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 아키리 인터랙티브는 어린이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치료용 비디오게임 ‘엔데버Rx’를 개발해 지난 202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뇌의 인지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고안된 이 게임의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원격으로 의사에게 처방전을 받은 뒤 의사와 상의해 게임 플레이 일정을 정해 매일 25~30분씩 게임을 하면 된다. 캐릭터 설정 후 기기를 좌우로 움직여서 장애물을 피하고, 화면을 탭해 목표물을 탐색·수집해가며 코스를 도는 방식이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 하루 25분씩 4주간 게임을 한 뒤 ADHD 관련 장애가 개선되고 73%의 어린이가 주의력이 향상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 회사는 올 하반기 엔데버Rx를 본격 출시하고, 기업인수목적회사(SPAC)를 통한 상장도 계획 중이다.

어린이 ADHD 디지털 치료제 '엔데버 Rx'. /아키리 인터랙티브

약물이나 수술 대신 모바일 앱이나 웨어러블, 가상현실(VR) 등 디지털 기기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DTX)가 헬스케어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가 다루는 질병도 통증, 당뇨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천식, 마약중독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통증, 천식, 당뇨병 치료까지 도전

미국 스타트업 카이아헬스는 근골격계 통증을 완화하는 디지털 치료제 ‘MSK 설루션’을 개발했다. 근골격계 통증 환자에게 운동과 물리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인공지능(AI) 분석을 기반으로 운동 성과를 측정해 환자에 따라 맞춤형 운동량을 제시한다. 임상시험 결과 이 설루션을 요통 치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사용한 환자들의 의료비 청구액이 표준 치료를 받는 환자들보다 80% 낮았다고 한다. 이 회사는 만성 폐쇄성 폐 질환에 대한 디지털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미국 압타 파마가 개발한 호흡기 치료제 '히어로 트래커'.

미국 뉴저지에 본사를 둔 제약사 압타 파마는 천식용 흡입기에 각종 센서를 부착한 디지털 흡입기 ‘히어로 트래커’를 최근 내놨다. 환자의 흡입량이나 사용 주기 등을 감지한 뒤 약물 주입량 등을 자동으로 조절해 처방전에 맞게 흡입기를 사용하도록 돕는다. 온도와 습도 같은 외부 환경을 모니터링해 흡입기를 쓰라고 미리 알려주는 기능도 갖췄다. 제조사는 “코로나로 인한 천식, 낭포성 섬유증 등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전 세계 환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고안됐다”고 밝혔다.

이 밖에 AI를 기반으로 비만 환자의 체중과 생활 습관 등을 관리해주는 다리오 헬스, 당뇨·고혈압 등 만성 질환자에게 약물 관리 등 맞춤형 원격 진료를 제공하는 바이오포미스 등이 미국에서 떠오르는 디지털 치료제 기업들이다. 화이자·바이엘 등 대형 제약사들과 제휴한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업체 사이드킥 미첼 머드라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헬스케어가 소비자 맞춤형 산업으로 진화하면서 질 높은 진료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할 수단으로 디지털 치료제가 주목받고 있다”고 했다.

국내 스타트업 웰트가 개발한 불면증 치료용 앱 '필로우Rx'.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에서 분사한 스타트업 웰트가 주목받는 디지털 치료제 기업 중 하나다. 2016년 건강관리용 스마트 벨트를 출시한 이 회사는 최근 불면증 치료용 앱 ‘필로우Rx’를 개발해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수면 패턴과 강박 장애 요인 등을 분석해 생활 습관과 적정 수면 시간 등을 권고해주는 앱으로, 식약처 허가를 받으면 국내 1호 디지털 치료제가 된다. 최근까지 세 차례 자금 조달을 통해 140억원의 투자금을 모았다. 이 회사 강성지 대표는 “소프트웨어 기반 치료제를 통해 전 세계 환자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치료법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정신 건강용 모바일 앱 ‘마인드카페’를 운영하는 한국 스타트업 아토머스도 최근 조달한 1670만달러(약 200억원)를 정신 질환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지난 2년간 매출이 연평균 400% 증가했다.

◇코로나로 반사이익...아직은 초기 단계

비디오 게임이나 모바일 앱 등 디지털 기기로 질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다양한 임상시험으로 효과가 검증되면서 디지털 기기가 건강 보조 기구를 넘어 어엿한 의약품으로 인정받는 추세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약 20종의 디지털 치료제가 FDA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에디 마르투치 아키리 최고경영자(CEO)는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치료제를 공상과학소설 취급하며 효능에 의문을 가졌지만, 새로운 접근법이 환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데이터가 보여준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대면 접촉을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된 것도 디지털 치료제 시장에 기회로 작용했다. 시장조사 업체 마켓스앤드마켓스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2020년 21억1780만달러에서 2025년 69억460만달러로 연평균 26.7% 성장할 전망이다. 환자가 직접 구매하는 B2C 시장보다는 보험사, 고용주, 제약회사, 병원 등을 대상으로 하는 B2B 시장이 주를 이룬다. 특히 어떻게든 보험금 지급을 줄이고자 하는 보험사가 최대 고객이다. 2020년 디지털 치료제 매출의 절반가량인 11억달러를 보험사가 차지했는데, 2025년에는 보험사 매출이 41억달러로 전체 디지털 치료제 시장 중 6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디지털 치료제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에 불과한 데다 헬스케어 산업 고유의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라는 지적도 많다. 마약 중독과 불면증 등 3종의 디지털 치료제로 FDA 승인을 얻어 이 분야 대표 주자로 꼽히는 페어 테라퓨틱스조차 “혁신적 치료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초입에 와 있으며, 무르익으려면 시간이 걸린다”(마이클 커니 BoA증권 애널리스트)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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