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경쟁자가 많아지면 통상 물건 값이나 서비스 요금은 낮아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는 시장이 있다. 바로 배달업계다. 코로나19로 배달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이 시장에 뛰어든 업체 수가 늘고 경쟁도 치열해졌다. 그런데 고객이 내는 배달비는 계속 오르고 있다.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34)씨는 “3년 전만 해도 2000원이었던 배달비가 이제는 6000원을 넘는 날도 있다”고 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단건 배달’이 불붙인 경쟁
국내 최대 배달앱 ‘배달의민족(배민)’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이다. 이후 독일 배달 전문 업체가 ‘요기요(2012년)’라는 브랜드를 갖고 뛰어들었고, 경기도 공공배달앱 ‘배달특급’ 등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배달앱이 등장했다. 초기만 해도 음식을 주문하는 고객이 내는 배달비는 거의 없었다. 배달앱에는 식당 리스트가 올라올 뿐, 상당수 음식점은 직접 채용한 배달 기사를 통해 주문을 처리했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급등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인건비가 크게 오르자 부담을 느낀 음식업주들이 배달 직원 직접 채용을 기피했다. 대신 배달 업체에 배달을 맡기고, 고객에게 1000~3000원 정도의 배달비를 받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주문자와 식당 간 중개만 해주던 배달앱들은 음식 값과 배달비를 한 번에 결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꿨다. 배달앱을 통해 주문받은 배달 기사들은 수 킬로미터 내 여러 음식점으로부터 들어오는 주문을 모은 뒤, 한 번에 여러 곳을 돌면서 배달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렸다.
그런데 2019년 들어 변화가 일어났다. 전자상거래 업체 쿠팡이 ‘쿠팡이츠’를 통해 배달 시장에 뛰어들면서다. 쿠팡이츠는 ‘단건 배달’로 승부수를 띄웠다. 배달 기사가 한 번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대신 한 건의 주문만 받아 음식을 배달하는 방식을 들고 나왔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1시간 넘게 걸리기도 했던 배달이 10~30분 정도로 단축됐다. 배달 도중 식었던 밥은 따뜻하게 전달됐다. 고객과 음식점주가 나눠 부담하는 배달비는 프로모션(판촉) 명목으로 5000원으로 고정됐기 때문에 묶음 배달에 비해 배달료도 크게 비싸지 않았다.
배달 업계 관계자는 “서울 서초·강남·송파 등 강남 3구에 우선 도입됐는데, 상대적으로 부유한 강남 주민 사이에서 2000원 정도만 더 내면 훨씬 빠르게 따끈한 치킨을 먹을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다”고 했다. 음식점을 좋게 평가하는 고객이 늘면서, 식당점주들도 단건 배달을 반겼다. 그러자 1위 업체 배민도 지난해 6월 단건 배달에 뛰어들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다 ‘만세’ 부른 업체들
문제는 돈이다. 단건 배달이 등장하기 전만 해도 배달 기사들은 보통 1시간에 5~6건의 주문을 소화하면서 2만원 넘는 수입을 올렸다. 그런데 단건 배달만 하다 보니 1시간에 배달할 수 있는 건수는 3~4건으로 줄었다. 5000~6000원짜리 배달비에서 수수료 등을 빼면 배달 기사가 손에 쥐는 돈은 3000~4000원 정도다. 묶음 배달을 할 때보다 시간당 1만원가량 줄어든 셈이다. 이에 배달 업체들은 배달 기사 소득을 보전해주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보조금으로 나가는 돈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적자가 쌓이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업체들은 적자 규모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한 배달업계 관계자는 “보조금을 마련하기 위해 배민은 독일에 있는 모(母)회사에 손을 벌리고, 쿠팡이츠도 손정의 일본 소프트그룹 회장이 투자한 자금을 상당히 투입했다는 말이 나온다”며 “더는 버티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할인 중단, 기사 부족...배달료 더 오르나
결국 쿠팡이츠는 단건 배달 도입 당시 시행했던 프로모션을 지난 1일 종료했다. 배민은 다음 달 22일부터 각종 할인을 끝내기로 했다. 음식점주가 여러 요금제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고객이 내야 하는 배달비가 1000원~1500원 정도 오를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배달 기사 부족도 배달료 인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배달업 종사자 수는 지난해 현재 42만명. 부업으로 배달일에 나서는 이른바 ‘투잡족’까지 합치면 전체 배달 기사 수는 5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그런데 배민의 경우 여름 성수기인 지난해 8월 한 달 동안 총 1억건의 주문이 들어왔다. 배달 기사 42만명이 이 회사 주문만 처리한다고 가정해도 배달 기사 한 명당 월 238건을 배달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특히 몹시 춥거나 더운 날 또는 눈비가 오는 날은 배달 기사 수급 불균형이 극심해진다. 한 배달 업체 관계자는 “그러잖아도 업체들이 서로 기사 모시기 전쟁을 벌이는 판인데, 날씨가 궂은 날은 기사들이 밖으로 잘 나오려고 하지 않다 보니 보조금을 크게 높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배민과 쿠팡이츠는 현재 단건 배달비를 최대 6500원(기본거리 기준)으로 제한해놨다. 만약 보조금을 올릴 경우 고객이 부담하는 배달비도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가 안정되면 배달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는 점, 비싼 배달료에 부담을 느끼고 포장 등 대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배달비가 무한정 오르기는 힘들다는 반론도 있다. 심지어 배달 기사들은 현재 기사 수도 부족하지 않다고 항변한다. 서울 서남부권에서 일하는 배달 기사 김정훈씨는 “지나치게 춥거나 더워 배달 기사가 부족한 날은 1년 중 며칠 되지 않는다”며 “지금도 평상시에는 일거리가 오히려 모자라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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