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보면 종종 야채나 생선, 고기 등의 산지 가격이 폭락했다는 기사가 나오곤 한다. 산지 가격 폭락으로 생산자들이 수확을 포기하거나 밭을 갈아엎었다는 기사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기사를 읽고 대형 마트나 시장에 가면 생각보다 가격이 별로 하락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실망하게 된다. 산지 가격이 폭락하는데도 소비자가격은 그대로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가 생각하는 원가와 실제 유통 과정의 원가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잔에 4500원인 아메리카노의 원가는 300원’ ‘8000원짜리 백반 원가는 2000원’ 같은 이야기를 할 때 원가는 대부분 재료비를 말한다. 하지만 ‘재료비=원가’가 아니다. 이는 재료를 가공할 때 발생하는 인건비와 임대료 같은 비용을 간과하면서 벌어지는 착각이다.
식품의 산지 가격이란 개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식품은 산지에서 생산된 후 유통과 보관을 거쳐 소비자에게 공급된다. 품목에 따라 다르긴 하나 소비자가격에서 유통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50% 이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유통업자가 폭리를 얻는다고 분개하곤 한다.
하지만 유통은 거저 되는 게 아니다. 산지에서 상품을 조달해 창고에 보관하면서 상품성이 낮거나 손상된 것을 폐기 처리하고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과정이 모두 유통에 포함된다. 식품 특성상 팔고 남은 재고 역시 폐기 처분해야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에 마진을 붙인 것이 유통 비용이 된다.
특히 요즘은 품질 유지를 위해 콜드체인 유통이 일반화돼 있다. 이 때문에 냉장 운송 비용과 포장 비용이 추가 발생한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식품의 소비자가격에서 유통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여기에 당일 배송이나 새벽 배송 등이 추가되면 유통 비용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즉, 최종 소비자가격에서 산지 가격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기 때문에 산지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소비자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양파 1kg 산지 가격이 900원이고 소비자가격이 3000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때 산지 가격이 20%(180원) 하락해도 소비자가격은 겨우 6% 하락할 여지가 생긴다.
소비자 처지에서 값이 오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소비자가격 구조를 이해한다면 오르거나 내렸을 때 엉뚱한 데 분풀이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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