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풍력·태양광 등의 신재생 에너지 개발과 함께 ‘탄소 포집(捕執)’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제품 생산 규모와 향후 에너지 수요 등을 감안할 때, 발전 단계에서부터 탄소 배출을 제로(0)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탄소는 화석연료 등을 통해 계속 뿜어져 나올 수밖에 없고, 결국 배출된 탄소를 제거해야만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최종적인 탄소 중립은 탄소를 포집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포집한 탄소를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거나 재활용해야만 대기 중 탄소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다. 탄소를 포집해 저장하거나 활용하는 것을 통칭해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라고 하는데, 최근 이와 관련한 여러 기술이 개발되며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얼라이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9억달러(약 2조3600억원)인 글로벌 CCUS 시장 규모는 2030년 70억달러(약 8조7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포집된 탄소를 활용하기 위한 엉뚱하면서도 창의적인 기술 개발과 이에 대한 투자도 활발해지고 있다.
◇석유 업계, 탄소 저장·활용 기술 활용
최근 각광받는 CCUS는 첨단 기술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1970년대부터 석유 업계에서 폭넓게 활용돼왔다. 정유 기업들은 발전소나 산업시설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가져와 ‘원유 회수 증진(EOR)’이라는 공정에 사용한다. 땅속에 있는 원유를 끌어올릴수록 압력이 낮아져 채굴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때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지층에 주입해 압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EOR은 원유 회수율을 최대 60%까지 높여주는 효과가 있고, 이 과정에서 쓰인 이산화탄소는 대부분 지하에 매장된다. 2040년 탄소 중립 목표를 세운 미국 대형 에너지기업 옥시덴털의 비키 홀럽 최고경영자는 “옥시덴털은 연간 2000만톤(t)의 이산화탄소를 원유 채굴에 활용한 뒤 매장하고 있다”며 “이는 자동차 400만대가 배출하는 탄소량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EOR은 포집한 탄소를 활용(CCU)하면서 저장(CCS)까지 하는 일석이조 기술이다. 하지만 아직 CCUS의 대부분은 단순 저장을 의미하는 CCS가 차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적으로 포집된 이산화탄소 중 90%가 CCS로, 10%가 CCU로 처리되는 것으로 추산한다. IEA에 따르면 탄소를 지층에 저장해 대기와 격리하는 방식의 CCS는 1996년 노르웨이에서 처음 시작됐고, 현재 전 세계에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26개의 CCS 프로젝트가 운영되고 있다. 전 세계 CCS가 처리하는 이산화탄소 용량은 연간 4000만t 정도다.
◇보드카, 선글라스, 패션... 다양해지는 탄소 활용법
아직 CCS에 비해 비중이 낮은 CCU는 최근 들어 식음료, 패션, 친환경 연료 분야 등에서 다양한 탄소 활용법이 개발 중이다. 특히 미국 스타트업들이 CCU 분야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데 트웰브(Twelve)와 에어컴퍼니(Air company), 란자테크(LanzaTech) 등이 대표적이다.
작년 7월 5700만달러(약 708억원)의 대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 트웰브는 이산화탄소를 여객기 등의 대형 항공기 연료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전기와 물을 사용해 낮은 온도에서 이산화탄소를 분해한 뒤, 일산화탄소에 수소를 결합시켜 합성 가스인 ‘이제트(E-Jet)’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제트는 화석연료와 비교해 성능에 큰 차이가 없지만 오염 물질 배출을 90% 이상 줄일 수 있다. 트웰브는 포집한 탄소를 활용해 친환경 패션 브랜드 판가이아와 함께 선글라스 렌즈를, 메르세데스 벤츠와 함께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작업도 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 자리한 에어컴퍼니는 전기 분해 과정을 통해 물에서 뽑아낸 수소를 이산화탄소와 함께 특수 장치에 넣어 불순물 없는 알코올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드카를 한 병 만드는 데 5.9㎏가량의 탄소가 배출되는데 ‘에어보드카’라는 이름의 이 술은 탄소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가격은 한 병(750㎖)에 65달러(약 8만원)다.
미국 일리노이의 란자테크는 박테리아가 활동하는 특수 장치에 압축한 탄소를 넣어 에탄올로 변형시킨 뒤, 폴리에스터 직물을 만드는 원료로 활용한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제니퍼 홀름글렌은 “탄소 활용 폴리에스터를 생산하는 데 드는 돈은 화석연료 기반 제품 대비 2배가량 비싸지만 의류 브랜드들이 점점 비용 증가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 피치북 등에 따르면 작년 1~9월 사이 탄소 활용 기술 개발에 투자된 금액은 8억달러(약 1조원)로 2020년 대비 3배 이상 급증했다.
◇장밋빛 희망은 금물
전 세계가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한 CCUS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CCUS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대기 중 농도가 0.04%에 불과한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포집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고,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또한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 연간 348만t 가운데 산업적으로 활용되는 양은 0.1%밖에 되지 않아 지구온난화 개선 효과가 미미하다. 포집한 탄소를 필요한 장소로 옮기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결국 CCUS가 돈만 많이 들고, 쓸 데가 많지 않은 비효율적 기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학 연구팀이 최근 74개의 CCU 기술을 검토한 결과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기술은 4개(5.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현재 CCUS는 풍력·태양광보다 훨씬 더 어렵고 불확실한 기술이기 때문에 끈질긴 연구가 이어져야 한다”며 “장밋빛 환상은 갖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CCUS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활용하거나 저장하는 기술. 신재생 에너지 비율이 아무리 늘어나도 화석연료 사용이 계속되는 한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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