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GVC) 위기를 지속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개입입니다.”
공급망 관리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히는 요시 셰피(Yossi Sheffi·74) MIT(매사추세츠공대) 교수가 WEEKLY BIZ 서면 인터뷰에서 내놓은 답변이다. 셰피 교수는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후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장기화된 원인에 대해 “연방준비제도(미국 중앙은행)는 서명 한 번으로 당장 수조 달러를 풀 수 있지만, 부품이나 완제품은 수천 마일 떨어진 지구 반대편에 있다”고 지적했다. 급격한 유동성과 소비 수요 증가가 공급망 병목현상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지난달 26일 발표된 마스터카드의 스펜딩펄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연말 특수 기간인 지난 두 달간(11월 1일~12월 24일) 온·오프라인 소매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8.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로, 팬데믹 직전인 2019년 같은 기간보다 10.7% 많다. 그는 “산업과 물류 조직이 재료 수십억 톤을 추출하고 처리·조립·운송하려면 가혹한 물리 법칙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며 “최근에는 특히 미국의 수요가 엄청나기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해소되지 않는 공급망 문제는 각종 원자재 가격과 물류 비용을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리면서 자본주의 체제 최대 적(敵)이라 불리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함께 나타나는 현상) 우려까지 부채질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항로의 컨테이너 운임을 종합해 지수화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만 해도 지난달 31일 기준 5046으로 팬데믹 직전인 재작년 1월 초보다 5배 가까이 뛰는 등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WEEKLY BIZ는 세계 경제를 옥죄는 글로벌 공급망 문제의 구체적인 원인과 해법, 앞으로의 전망을 묻고자 셰피 교수를 찾았다.
MIT에서 엔지니어링 시스템학과장과 운송물류연구센터(CTL)장을 함께 맡고 있는 셰피 교수는 40년 넘게 공급망 관리를 연구해온 석학이다. 스페인·콜롬비아·말레이시아·룩셈부르크·중국에 물류 연구센터를 설립하며 글로벌 공급망 연구 네트워크를 진두지휘해왔고, 재작년 10월에는 팬데믹발 글로벌 공급망 대란을 분석하고 재편 방안을 다룬 저서 ‘뉴 애브노멀(The New Abnormal)’을 출간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채찍 효과 일으키는 경기부양책
-공급망 위기 언제까지 이어질까.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이 상황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올해 중반쯤에는 최악의 위기는 벗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연말 이후 수요가 좀 줄면서 상품 흐름에 대한 압력도 줄어들 테니까요. 문제는 미국 정부의 정책입니다. 만약 1조8000억달러(약 2152조8000억원) 규모의 새로운 사회 인프라 투자 법안(아메리칸 패밀리스 플랜)이 통과되면 상황은 더 나빠질 거고 글로벌 공급망이 회복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더 길어질 겁니다.”
-경기부양책이 어떻게 공급망 문제를 일으키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 정부는 막대한 경기 부양 자금, 실업 수당, 급여 보호 제도 등으로 팬데믹에 대응했고, 중앙은행은 양적완화와 저금리로 유동성을 공급했습니다. 이런 조치는 어려움을 겪는 가계를 부양해줬지만 동시에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다른 많은 가계는 지출 감소와 소득 증가라는 두 배의 보너스를 누렸습니다. 미국에서 개인 저축률은 4배 증가했고 전 세계 소비자들은 (팬데믹 이후 1년간) 약 5조4000억달러(약 6458조4000억원)를 초과 저축했습니다. 이렇게 쌓인 돈은 올해 들어 급격한 소비 증가로 이어졌죠. 수요와 공급 사이에 발생한 이런 불균형은 공급망 상류로 올라가면서 증폭됩니다. 이른바 ‘채찍 효과(bullwhip effect)’죠.”
셰피 교수가 언급한 채찍 효과는 채찍 손잡이에 가한 작은 힘이 채찍 끝에선 커다란 충격으로 변하듯 수요 변화가 공급망을 타다 보면 어느새 지나치게 확대 또는 축소되면서 공급망 전체가 마비되는 걸 뜻한다. 가령, 하루 100개의 화장지를 팔고 4일분(400개)의 재고를 보유하는 소매 업체는 일일 판매량이 200개로 늘어나면 이에 맞춘 4일 치 재고(800개)를 유지하려 600개를 추가 주문하게 된다. 이 경우 유통업체 입장에선 100개에 불과했던 주문이 갑자기 600개로 뛰어오른 셈이다. 이런 과정이 유통업체뿐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제조업체와 1~3차 공급업체, 원자재 기업 등 서플라이 체인 상류로 올라가면서 증폭되고 결국에 공급망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다.
◇재고 쌓기는 대응책 아냐
기업들이 재고를 쌓아두지 않고 판매량에 맞춰 보충하는 JIT(Just in time·적기 공급 생산) 방식이 공급망 위기의 배경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JIT는 원래 일본 도요타가 1950년대 개발한 생산운영관리 기법으로, 재고 비용을 줄이고 제품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생산 혁신을 일으키며 자동차뿐 아니라 패션·식품·가공·제약 등 전 세계 다양한 산업에 전파됐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공급망 위기가 대두하자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재고를 최소화하는 JIT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팬데믹과 결합해 공급망 혼란을 부추겼다”며 기업들이 재고 보유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JIT가 공급망 위기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있다.
“잘못된 주장입니다. JIT를 포기한다고 해서 현재의 공급망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팬데믹처럼 전 세계적으로 지속적인 부품 부족에 직면한 상황에선 추가 재고를 유지한다고 해서 생산 이슈를 막을 수 없습니다. 단지 더 큰 공급 부족이 닥칠 순간을 늦출 뿐입니다.”
셰피 교수는 기업이 재고 보유를 늘려도 팬데믹 상황에선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도요타를 예로 들었다.
“사실 많은 기업은 JIT를 유지하면서도 단기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한 일부 안전 재고(safety stock)를 쌓고 있습니다. 도요타도 마찬가지입니다. 2011년 후쿠시마 사태를 겪은 도요타는 공급망 취약점을 검토한 뒤 단기 변동성에 대응하고자 대량의 반도체 칩 안전 재고를 확보했습니다. 덕분에 2021년 상반기 대부분의 자동차 기업이 생산을 줄이거나 공장을 폐쇄하는 동안 도요타는 거의 최대 생산 수준에 가깝게 공장을 돌렸죠. 올해 2분기에는 사상 처음으로 미국 GM(제너럴모터스)을 제치고 미국 판매 차량 대수 1위에도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다음은 어떤가요. 9월에는 계속되는 반도체 부족 때문에 결국 전체 생산량의 40%를 줄여야 했습니다.”
셰피 교수는 오히려 JIT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공급망 위기 대응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JIT는 수요 변화를 즉각 반영하는 시스템인 만큼 공급업체와 제조업체, 고객 간의 긴밀한 관계를 조성하고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한다”며 “생산 시스템을 더 유연하게 만들어 기업 공급망의 회복탄력성을 높여준다”고 했다.
◇유연한 기업 문화가 공급난 해법
-그렇다면 기업 입장에서 공급망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가장 중요한 대응책은 ‘유연한 기업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유연한 기업은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습니다. ‘진실을 자유로이 말하는 규범’ ‘계층적인 승인 과정을 거칠 시간이 없을 때 문제와 가장 밀접한 사람들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 ‘업무 마비 시 직급보다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것’ 등입니다. 팀원들이 권력(고위층)에 진실을 말할 수 있을 때 정보는 빠르게 이동합니다. 정보의 중앙 집중화는 조직이 최대한 빨리 문제를 감지하고 신속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습니다. 예컨대 글로벌 패션 기업인 자라(Zara)는 문제 발생 시 라인 운영자나 지역 감독관이 고위 경영진의 승인 없이도 신속하게 시정 조치를 할 권한을 갖습니다. 문제와 밀접한 층위에서 의사 결정을 내린다면, 완화 조치를 신속하게 취해 작은 위기가 큰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죠. 그러려면 실수를 저지른 사람을 벌하지 않는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한국 기업들의 팬데믹 대응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기업과 일한 적이 없어서 많은 답변을 드리긴 어렵습니다만, 대한항공은 여행길이 막히자 누구보다 빨리 화물 수송 사업에 집중했고 2020년 전 세계 항공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냈습니다. 유연하게 움직이고 대응해 위기를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셰피 교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마치 ‘두더지 게임’처럼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급망이 있는 현지에서 발생한 정보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도구들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이거팀’과 ‘공급망 지도화’가 대표적인 수단이다. 타이거팀은 플렉스(세계 3위 전자제품 하청 생산업체)와 존슨앤드존슨 같은 선두 기업들이 운용하는 소규모 조직으로, 공급업체나 고객사가 있는 현장을 직접 누비면서 현지 이해관계자들과 현지 언어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 관계자와 접촉하고, 현지 언론과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1차 정보를 수집해 지원하고 사전 조치도 취한다. 플렉스는 타이거팀의 활약 덕분에 2020년 중국 춘절(2월 1~2일) 전에 이미 팬데믹 조짐을 감지했고, 곧장 중국 내 직원 6만명이 사용할 수 있는 개인방역용품(PPE)을 비축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대응책인 공급망 지도화는 많은 기업이 공급업체의 설비가 실제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사무실이나 배송 출발지만 알 뿐 납품되는 부품이 어느 지역 공장에서 생산되는지 모르면 공급망 문제에 발 빠른 대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셰피 교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급업체들의 위치 데이터를 최대한 찾아내 지도화하면 한 공급업체가 마비되는 즉시 회사는 어떤 제품의 공급이 부족할지, 어떤 고객 업체가 영향을 받을지, 수익에 얼마나 타격을 받을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셰피 교수는 자신의 MIT 제자인 빈디야 바킬이 설립한 레질링크(Resilinc)를 예로 들었다. 이 회사는 기업 고객의 공급망 지도를 만든 다음 AI(인공지능) 분석으로 문제가 될만한 지역과 공급업체들을 미리 파악해 통보해준다. 셰피 교수는 “레질링크 AI는 이미 2019년 말 중국 우한 지역의 알 수 없는 폐렴을 포착했고 2020년 1월 4일 고객들에게 경보를 발령했다”며 “(레질링크의) 고객사들은 모바일 앱에서 그곳에 어떤 공급업체가 있고 어떤 부품을 만드는지, 자신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리쇼어링보단 ‘중국+1′ 전략
-팬데믹 이후 전망도 궁금하다. 미·중 갈등과 팬데믹 여파로 보호무역주의와 리쇼어링(생산 기지 본국 회귀)이 가속화될 거란 전망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지.
“그런 상황은 경제가 아닌 정치 세력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에 예측이 쉽지 않습니다. 다만 경제적인 관점에서 자유무역과 세계화는 사회에 큰 이익입니다. 관세는 상대국의 보복 관세를 부르기 때문에 (소비 측면에서) 시민에 대한 세금입니다. 그리고 많은 회사의 리쇼어링은 사실상 회사를 소비자에게서 더 멀어지게 합니다. 이미 수십 년간 설비 투자를 해온 중국은 이제 와 잃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시장입니다. 예컨대 독일의 글로벌 화학 회사 바스프(BASF)의 공급망 담당 임원인 랄프 부쉐는 ‘중국에서의 생산은 중국이나 아시아를 위한 것이기에, 우리는 중국에서 생산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글로벌 입지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한 기업들은 리쇼어링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 회사는 ‘중국+1′ 전략을 차세대 자본 투자 계획으로 언급합니다. 중국 공급망은 놔두고 위험 분산을 위해 인근 아시아 국가를 검토 중이죠.”
-미래에 또 다른 팬데믹이 발생한다면 세계경제는 지금과 다른 대처가 가능할까?
“그렇진 않을 겁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알 수 있지만 사람과 기업, 정부는 모두 나쁜 일을 매우 빨리 잊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다음 위기는 팬데믹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악성 사이버 공격 때문에 인터넷과 신용카드, 줌(화상회의 플랫폼) 등이 마비돼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럴 경우 전자상거래 보단 오프라인 상점이 중요해지고 우리는 팬데믹 기간 했던 것과 정반대되는 대응을 해야 할 겁니다. 그것이 바로 기업의 유연성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채찍 효과(bullwhip effect)
채찍 손잡이에 가한 작은 힘이 채찍 끝에선 커다란 충격으로 변하듯 최종 소비자 수요가 소매 업체와 유통, 제조 , 공급 업체 등 공급망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지나치게 확대 또는 축소되는 현상. 수요 변동성이 극심할 경우 공급망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키워드: JIT(Just in time·적기 공급 생산)
1950년대 일본 도요타가 개발한 생산운영관리 기법으로, 재고를 쌓아 두지 않고 수요량에 맞춰 적기에 필요한 만큼만 제품을 생산·공급하는 방식이다. 재고비용을 줄일 수 있고, 품질도 유지할 수 있어 전 세계 여러 산업 분야에 전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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