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상황이 고조되면서 금값이 고공 행진하고 있다. 1월 말 온스당 1786달러를 기록했던 국제 금 선물 가격은 9일 현재 2048달러로 15% 가까이 뛰었다.
금은 대표적인 안전 자산이자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꼽히지만, 지난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며 체면을 구겼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세계경제가 둔화됐을 때만 해도 금값은 온스당 2000달러를 넘어서며 위력을 떨쳤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각국 물가가 유례없이 가파르게 오르는데도 금값은 반대로 움직였다. 비트코인 등 가상 화폐에 인플레 헤지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빼앗겼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올해 다시 안전자산으로서의 금의 매력이 부각되고 있다. 금리 인상 공포에 전쟁까지 터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자 금을 찾는 수요가 폭발한 것이다. 전쟁이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금 투자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지만, 최근 가격이 급상승한 탓에 매수를 망설이는 투자자들도 적잖다. 지금이라도 금을 사두는 게 좋을까? WEEKLY BIZ가 국내외 전문가 7명에게 물었다.
미래에셋증권 박희찬 이사 (○)
아주 단기적으로는 3월 증시 반등과 함께 금값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유가 급등 등으로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어 안전 자산의 필요성은 2분기 이후에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현재 인플레이션이 쉽게 안정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과거 높은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주식보다 금이 절대 우위의 성과를 기록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신한금융투자 김희원 책임연구원 (△)
포트폴리오 변동성 관리 차원에서 금을 편입하는 것은 권고하지만, 자본 차익을 위한 투자 수단으로서는 매력적이지 않다고 판단한다. 과거 크림반도 사태에 비춰보면 2014년 3월 중순까지 금 가격이 상승한 후 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정학적 위험이 사그라든다면 투기적 수요가 위축되면서 이번에도 금 가격에 조정이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또 금리 상승 국면에서는 금 투자의 매력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신영증권 박소연 투자전략부장 (X)
금은 주식처럼 배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채권처럼 이자를 주지도 않으며, 실물의 경우 금고처럼 안전한 곳에 보관하려면 보관료까지 지불해야 한다. 과거엔 금본위제 덕에 안전 자산으로 기능했으나, 1970년대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로 이마저 약화되었다. 2000년대 들어 약 10년간 금 강세기가 찾아왔지만 이는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신흥국들의 막대한 경상 흑자와 이에 따른 외환보유고 증대(금 보유 증가) 때문이었으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또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금융시장 교란기에 비트코인이 교환 수단으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안전 자산으로서의 금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NH투자증권 황병진 연구위원 (△)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은 안전 자산 선호에 따른 단기 금 가격 강세를 지지하는 요인이 된다. 반면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급등 및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주도의 통화 정책 긴축에 대한 경계심은 금 가격 상승 여력을 제한한다. 더불어 우크라이나 사태 해소 시 안전 자산 선호가 후퇴하면서 단기적으로 급등한 금을 비롯한 귀금속 섹터에서 차익 실현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해 연준의 긴축 강도가 당초 예상보다 약할 시에는 금 가격 하방 압력이 제한적일 수 있다. 이에 투자 의견 중립을 제시한다.
유진투자증권 강송철 연구원 (X)
금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로벌 경기가 회복세로 가느냐, 아니면 침체로 가느냐에 대한 판단이다. 금은 가지고 있어도 이자나 배당이 없는 자산이기 때문에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금리가 낮아지는 환경에서 수요가 증가한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인플레 상승, 미국 등의 긴축 강화 등 우려가 있지만 아직까지 기본 시나리오는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면서, 금리가 지금보다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우려로 오른 금 가격은 우려가 완화되면, 다시 하락할 수 있다. 올해 연간을 보고 주식 투자 자금의 일부(10% 정도)를 금, 은에 배분하는 전략은 고려해볼 만할 것 같다.
오안다 에드워드 모야 선임시장분석가 (△)
우크라이나 사태로 글로벌 경제 성장이 큰 타격을 입고, 예상보다 빠르게 경기 침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여파는 올여름까지 지속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여 미 연준이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게 만들 것이다. 이는 경기 침체의 전조인 수익률 곡선 역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포트폴리오 분산 차원에서 일부 금에 투자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인크레멘텀 로널드 스토플러 파트너 (○)
지금도 금을 사기에 늦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1년 안에 금값이 온스당 2300달러를 찍고,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갈 것이라 본다.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물가 상승률이 각 7%, 5%를 넘는 상황에서 중앙은행은 통상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함정에 빠져 있다. 금융시장도 이를 눈치채고 있으며, 기관투자자에게 금은 1970~1980년대처럼 다시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 본다. 금은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인 상황에서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하고 안정적인 국제 통화이기 때문이다.
※위비의 결론
○: 2, △: 3, X: 2
금 투자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중립’이 우세했다. 지정학적 긴장 상황에 따라 가격이 급등한 만큼, 상황이 해소되면 가격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만 향후 도래할 가능성이 있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대비해 포트폴리오 일부를 금으로 배분하는 전략은 고려해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WEEKLY BIZ Newsletter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