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리튬 이온 배터리) 핵심 소재로 ‘하얀 석유’ ‘백색 황금’이라 불리는 리튬 가격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리튬 국제 가격은 지난 18일 기준 1t당 41만4500위안(약 7825만원)으로 1년 전 가격(6만7500위안)의 6배로 뛰었다.
배터리 수요가 앞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각국과 기업들의 리튬 확보 경쟁 역시 가열되고 있다. 리튬 화합물 1위 생산국인 중국은 주요 리튬 매장지인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미국에선 ‘리튬 러시’가 벌어지는 중이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지구와 화성 사이 소행성대에 있는 리튬을 채굴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국경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리튬 확보 전쟁을 두고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리튬은 친환경 전환에서 대체될 수 없는 자원”이라며 “세계가 리튬에 굶주려 있다”고 했다.
◇'리튬 러시’ 시작된 미국
1990년대까지만 해도 리튬 생산 선도 국가는 전 세계 매장량의 20%를 보유한 미국이었다. 하지만 채산성이 낮고 정제 과정에서 환경오염 논란이 일면서 지금은 주도권이 중국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현재 세계 리튬 가공과 정제 공정의 절반 이상을 중국이 점유하고 있다. 리튬 국제 가격도 위안으로 표기될 정도다. 반면 전체 생산량에서 미국의 비율은 1%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 내 채굴 중인 리튬 광산도 네바다 지역에 있는 실버 피크 한 곳뿐이다.
중국이 리튬 공급망을 장악하자 미국도 반격에 나섰다. 1850년대 서부시대 골드 러시(Gold rush)를 연상케 하는 ‘리튬 러시’를 통해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작년 1분기에 발생한 리튬 광산 개발 투자액만 35억달러(약 4조1856억원)로 그전 3년간(2018~2020년) 투자액(5억달러)의 7배에 달했다. 미국 정부 역시 지난 6월 배터리 제조뿐 아니라 국내 리튬 생산·정제에도 박차를 가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하며 자국 내 리튬 생산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북미 최대 리튬 채굴 프로젝트라 불리는 네바다주(州) 북부 험볼트 카운티의 ‘태커 패스(Thacker Pass)’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의 리튬 채굴 전문 기업 리튬 아메리카스(LAC)가 지난해 1월 토지관리국으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고 개발 중인 이 광산은 배터리용 탄산리튬 310만t이 매장돼 있고 연간 8만t의 리튬을 추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136만대의 전기차 배터리를 보급할 수 있는 규모다. 네바다 지역 외에 노스캐롤라이나와 캘리포니아, 아칸소, 노스다코타, 오리건, 테네시 등지에서도 다양한 리튬 채굴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자원외교 덕 보는 중국
이미 리튬 추출·가공 시장을 장악한 중국은 더 많은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리튬 매장량이 풍부한 남미와 아프리카 지역 채굴 회사들을 인수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남미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 자원외교를 이어온 만큼 이 네트워크를 활용한 채굴권 확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가령 최근 국영기업인 중광자원의 자회사가 짐바브웨의 리튬 광산인 비키타 광산 지분 74%를 1억8000만달러에 인수했고, 작년 12월에는 중국 저장화유코발트가 4억2000만달러에 짐바브웨 리튬 광산 업체 프로스펙트리튬짐바브웨를 인수했다.
심지어 중국 기업 간에도 해외 리튬 확보 경쟁이 벌어진다. 작년 7월 중국 최대 리튬 업체인 간펑리튬과 배터리 시장점유율 세계 1위 기업인 CATL은 아르헨티나 리튬 광산을 소유한 캐나다 기업 밀레니얼리튬에 대한 인수 경쟁을 벌였고, 결국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한 CATL이 승리를 차지했다. 미국 금융정보사 S&P글로벌에 따르면 자국 매장량을 포함해 중국 기업들이 다른 채굴 회사를 인수하거나 광산 지분을 확보해 얻은 리튬 규모는 작년 10월 기준 640만t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전 세계 기업들이 맺은 전체 리튬 채굴 계약 물량(680만t)과 맞먹는 수준이다.
◇각자도생하는 한국 기업들
반면 전기차 배터리 2위 생산국인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보다 리튬 확보에 불리한 입장이다. 정부 차원의 해외 자원 개발이 이명박 정부 이후 뚝 끊겼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많은 공을 들였던 볼리비아 우유니 염호 리튬 개발 사업을 비롯해 수많은 프로젝트가 정권이 바뀐 후 비리나 적폐로 몰려 무산됐다. 해외자원개발협회에 따르면, 리튬과 니켈, 유연탄 등 광물 자원 분야 신규 사업은 2008년 71건에서 2020년엔 2건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건진 성과는 포스코가 투자한 아르헨티나 소금호수다. 2010년 리튬 산업에 뛰어든 포스코는 세계 최초로 염수에서 리튬을 직접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한 뒤 아르헨티나에 위치한 옴브레 무에르토 소금호수 북측 1만7500헥타르(175㎢)를 2018년 호주 자원개발기업으로부터 약 3100억원에 사들였다. 그런데 2020년 말 이뤄진 탐사에서 이 지역의 리튬 매장량 추정치가 1350만t으로 기존 추정치(220만t)의 6배 이상인 것으로 확인되는 ‘잭팟’이 터졌다. 현재 공장 건설이 진행 중이며, 2024년쯤부터 본격적인 리튬 생산이 이뤄질 예정이다.
리튬에 목마른 국내 기업들은 각자도생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칠레와 독일, 호주의 리튬 생산 업체와 공급계약을 체결했고, 삼성SDI는 간펑리튬 지분 1.8%를 사들였다.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 쓴 배터리에서 주요 원료인 리튬과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추출해 새 배터리에 재활용하는 사업으로, 리튬 생산이 힘든 국내 기업들엔 필수 사업으로 여겨진다. 폐배터리에서 수산화리튬 추출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2월 이 사업을 전담하는 BMR(Battery Metal Recycle) 부서를 신설하고 시험 생산 공장까지 완공했다.
전세계가 리튬 공급을 늘리고 있지만, 폭증하는 전기차 배터리 수요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어서 리튬 공급 부족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에너지 정보분석기업 S&P 글로벌 플래츠는 현재 50만t인 리튬 수요가 2030년에는 200만t까지 늘어나 리튬 공급 부족량이 22만t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배터리 3사가 올해 사용하는 리튬 양(12만5000t)의 거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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