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자율주행 자동차를 2년 안에 완성할 수 있다.”(2015년)

“아,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2021년)

자율주행차를 두고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6년의 시차를 두고 내뱉은 말이다. ‘혁신의 아이콘’인 그는 2013년부터 꾸준히 완전 자율주행차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밝혀왔다. 2015년 미국 경제지 포천 인터뷰에서는 2년 안에 내놓겠다고 했고, 다음 해와 그 다음 해에도 비슷한 말을 되풀이했다. 2019년에는 “내년 말이면 고객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고, 작년 10월에는 “올해 안에 출시된다”고 말했다.

구글의 자율주행차인 ‘웨이모’가 도로주행을 하고 있다./웨이모

그런데 올해 들어 말이 바뀌었다. 지난 7월 그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일반화된 자율주행은 어려운 문제다. 인공지능(AI)의 큰 부분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려울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어려움은 명백했다.”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완전 자율주행차는 인류의 오랜 꿈이다.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가진 빅테크 기업들이 속속 뛰어들면서 그 숙원이 조만간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한껏 달아올랐다. 하지만 최근 비관론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문가들을 인용, “지금까지 800억달러(약 95조원)라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완전 자율주행차가 가능하려면 수십년이 걸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운전자 없이 움직이는 자동차에 대한 꿈은 공식적으로 사라졌다”고 했다.

◇2단계 테슬라, 안전 무시 폭로까지

미국자동차공학회가 분류한 기준에 따르면 자율주행 시스템에는 다섯 단계가 있다. 1단계는 자동차가 자동으로 가감속을 해 운전자를 보조하는 수준, 5단계는 운전자가 전혀 필요 없는 수준이다.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현재 2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2단계는 핸들 조종과 속도 조절을 자동차가 알아서 하지만, 운전자는 늘 운전석에 앉아 주시해야 하고, 돌발 상황이 생기면 직접 운전해야 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테슬라는 2단계보다 높은 단계에 도달한 것처럼 광고해 소비자들을 현혹한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지난 9월에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시속 145㎞로 달리던 테슬라 승용차가 자율주행 도중 가로수와 충돌한 뒤 불에 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당시 운전석에 있던 차량 소유주가 사망했다.

최근엔 테슬라가 의도적으로 안전을 무시해왔다는 폭로까지 나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테슬라 자율주행차 개발을 담당했던 전직 직원 19명은 “머스크의 비현실적인 비전 때문에 테슬라가 안전을 무시했다”고 증언했다. 자율주행차가 주변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려면 카메라뿐만 아니라 레이더 등 다른 센서도 필요하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견해이지만, “카메라만으로도 자율주행이 가능하다”는 머스크의 고집 때문에 충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픽=이동운

◇인력 유출 잇따르는 애플·구글카

애플도 자율주행차 개발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애플은 자율주행차 개발 사업을 ‘타이탄 프로젝트’라고 명명하고 2015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25년 애플카를 출시한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세상에 없는 물건을 만들어온 애플이 내놓을 자율주행차에 대한 기대감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애플카의 경우 정확히 공개된 바는 없지만, 3~4단계를 개발하고 있을 것으로 자동차 업계는 추정한다. 3단계의 경우 자동차가 자동으로 주행하고, 운전자는 차량을 보지 않고, 다른 일을 해도 된다. 만약 고장과 같은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운전자가 직접 운전해야 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핵심 인력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나는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애플카 초창기 멤버 가운데 한 명인 벤저민 라이언이 지난 2월 미국 로켓 제조 스타트업으로 간 것을 시작으로,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을 담당하던 직원과 로봇기술팀 총괄 직원도 애플을 떠났다. 지난 9월에는 최고 핵심 인력으로 꼽혔던 더그 필드 부사장이 포드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달에는 애플카의 레이더 시스템을 개발하던 에릭 로저스 수석 엔지니어가 항공 택시 사업을 추진하는 스타트업으로 옮겼다. 레이더는 자율주행차 주변에 있는 물체를 눈이나 비, 밤이나 낮 같은 기상 조건과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감지하는 ‘눈’ 역할을 한다. 눈을 개발하던 핵심 인력이 빠져나간 셈이다. 이 밖에 배터리 개발에 몸담았던 직원과 하드웨어를 개발하던 관리자급 직원도 나란히 항공 택시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이런 이직 행렬을 두고 애플카 개발 작업이 순탄치 않은 증거라는 설이 나온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유시복 자율협력주행연구센터장은 “애플이 많은 자본과 인력을 투입했지만, 다른 업체보다 잘 만드는 게 쉽지 않다 보니 실망한 직원이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애플만이 아니다. 자율주행차 업계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GM 자회사 크루즈의 댄 암만 최고경영자가 이달 초 회사를 떠났다. 앞서 지난 4월엔 구글이 세운 자율주행차 회사 웨이모의 존 크래프칙 CEO가 갑자기 물러났다. 미국 CNBC는 “크래프칙의 퇴장은 자율주행에 대한 희망이 과장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차량 호출 업체 우버리프트는 아예 자율주행차 프로젝트 포기를 선언했다. 유시복 센터장은 “기업들이 자율주행차로는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차 세계 시장 규모

◇예상보다 더딘 기술 개발... 기대감은 여전

완전 자율주행차에 대한 비관론이 높아지는 이유는 기술 확보가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소프트웨어 기술 발전이 더디다.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하려면 카메라와 센서 등을 통해 하루 평균 2만~4만GB에 이르는 정보를 수집한 뒤 즉각적으로 분류·처리해야 한다. 그러려면 인간의 뇌처럼 빠른 AI가 필수적인데, 이 분야에서 획기적인 진척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해킹돼 승객이 차량에 갇히거나 브레이크나 조종간 통제력을 잃을 경우 어떻게 대처하느냐도 아직 풀지 못한 숙제다.

영국 온라인 경제 매체 버딕트는 “완전 자율주행차를 생산해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며 “마치 자율주행에 거의 다가간 것처럼 포장하는 광고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주식시장에서는 자율주행차에 기대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최근 모건스탠리는 애플카에 대한 기대감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현재 170달러대인 애플의 목표 주가를 200달러로 높였다. LG이노텍은 애플카에 부품을 납품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최근 두 달간 주가가 80%가량 올랐다. 반도체 기업 인텔이 지난 2017년 153억달러에 인수한 이스라엘의 자율주행 기술기업 모빌아이는 내년 중순 나스닥 상장을 준비 중인데, 예상 기업가치가 500억달러(약 60조원)로 현대차(45조원)보다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