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김영석

올 하반기 국내 유통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한 신입 사원 A(25)씨는 입사 100일째를 맞은 날 뜻밖의 경험을 했다. 팀원들이 A씨 자리에 모여 ‘독보적 신입 사원, 입사 100일 축하!’라고 적힌 작은 플래카드를 제작해 걸어주고 축하해주는 자리를 만들어줬다. A씨는 “이 일이 나와 맞나 고민하기 바빴는데, 팀에서 챙겨주니 없던 애사심도 생겼다”고 했다. A씨에 대한 회사의 지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제 막 기본 직무 교육을 마친 그가 업무에 좀 더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동성(同性)의 멘토링 선배를 배정해 3개월간 밀착 지원했다. 멘토와 친목을 다질 수 있는 시간까지 별도로 배정했다. A씨는 “미리 보고만 하면 업무 시간에도 멘토와 함께 외출해 방탈출 카페나 공방을 다니면서 인간적으로 가까워졌다”고 했다.

신규 직원이 조직에 적응하고 안착하도록 돕는 과정을 뜻하는 ‘온보딩(Onboarding)’이 기업 인재 유치의 핵심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바리퍼블리카(토스)나 카카오뱅크 같은 기업은 아예 온보딩 직무를 전담하는 직원을 따로 뽑을 정도다. 평생 직장 시대가 가고 이직 시대가 도래하면서 쉽게 떠나는 인재를 붙잡으려는 노력이 한층 치열해진 것이다. 구인구직 포털 잡코리아의 직장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작년 기준 1년 차 신입 사원의 이직 경험률은 77.1%에 달했다. 10년 전인 2010년만 해도 이 비율은 37.7%에 불과했다.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원격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면서 온보딩 필요성은 더 부각됐다. 직장 동료와의 소통이 줄고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입사 몇 개월 만에 훌쩍 떠나는 직원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자 기업들도 단순 직무 교육을 넘어 구애 활동을 하는 마음으로 온보딩에 임하고 있다.

◇첫인상 중시하는 기업들

요즘 기업들은 새 입사자에게 좋은 첫인상을 얻으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입사가 결정됐지만 아직 출근은 시작하지 않은 예비 입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온보딩 사이트 ‘Hello HMG’를 올해 처음 구축해 운영 중이다. 입사 전 체크리스트와 함께 조직 문화와 업무 팁 등을 동영상과 웹툰으로 만들어 소개하는 사이트다. 박지성 선수(현 전북현대모터스 어드바이저) 같은 유명 인사의 환영 인사는 덤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요즘 취업 준비생들은 여러 곳에 지원하는 만큼 합격했다고 반드시 입사한다는 보장이 없다”며 “합격 발표 후 입사 전 기간은 케어 측면에서 공백기였는데, Hello HMG를 통해 입사 전부터 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정서를 갖게 하려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신규 입사자에게 기업의 로고나 디자인 등이 담겨 있는 각종 사무용품과 굿즈(기획 디자인 상품)를 담은 선물 상자를 전하기도 한다. 이른바 ‘웰컴키트’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입사자를 대상으로 금장 명함과 함께 머그잔·마우스패드·무선충전기 등을 선물했다. SK이노베이션·LG화학·카카오·KT·스타벅스코리아·NC소프트·우아한형제들 등도 다양한 웰컴키트를 선물하고 있다. 기업이 굳이 웰컴키트를 만들어 뿌리는 배경에는 신입 사원의 애사심 고취 외에 대외 홍보 효과도 있다. 합격자들이 취업 성공을 알리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웰컴키트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당장 인스타그램만 해도 ‘#웰컴키트’를 검색하면 수천 건의 사진이 뜬다.

◇메타버스로 건너간 온보딩

팬데믹은 온보딩 방식에도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회사를 제대로 다녀보지도 못한 신입 사원들이 원격 근무부터 배우다 보니 온보딩의 필요성과 어려움이 동시에 늘어났다. 기업들이 찾은 돌파구는 차세대 기술로 떠오른 메타버스(3차원 가상 세계)다. 네이버는 작년부터 ‘코드데이’라는 온보딩 프로그램을 자사의 메타버스 서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진행하고 있다. 100명 이상의 신입 사원이 가상공간에 만든 아바타로 5~6명씩 팀을 맺어 다양한 온라인 워크숍을 가졌다. 입사 2년 차 네이버 직원은 “올해는 제페토 내 스키점프 게임을 활용해 팀 간 점수 대결도 벌였는데 사내에 실시간 중계되다 보니 웬만한 스포츠 경기 이상으로 재밌게 봤다”고 했다.

넥슨삼정회계법인은 입사 후 회사 구경도 제대로 못 한 신입 사원들을 위해 메타버스 사옥을 준비했다. 가상공간에 실제 사무실 모습을 최대한 반영한 사옥을 지어 구경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메타버스 사옥은 특히 온보딩뿐 아니라 팬데믹 장기화 속에서 각종 대내외 행사나 직원들의 교류 장소로도 활용될 수 있어 많은 기업이 눈독 들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최초로 메타버스 사옥을 마련했다고 밝힌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이달 초 80여 명의 임직원이 메타버스 공간에 모여 송년회를 갖기도 했다.

◇조직 흔드는 신입 이직 막아라

기업들이 온보딩에 적극 투자하는 배경에는 채용 제도의 변화도 있다. 경영 환경이 복잡해지고 신기술 등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업 역시 필요한 인재만 뽑아 적재적소에 민첩하게 배치할 수 있는 수시 또는 상시 채용 제도를 선호한다. 공채를 했던 10대 그룹만 해도 현재 7곳이 수시 채용으로 전환했다. 문제는 공채가 사라지면서 신입 사원들의 애환을 달래주고 정보 네트워크 역할을 한 동기 문화도 함께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온보딩을 통해 신규 직원들의 정서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2019년부터 상시 채용 제도로 전환한 현대차그룹 인사담당자는 “과거 공채 시기에는 회사가 어떤 곳인지 이해시키는 데 집중한 회사 중심의 푸시형 콘텐츠가 많았지만, 지금은 개인의 성장이 곧 회사의 성장이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상호 토론, 자기다움 찾기 등 정서적 측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애착 관계를 이끌어낸다”고 말했다.

온보딩에 대한 기업의 관심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신입 사원의 이탈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박오원 가톨릭대 교수(경영학)는 지난 8월 학술지 ‘조직과 인사관리연구’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신입 직원의 이직이 고참 직원들의 이직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331개 기업 직장인 8092명을 설문조사 한 결과다. 연구진은 “신입 직원은 외부 노동시장에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외부 정보를 잘 알고 있고 조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본다”며 “이들이 떠나는 걸 본 기존 직원들도 회사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기회가 되면 회사를 떠나는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신입 직원들이 조직에 갖는 불만 사항을 확인하고 개선해 회사 내에서 사회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전략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온보딩(Onboarding)

영어로 ‘배에 탄다’는 뜻으로, 신규 직원이 조직에 빨리 적응해 안착할 수 있도록 조직 문화를 알려주고 업무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 등을 교육하는 과정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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