 펀드(DBA)’는 옥수수와 소맥, 커피, 설탕 등 미국에서 거래되는 농산물 10종의 선물로 구성돼 있다. 연초 대비 수익률은 19% 정도다. 단, 선물 ETF 특성상 매월 만기가 되면 교체(롤오버) 비용이 들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운용 보수도 0.94%로 높은 편이다.

곡물 가격이 오르면 수혜를 입는 농업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반에크 벡터스 농산업 ETF(MOO)’는 농기계와 비료, 농약 등 농업 관련 글로벌 기업에 투자한다. 조에티스, 디어앤컴퍼니, 아이덱스, 바이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연초보다 22.6% 올랐다. 세계 최대 비료 업체인 캐나다의 뉴트리엔도 MOO에 포함돼 있다. 벤 아이작슨 스코샤뱅크 분석가는 투자자 노트에서 “유럽보다 천연가스 가격 상승 폭이 낮아 안정적으로 비료를 생산하고 있는 북미 비료 업체가 식량 인플레이션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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