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TSMC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아시아 신흥국이자 수출 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라는 점에서 ‘닮은꼴 국가’로 불리는 한국과 대만의 주식시장이 작년 하반기 이후 상반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대만 가권지수는 최근 미국의 통화 긴축 우려와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소식에 소폭 하락하긴 했으나 작년 4분기 이래 6.7% 상승(1만6570.89→1만7674.40)했다.(대만 증시는 춘제 연휴로 2월 7일 재 개장 예정) 반면 한국 코스피 지수는 같은 기간 15.5%나 하락(3207.02→2709.24)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이 60~70%에 달하는 두 나라는 수출 경기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작년 4분기 한국의 수출 증가율(25%)이 대만(26%) 못지 않게 높은 수준을 기록했음에도 주식시장의 온도 차가 컸던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한국과 대만 증시의 디커플링(decoupling·비동조화)이 심화되는 원인으로 ▲미·중 갈등에 따른 반사 이익 차이 ▲산업 구조 차이에 따른 무역수지 격차 ▲수출 물량 및 단가의 증가율 차이 ▲동남아 지역 공급망 붕괴 여파 등 크게 네 가지를 들고 있다.

① 미·중 갈등으로 반사 이익 제대로 본 대만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지적하는 부분은 대만이 미·중 갈등 속에 미국의 무역 파트너로 급부상한 데 반해 한국은 미·중 갈등에 따른 반사 이익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중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2018년 7월을 기점으로 대만으로부터의 수입을 늘리기 시작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작년 11월 기준 대만의 대미 수출은 2020년 1월 대비 1.73배 가량 늘었는데 같은 기간 한국의 대미 수출은 1.42배 증가하는데 그쳤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과 군사·외교적 대립 관계에 놓인 대만은 우군으로 삼기에 좋고, 중국에서 들여오던 각종 IT 관련 부품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는 나라다. 대만 정부도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의 협력이 필요했고 이러한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신한금융투자 김희원 연구원은 “한국은 2015년 이후 미국과의 무역 흑자가 200억달러 중반 수준에서 박스권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미중 갈등에서 파급된 반사 이익을 한국보다 대만이 더 누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수출액 및 무역수지 추이

②대만, 원자재 가격 급등에도 타격 덜해

대만이 한국에 비해 더 탄탄한 무역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양국 간 증시 온도차를 부른 요인이다. 한국은 작년 초 69억달러(약 8조3000억원) 가량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는데 이후 하락세를 보이다 지난달에는 결국 5억8600만달러(약 7040억원) 적자로 전환했다. 무역수지 적자는 2020년 4월 이후 1년 8개월 만이다. 수출은 여전히 호조를 보였지만, 에너지와 원자재 등 수입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반면 대만은 작년 초 62억달러(약 7조4500억원) 가량의 흑자를 기록한 이후에도 꾸준히 흐름을 유지해 지난달에도 58억달러(약 6조9700억원) 가량의 흑자를 냈다.

이런 격차는 양국의 산업구조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한국은 자본재 등 중후장대 산업이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원자재 가격 상승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대만은 IT 중심의 산업구조를 갖고 있어 상대적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의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③인플레이션 덕에 수출액 늘린 한국

작년 한국의 수출액 급증은 물량 증가보다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단가 상승 영향이 컸다. 이 때문에 수출 호조의 지속 가능성에 물음표가 붙는다. 글로벌 데이터업체 CEIC에 따르면 작년 한국의 수출 단가는 2019년 대비 15% 상승한 반면, 대만은 4% 상승에 그쳤다. 반면 수출 물량은 한국이 12% 증가에 그친 반면, 대만은 31%나 증가했다. 즉 한국이 작년 대만만큼 수출 실적이 좋았던 것은 많이 팔아서가 아니라 비싸게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향후 단가 오름세가 주춤해지면 한국의 수출 호조가 둔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④공급망 대란 피해, 한국이 더 컸다

대만이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대란 속에 비교적 건실한 모습을 보인 점도 한국과는 다른 부분이다. 한국 기업들은 동남아 공장에 생산을 의존하는 비중이 높은 데 반해 대만은 대내적으로 구축한 밸류체인(가치사슬)이 원활히 작동해 공급망 대란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 등 아세안 주요국에서는 델타 변이 확산으로 문 닫는 공장이 크게 늘었는데, 해당 지역에서 각종 부품류(중간재)나 기계·설비(자본재) 등을 생산하는 한국 기업들은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톰슨로이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년간 한국의 자본재 및 중간재 수출이 연평균 10%, 15% 늘어나는 동안 대만은 20%, 23%씩 증가했다. 대만보다 한국이 델타 변이로 인한 제조업 경기 위축과 공급망 차질에 대한 민감도가 훨씬 컸던 셈이다.

이 밖에 한국의 코로나 상황이 대만보다 나쁜 점, 대만의 IT 업종 비중(58%)이 한국(34%)보다 훨씬 높은 점 등도 두 나라 증시 디커플링의 원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한국 수출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해소되려면 신흥국 수요가 대폭 개선되고, 신성장 수출 품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희원 연구원은 “한국은 상대적으로 신흥국 수출 비중이 높은 만큼 신흥국 수요가 반등하면 한국 수출의 추세적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며 “경기 민감 종목과 함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 등 신규 유망 품목과 농수산식품, 화장품, 의약품 등 유망 소비재가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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