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d the line Brothers!!”(전선을 사수해, 전우들!)
지난해 1월, 비디오게임 판매 업체 ‘게임스톱’을 둘러싸고 개인 투자자와 월가 헤지펀드(소수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고수익을 노리는 펀드) 간 전쟁이 펼쳐졌다. 게임스톱에 대규모 공매도를 건 헤지펀드에 맞서 개미들은 미국판 ‘존버’인 ‘다이아몬드 손(diamond hand)!’을 외치며 투쟁 의지를 불태웠다. 게임스톱 주가가 한때 2000% 가까이 오르고, 몇몇 헤지펀드가 피를 흘리며 휘청거리자 개미들의 사기는 더욱 높아졌다. 제2, 제3의 게임스톱이 잇따라 탄생하면서 이른바 ‘밈(meme)주식’이라는 용어가 새로 등장했다.
그 후 1년, 밈 주식 열풍은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다. 대부분 밈 주식 주가는 곤두박질치는 중이고, 온라인 게시판에서 ‘다이아몬드 손’을 외치는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게임스톱이 월가를 사로잡으며 개인 투자자들이 주목을 받은 지 1년 만에 분위기가 극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밈 주식 열풍이 수북한 개미 시체만 남긴 채 2000년대 초 닷컴 거품과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미국 CNN 방송은 한 투자 조사 업체 보고서를 인용해 “밈 주식 투자는 무모하고 위험하며, 투자자들을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판 ‘개미들의 반란’으로 불린 밈 주식 열풍은 어디서 왔고, 무엇을 남겼을까.
◇탐욕과 분노가 결합하다
지난해 초 게임스톱 사태 초기만 해도 밈 주식 열풍은 일회성 장난으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개인 투자자들이 단결해 공매도 헤지펀드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주가가 폭등하자 밈 주식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게임스톱 주가가 17달러에서 최고 347달러까지 1915% 오른 이후 AMC엔터테인먼트 주가가 연초 2달러에서 3000%올라 한때 62달러를 찍었다. 코스(연초 대비 최고 1906% 상승), 틸레이(610%), 선다이얼그로워스(430%) 등도 밈 주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주가가 몇 배씩 올랐다. 그러다 보니 일확천금을 노린 개미 투자자가 한국에서까지 몰려들었다. 작년 2월 한 달 동안 국내 투자자가 게임스톱을 사고판 금액은 약 30억2700만달러(약 3조3500억원)로 ‘테슬라’(40억3200만 달러)에 이어 둘째로 많았다. 밈 주식의 성지 노릇을 한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 게시판에는 “코스피를 사상 최고치로 이끈 한국 개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밈 주식 열풍이 주식시장을 뒤흔들 정도로 폭발력을 가진 배경에는 탐욕과 함께 월가에 대한 분노도 한몫했다. 특히 미국 증시는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작아 ‘큰손’으로 불리는 기관투자자 앞에서 기를 못 펴왔다. 미국 증시에서 개인의 비율은 15~20% 정도로, 한국의 개인 투자자 비율 73%(2021년·거래 대금 기준)에 비해서도 크게 낮다. 이런 환경에서 개미들이 단결해 기관을 쓰러뜨리는 기적을 연출한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에서 전문 투자자로 일했던 양임석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특히 미국의 20~30세대가 월가의 제도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돼 있다고 느끼는데, 그것도 밈 주식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린 계기였다”고 했다.
이 때문에 밈 주식 열풍을 지난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의 연장 선상에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금융 위기 여파로 국민이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월가 금융회사 직원들이 수천만달러 보너스 잔치를 벌이자, 시위대는 이에 항의하기 위해 월가에 직접 나가 집회를 열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무대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무기가 확성기에서 돈으로 바뀐 것이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고문은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월가에 대항해 개인 투자자들이 맞선 밈 주식 열풍은 여러 면에서 ‘아랍의 봄(2010년 북아프리카와 아랍을 휩쓴 민주화 운동)’과 닮았다”고 했다.
◇예견된 결말이었나... 게임스톱 66%, AMC 74% 폭락
하지만 밈 주식 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표적인 밈 주식인 게임스톱은 22일 현재 118.06달러로 작년 1월 27일 최고치(347달러)에 비하면 66% 하락했다. 제2의 게임스톱으로 불렸던 AMC 역시 지난해 최고치 대비 74% 폭락한 16.47달러까지 주가가 내려앉았다. 그나마 이 종목들은 연초 대비 연말 주가로 보면 선방한 편이다. 같은 밈 주식으로 묶였던 틸레이는 지난해 초 9달러대였던 주가가 63달러까지 올랐다가 연말 7달러대로 내려앉았다. 스킬즈(-59%)와 스마일다이렉트클럽(-80%) 등도 폭락으로 작년 한 해를 마감했다. 작년 한 해 나스닥 지수가 약 21% 올랐으니, 차라리 나스닥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투자했다면 훨씬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던 셈이다.
하락세는 올 들어 더 가파르다. 연초 이후 지난 22일까지 주요 밈 주식 10종목의 주가는 평균 31% 떨어졌다. 게임스톱과 AMC가 각각 올해 들어 20%, 39% 빠졌고, 클로버헬스와 로블록스도 각각 45%, 53% 내렸다. 오른 종목은 하나도 없다. 퍼스널 캐피털의 크레이그 버크 최고 투자 책임자는 “이제 밈 주식은 지난 일이 되는 것 같다. 투기적인 광풍과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희망만으로 주식에 베팅하는 것은 서서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밈 주식들이 한결같이 불행한 운명을 맞은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의 실적이나 가치가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령 게임 유통회사인 게임스톱은 과거 미국 전역에 유통망을 깔면서 5000여 체인점을 뒀지만, 온라인·모바일 게임이 대세인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코로나 19가 발발하자 소매 판매점 영업 제한 대상에 걸려 강제로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결국 지난 2020년에는 462개 체인점이 문을 닫았고, 매출액은 83억달러에서 65억달러로 크게 줄었다. 폭등한 주가를 유지할 만한 동력이 거의 없었던 셈이다. 미국 CNBC는 “게임스톱의 경우 주가가 많이 증가하자 전자상거래 회사로 변신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못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에게 외면받았다”고 진단했다.
AMC도 마찬가지다. 이 업체는 미국 전역에서 영화관 체인을 운영하는데, 코로나 19로 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거의 파산 위기로 내몰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음 타깃은 AMC’라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면서, 4달러였던 주가가 단 하루 만에 300% 넘게 올라 19.9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가가 뛰는 동안 극장 관람객 수는 80% 줄었다. 주가가 오른 뒤에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후 주가가 내려가고, 발행한 회사채 값이 하락하면서 현재는 부채를 돌려막기 위해 채권자들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 CNN에 따르면 미국의 주식 거래 앱 ‘무무(MOOMOO)’가 고객을 상대로 물었더니 절반 정도가 밈 주식에는 가상화폐나 주택보다 더 많은 거품이 끼어 있다고 답했다. 양임석 교수는 “사실 게임스톱이나 AMC 같은 회사들은 이미 없어져야 하는 회사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사람들이 주식 투자에 나서며 억지로 밀어올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가상화폐 시장의 성장, 미국의 긴축 움직임도 밈 주식 몰락을 가속화시켰다.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액은 2020년 2조7800억달러에서 작년에는 15조8000억달러로 증가했다. 금융 서비스 업체 트레이디어의 댄 라주 최고경영자(CEO)는 “밈 주식의 인기를 가상화폐가 대체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밈 주식 유행이 더 빨리 사그라들었다. 지난해 미국에서 밈 주식 열풍이 일자, 국내 증시에도 일부 주식이 밈 주식으로 떠올랐다. ‘두슬라(두산중공업+테슬라)’로 불리며 한국판 밈 주식으로 떠오른 두산중공업이 대표적이다. 국내 주식 커뮤니티에서는 인증이 이어졌고, 개인 투자자가 대거 주식을 사들였다. 이로 인해 5월 초만 해도 1만2000원 선이던 주가가 6월 초 3만원대까지 올랐다. 5월 초에는 300만~400만주 수준이던 하루 거래량도 6월에는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하지만 미국 증시처럼 활활 타오른 수준은 아니었다. 국내 한 증권사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개인 투자자의 분노가 미국만큼 크지도 않았고, 그나마 한국판 밈 주식이라고 불렸던 주식도 미국 분위기에 잠시 편승했을 뿐”이라며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도 고수익·고위험 상품을 찾는다면 수익률이 더 높은 ETF(상장지수펀드) 같은 상품이 있기 때문에 굳이 밈 주식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력’으로 떠오른 개인 투자자
결국 밈 주식 열풍에 뒤늦게 올라탄 개미들은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로이터통신은 “밈 주식이라는 파티에 일찍 도착한 사람은 보상을 받았지만, 늦게 들어온 사람들은 벌을 받았다”고 했다.
다른 한편으로 밈 주식 열풍은 월가의 투자 문화와 개인 투자자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래 월가의 기관 투자자들은 개인 투자자를 ‘덤 머니(dumb money·귀가 먼 돈)’라 부르며 얕잡아봤다. 게임스톱이 밈 주식으로 주목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개인 투자자들을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다는 판단에 공매도에 큰돈을 쏟아부었지만 완패했다.
여파는 컸다. 헤지펀드 멜빈 캐피털은 125억달러(약 14조원)였던 자산이 작년 1월 한 달 만에 80억달러(약 8조9000억 원)로 쪼그라들었다. 또 다른 헤지펀드 메이플레인 캐피털도 게임스톱 공매도에 돈을 쏟아붓느라 한 달간 45%의 손실을 기록했다. 영국 헤지펀드 화이트스퀘어 캐피털은 게임스톱에 대한 공매도에 나섰다가 아예 폐업했다. 한때 4억4000만달러(약 4980억원)를 운용하던 업체가 두 자릿수 손실률을 기록하며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이후 헤지펀드들은 개인 투자자들의 움직임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헤지펀드의 약 85%와 자산 운용 매니저 42%가 현재 개인들의 거래 행태를 추적하고 있다고 답했다. JP모건은 지난해 9월 아예 개인 투자자들이 사들일 가능성이 있는 주식 정보 등을 담은 데이터 상품을 출시했다. 전문 투자자들이 참고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JP모건은 “개인 투자자를 더는 무시해선 안 된다. 시장의 테마를 제대로 파악하는 새로운 투자자 집단”이라고 진단했다.
헤지펀드의 손쉬운 먹잇감이었던 부실기업에 대한 공매도도 줄었다. 자료 분석 회사인 S3 파트너스에 따르면 1000만달러 이상의 공매도 거래가 있었던 주식 가운데 공매도 비율이 40% 이상인 종목은 2020년 초엔 40개였는데, 지난해에는 19개, 올해 초에는 7개로 쪼그라들었다. S3 파트너스는 “모든 헤지펀드의 마음 한편에는 밈 주식과 반대편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다”고 풀이했다.
밈 주식의 장래를 밝게 보는 의견은 그리 많지 않다. 일각에서는 밈 주식이 2000년대 초반 터졌던 ‘닷컴 버블’과 비슷한 운명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밈 주식 열풍에는 2020년 발생한 코로나 19로 인해 시중에 막대한 돈이 풀렸던 것이 한몫했다. 하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0%대 금리를 올해는 큰 폭으로 올릴 것으로 예고하는 등 호재가 별로 없다. 미국 주식 거래 플랫폼 위불(Webull)의 앤서니 데니어 최고경영자(CEO)는 “작년은 주식시장이 전반적인 좋은 상황이어서 밈 주식도 주목을 받을 수 있었지만, 올해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안정적인 기업조차 무너지는 상황에서 밈 주식이 결코 무사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짜릿한 승리를 맛본 개인 투자자들이 힘을 합쳐 새로운 밈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다. 한때 농담처럼 여겨졌지만 무섭게 성장 중인 NFT(대체불가능토큰), 텅스텐으로 만든 정육면체를 수집하는 텅스텐 큐브 열풍도 제도권에 반감을 가진 개인 투자자들이 주도해 유행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밈 주식과 유사한 점이 많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개인 투자자들은 여전히 날아오르는 주식이나 가상화폐와 같은 위험한 투자에 관심이 있다”며 “앞으로 주가가 하락하고 내림세가 유지될 때 이 새로운 세력이 어떻게 반응할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밈(meme) 주식
온라인 커뮤니티 또는 소셜미디어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소문을 탄 주식 종목을 말한다. 밈은 사회에서 문화를 전파시키는 매개체를 의미하는데, 요즘에는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 유행어 등을 주로 일컫는다.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만든 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