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공유 경제’.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직격탄을 맞은 두 산업의 교집합에 있는 에어비앤비에 작년 3월은 악몽과도 같았다. 당초 예정돼 있던 기업공개(IPO)가 무산됐고,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환불 요청 건수가 예약 건수를 앞질렀다. 에어비앤비를 공동 창업한 브라이언 체스키(Brian Chesky·40) CEO(최고경영자)는 “우리가 알고 있던 여행은 끝났다.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암담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체스키 CEO의 우려대로 지난해 전 세계 호텔·리조트 매출은 6100억달러(약 720조원)로 전년(1조4700억달러) 대비 반 토막 넘게 쪼그라들었다. 2019년 14억6600만명에 달했던 전 세계 국제여행객은 지난해 4억명으로 수직 낙하했다. 그러나 에어비앤비는 작년 하반기 극적인 반전에 성공했다. 뼈를 깎는 구조 조정으로 3분기에는 흑자를 기록했고, 12월에는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16일 현재 에어비앤비 시가총액은 1316억달러(약 156조원)로, 전 세계 1·2위 호텔 체인인 매리엇(502억달러)과 힐튼(395억달러)의 시총을 합친 것보다 크다.
올해 3분기 에어비앤비의 매출은 1년 전보다 67% 증가한 22억3700만달러(약 2조6419억원), 순이익은 280% 증가한 8억3400만달러(약 9850억원)를 기록했다. 매출과 순이익 모두 사상 최대다.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에어비앤비가 괴물 같은 회복에 성공한 비결은 뭘까. 본격적으로 시작된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의 여행은 어떻게 바뀔까. WEEKLY BIZ가 지난 10일 화상 인터뷰로 체스키 CEO와 만났다.
◇괴물 같은 회복 비결은 ‘유연성’
에어비앤비는 지난해 다른 여행업계와 마찬가지로 혹독한 구조 조정을 거쳐야 했다. 체스키 CEO는 “지난해 우리는 8주 만에 사업의 80%를 잃었다”며 “구조 조정과 함께 회사를 바닥에서부터 새로 재건해야 했다”고 말했다. 먼저 종합 여행 플랫폼으로 발돋움하고자 팬데믹 이전에 추진하던 호텔, 럭셔리 숙박, 교통, 미디어 같은 사업을 중단하고, 주력 사업인 소형 주택 위주의 숙박 공유 사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회사 전체 인력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900명을 해고했고, 체스키 CEO를 포함한 임원들은 임금을 50~100% 삭감했다. 예정돼 있던 10억달러 규모의 마케팅도 전부 취소했다. 운영 자금이 부족해 11%라는 높은 이율로 돈을 빌려 쓰기도 했다. “위기 상황에서 가장 관리하기 어려웠던 건 제 심리 상태였어요. 상황이 보기보다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었어요. 리더로서 길을 제시하고, 희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한창 구조 조정 중이던 작년 5월, 체스키 CEO는 에어비앤비 내 검색 트렌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거주지와 가까운 여행지를 중심으로 검색량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대도시 중심의 장거리 여행에 집중해왔던 에어비앤비는 재빨리 전략을 바꿔 6월부터 ‘Go near(가까운 곳으로 가자)’ 캠페인을 시작했다. 웹사이트와 앱의 검색 알고리즘을 재설계해 잠재적인 여행자들이 거주지 근처의 여행지를 추천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같은 변화가 여름휴가철과 맞물리면서 에어비앤비는 반등에 성공했다. 작년 상반기에는 7억6000만달러(약 8976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3분기에는 2억1900만달러(약 2586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했다.
“에어비앤비의 적응력 높은 사업 모델과 혁신적인 문화가 이 같은 반등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에어비앤비에는 거의 모든 여행지의 숙소가 다양한 형태와 가격대에 걸쳐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유형의 여행도 가능하게 해줍니다. 여행 환경이 어떻게 바뀌든, 호텔 등 다른 경쟁 업체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쉽다는 뜻이죠. 올 들어 에어비앤비는 150개 이상의 서비스 업그레이드를 실시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올 한 해 에어비앤비보다 많은 혁신을 이뤄낸 기업이나 산업은 없습니다.”
◇팬데믹이 불러온 ‘여행 혁명’
그동안 직장에 묶여 주말이나 휴가철에만 여행을 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 팬데믹 이후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서 일해야 할 필요성에서 해방됐다. 어디에서나 일하고, 언제든지 여행하고, 더 오래 머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체스키 CEO는 팬데믹으로 새롭게 발견된 유연성이 ‘여행 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일주일에 5일 사무실에 출근할 필요가 없습니다. 줌(Zoom)과 같은 기술이 재택근무를 가능하게 해주고, 에어비앤비가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죠. 팬데믹 이전 ‘집’은 살기 위한 공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업무 공간이자 여행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유연성은 여행과 생활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이 같은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거예요.”
유연성은 여행의 선택지를 넓혔다. 전통적으로 에어비앤비에서 여행자가 몰리던 대도시 대신 근교나 전원을 찾는 수요가 늘었다. 올해 3분기 예약된 총숙박의 40% 이상이 집에서 300마일(약 483km) 이내였다. 전원으로 가는 여행자는 2019년 3분기 대비 40% 이상 증가했다. 같은 도시 여행이라 해도 누구나 다 아는 대도시 대신 숨겨진 중소 도시의 재발견이 활발해졌다. 2019년 3분기에는 상위 10개 도시가 에어비앤비 매출의 11%를 차지했으나, 올해 3분기엔 이 비율이 6%로 줄었다. 팬데믹 기간 6000개 이상의 도시와 마을이 첫 예약을 받았고, 여행자들은 총 10만개 이상의 도시를 여행했다.
또 다른 눈에 띄는 변화는 ‘한 달 살기’식의 장기 체류 트렌드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공통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올해 3분기 예약된 총숙박의 20%가 28일 이상의 장기 체류였다. 2019년 3분기에는 장기 체류 비율이 14%에 불과했다. 7박 이상 체류하는 여행자 비율은 45%나 됐다. 호스트들도 높아진 장기 체류 수요를 환영하고 있다. 현재 예약 가능한 숙소의 90% 이상이 장기 체류를 허용하고, 월 단위 예약 시 할인을 제공하는 숙소 역시 2019년보다 20% 증가했다. “사람들은 집을 오래 비울수록, 집과 비슷한 공간에 있고 싶어해요. 앞마당과 뒤뜰이 있고,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주방이 갖춰진 내 집 같은 공간 말이죠. 이게 바로 장기 체류에서 에어비앤비가 호텔보다 경쟁력이 있는 이유입니다. 하룻밤을 머문다면 호텔이나 다른 선택지가 있겠지만, 한 달이나 두 달을 머문다면 집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에어비앤비는 올해 초 ‘유연한 검색(I’m flexible)’ 기능을 도입했다. 유연한 검색을 선택하면 여행지를 정하지 않아도 해변·농장·통나무집 등 24개의 카테고리별 숙소를 살펴볼 수 있다. 일정 역시 정확한 날짜를 입력하는 대신 주말 휴가, 일주일 휴가 또는 한 달 살기 같은 방식으로 검색할 수 있다. 현재까지 유연한 검색 기능은 5억회 이상 사용됐다. “고정된 여행지와 일정을 입력하던 기존 검색 기능을 사용하면 범위가 좁아질 수밖에 없어요. 반면 유연한 검색 기능은 여행자들이 더 많은 숙소를 살펴보고, 자신의 취향에 딱 떨어지는 숙소를 발견할 가능성을 높여주죠. 그래서 실제 예약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더 많습니다. 에어비앤비가 단순히 숙소 검색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여행자들에게 어디로 떠날지 ‘영감(靈感)’을 주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해외여행이 돌아온다
팬데믹 이전 에어비앤비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던 해외여행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올해 3분기 해외여행 매출 비율은 33% 수준이었다. 지난 1분기(20%)와 2분기(27%)보단 늘었으나, 여전히 저조한 수치다. 그러나 회복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중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국경 개방을 발표하자, 일주일 만에 미국을 목적지로 한 해외여행 예약이 44% 증가했다. 지난달 전체 해외여행 예약 수는 2019년 수준의 80%까지 올라왔다. “해외여행에 대한 억눌린 수요가 폭발하고 있습니다. 여행은 제한하면 할수록 억눌린 수요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어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각국 정부가 국경을 완전히 열고, 사람들이 여행을 다시 안전하다고 느끼기 시작한다면 해외여행은 2019년 수준 이상으로 돌아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북미나 유럽보다 해외여행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도 뚜렷한 회복세가 나타날 거예요.”
다만 해외여행의 모습은 예전과 다를 것이라 전망했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의 출장 목적 여행은 감소할 거예요.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회의를 위해 여행을 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졌으니까요. 줌과 같은 기술이 출장의 필요성을 대부분 대체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새로운 유형의 출장 여행이 등장할 거예요. 예컨대 각국에서 원격 근무하는 직원들의 모임을 위한 여행 같은 것 말이죠. 업무보다는 관계 형성에 초점을 맞춘 출장이 되겠죠.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해요.” 여가를 목적으로 한 해외여행 역시 장기 체류가 대세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국경이 다시 열린다면 몇 달이나 1년씩 다른 나라에서 사는 여행자가 늘어날 겁니다. 사람들의 유연해진 생활 패턴 덕분이죠. 이미 미국에선 이런 변화가 나타나고 있어요. 내년 여름에는 다른 나라에서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누리는 가족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에어비앤비는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해 50개 이상의 겨울 업데이트를 발표했다. 먼저 여행자가 숙박 기간 예정돼 있는 줌 회의 등에 대비해 에어비앤비 앱에서 숙소 와이파이 속도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올해 에어비앤비 여행자가 숙소를 검색하면서 와이파이 여부를 확인한 경우가 2억8800만건에 달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또 반려동물과 함께 에어비앤비에서 장기 체류하는 여행자가 늘면서 호스트가 반려동물 요금을 추가할 수 있게 하고, 반려동물에 의한 피해 보상도 받을 수 있게 했다. 본격적인 해외여행 재개를 앞두고 번역 엔진도 새롭게 개선했다.
◇”메타버스보다 실제 경험”
에어비앤비는 지난 여름 누적 여행자 수 10억명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체스키 CEO는 “전 세계의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이 에어비앤비로 10억번 넘게 교류했다는 뜻”이라며 “에어비앤비는 앞으로도 세상을 더 작게 만들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체스키 CEO는 앞으로 여행 산업에서 성공의 열쇠는 ‘누가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느냐’가 될 것이라 봤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사업 원칙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겁니다. 여행은 사람들이 가장 열망하는 서비스 중 하나예요. 누구나 돈이 있으면 여행을 가고 싶어하죠. 그렇기 때문에 실망스러운 경험을 하면 어떤 다른 서비스보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세계에선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는 기업이 성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에어비앤비가 호스트와 여행자를 위한 놀라운 경험을 디자인하는 데 집중하는 이유입니다.”
에어비앤비가 요즘 대세로 떠오른 ‘메타버스(Metaverse·3차원 가상 세계)’에 올라타지 않는 이유도 바로 ‘경험’ 때문이다. “당장은 메타버스 사업에 진출할 계획이 없습니다. 메타버스 플랫폼 덕분에 인터넷 세상이 좀 더 3차원적이고, 몰입감 있게 변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요.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현실 세계에 충실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세상을 더 많이 경험할수록 더 많은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에어비앤비가 해야 할 근본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