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초반 유행한 ‘수저 계급론’에는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이들의 자조(自嘲)와 한탄이 담겨 있었다. 한편으로는 부모 도움으로 성공하고도 마치 노력으로 모든 것을 일궈낸 듯 자랑하는 사람을 조롱·비판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금수저로 지목받은 사람은 대개 손사래를 치며 부모 도움 없이 자립했음을 강조하곤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플렉스’ 열풍이 불면서 이런 분위기에 큰 변화가 생겼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이른바 ‘셀럽’이나 ‘인플루언서’들이 고급 식당, 수퍼카, 명품을 거리낌 없이 자랑하고, 대중은 이들을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소비의 원천이 어디인지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부(富)를 부모에게 물려받았든, 운을 통해 얻었든, 아니면 정말 치열한 경쟁을 거쳐 획득했든 대중은 이제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소비에 대한 강한 동경이 자리 잡다 보니 과시 그 자체가 콘텐츠가 되고 이것이 부를 획득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인스타와 유튜브에서 과시적 소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를 동경하고 지켜보며 대리 만족을 얻는 사람이 모여들고, 이 자체가 영향력이 돼 광고와 협찬이 몰려드는 것이다.
이런 과시적 소비를 일반적 근로소득으로 누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평범한 직장인들도 큰맘 먹고 간혹 명품을 구매하거나 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수 있다. 하지만 매일같이 이런 생활을 하는 건 아무리 고소득을 올리는 대기업 임원이나 전문직이라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근로소득에서 전혀 효용을 느끼지 못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부동산 가격 폭등과 가상화폐, 주식 시장 호황은 이런 ‘근로소득 허무주의’를 더욱 부추겼다. 플렉스 열풍과 자산 가격 상승이 서로 되먹임 작용을 하며 소비에 대한 동경을 자극하고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이다.
200여 년 전 소스타인 베블런은 노동을 기피한 채 다양한 방식의 소비로 노동 계급과 자신을 차별화하던 상류층을 비판했다. 이때 배블런이 쓴 책이 그 유명한 ‘유한계급론’이다. 유한(有閑)계급(leisure class)이란 생산적 노동을 기피하고 스포츠나 오락, 예술 등 비생산적인 일에 탐닉하는 계층을 말한다. 요즘 과시적 소비에 대한 대중의 동경과 인플루언서를 향한 선망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유한계급이 형성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비가 생존을 넘어 과시로 변모한 시대의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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