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롸버트치킨 강남 2호점’. 이 치킨집에는 직원 1명만 일한다. 직원은 주문 접수 등 카운터 업무를 담당한다. 밀가루 반죽을 닭에 입히고, 튀겨서 음식으로 내놓는 일은 로봇 몫이다. 파우더와 물을 채워두고 닭고기만 올려주면 알아서 튀김 반죽이 끝난다. 팔 모양으로 된 로봇은 바로 튀김 바구니를 들고 기름에 떨군 후 9분 30초 동안 섭씨 170도 기름에 넣고 튀긴다. 고기가 엉겨 붙지 않도록 정해진 요리법에 따라 바구니를 흔든 다음 치킨이 바삭하게 튀겨지면 기름기를 털어내고 배식대 위에 올린다. 이런 식으로 로봇은 한 시간에 치킨 50마리까지 조리할 수 있다. 사람 두세 명이 하는 일을 로봇 혼자 해내는 셈이다.
이 치킨집이 문을 연 것은 코로나19 초창기인 2020년 2월. 로봇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강지영(37)씨가 창업했다. 강씨는 “2018년 창업할 때는 1인 가구가 많아지는 점을 노렸는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뜻하지 않게 사업이 더 번창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가장 빠르게 성장한 분야 중 하나가 로봇이다. 경제 활동이 위축되는 동안에도 로봇 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국제로봇연맹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물류·의료·방역 등 전문 서비스 로봇 시장은 전년보다 12% 성장해 67억달러(약 7조9000억) 규모로 커졌다. 2020년 전 세계 로봇 특허는 400만건으로 10년 전인 2010년 120만건의 3배 이상으로 늘었다. 미국 AP통신은 “피자 반죽을 던지거나, 병원에서 각종 물건을 옮기거나, 물품을 분류하는 등의 로봇 기술 발전을 코로나19가 앞당겼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일자리 잠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기술 발전에 따른 ‘일자리 파괴’ 우려는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팬데믹이 그 속도를 앞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펴낸 ‘로봇과 불평등에서 팬데믹의 의미’ 보고서에서 “인건비 절감을 위해 구조 조정에 나선 기업들이 로봇 도입을 선호하면서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일자리 없는 회복’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로봇은 세상과 일자리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을까.
◇인천공항에 등장한 방역 로봇
코로나19는 산업용 로봇 수요를 특히 키웠다. 국제로봇연맹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 공장에서 작동하는 산업용 로봇은 전년보다 10% 늘어난 301만5000여대다. 대규모 봉쇄와 감염으로 직장을 떠난 사람이 늘자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부가 내놓은 구인·이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월 미국에서 퇴직한 직장인은 610만명. 이 가운데 해고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직장을 떠난 사람이 440만명에 이른다. 미국 CNN은 “펜데믹 이후 각종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다 보니 생산 속도를 따라잡고 인력을 메우기 위해 기업들이 산업용 로봇 주문을 늘렸다”고 했다.
물론 팬데믹 이전에도 로봇 도입은 자동차 같은 중후장대 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돼 왔다. 가령 일본 닛산 자동차가 지난해 10월 도치기현에 문을 연 전기차 공장(인텔리전트 팩토리)은 기존에 장인(匠人)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도장(塗裝) 검사와 최종 검사까지 로봇으로 대체했다. 테슬라는 올해 3월 가동을 시작한 독일 베를린 기가 팩토리 내부 영상을 최근 공개했는데, 차량의 뼈대 제조부터 조립, 도색까지 대부분 공정을 사람 없이 로봇이 수행한다.
팬데믹은 이런 무인화 바람이 서비스업종까지 확산하는 기폭제가 됐다. 미국 샐러드 체인 스위트그린은 지난해 8월 로봇 스타트업 스파이스(Spyce)를 인수했다. 스파이스는 지난 2015년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 전공 학부생들이 설립해 화제가 된 업체다. 2018년에는 회사와 이름이 같은 음식점도 열었다. 고객이 키오스크 터치스크린으로 메뉴를 선택하면 주방에 있는 자율 회전 냄비(wok) 로봇이 작동해 음식을 만들어 낸다. 스위트그린이 이 업체를 인수한 것은 스파이스 기술을 자사 식당 운영에 접목해 자동화를 서두르기 위해서다. 스위트그린은 매장 140여 곳에 로봇 주방과 컨베이어 벨트를 설치해 자동으로 채소나 두부, 소스를 식품 용기에 담아 음식과 샐러드를 만드는 시스템을 갖추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의료·방역 관련 로봇 기술 개발도 수요가 커졌다. 국제로봇연맹에 따르면, 2019년 7000여 대였던 의료 관련 로봇 판매량은 2020년 1만8000대로 늘었다. 인천공항공사는 코로나19가 발발하자 2020년 4월 SK텔레콤과 로봇 개발업체 원익로보틱스 등이 구성한 컨소시엄에 방역 로봇 제작을 의뢰했다. 약 8개월 만에 로봇이 개발됐고, 4개월간 시험을 거쳐 실전에 투입됐다. 이 로봇은 입국자들의 발열 상태를 확인하고 마스크를 착용했는지 파악한다. 또 인천공항 내에 있는 공기를 빨아들여 필터를 통해 코로나19 같은 균을 걸러낸 뒤 자외선을 쏘아 없앤다.
서준호 한국기계연구원 연구팀은 원격으로 로봇을 조종해 코로나19 감염 의심자의 코와 입에서 검체를 채취하는 로봇을 개발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다음 목표는 ‘완전자동 검체 채취 로봇’이다. 사람이 자리에 앉으면, 로봇이 스스로 알고리즘을 통해 계산해서 사람의 코에 면봉을 넣고 검체를 채취하는 것이다. 서준호 연구원은 “앞으로 다른 종류의 전염병이 발생해도 쓸 수 있도록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상보다 빨라진 무인화 속도
로봇이 인간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지만, 업종별로 그 속도와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칼 베네딕트 프레이 교수 등은 지난 2013년 ‘고용의 미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702개의 직업군을 분석해 자동화와 기술 발전으로 20년 이내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가장 가능성이 큰 직종 가운데 하나는 물류·창고 관련 분야였다.
약 8년이 지난 현재 실제 물류·창고 업무는 상당 부분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고 있다. 국제로봇연맹 집계에 따르면, 2020년 전체 판매 대수(13만1800대) 가운데 4만4000여 대가 운송·물류와 관련된 로봇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3만3000대)보다 30% 늘었다.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현재 전 세계 물류 센터에 로봇을 35만대 이상 운영하고 있다. 고객이 아마존닷컴에서 물건을 사면, 로봇은 해당 제품이 위치한 보관 포트를 찾아 이를 담당 직원에게 옮겨준다. 로봇은 이동식 바닥의 바코드를 읽으면서 길을 찾아간다. 로봇이 보관 포트를 끌고 오면 직원의 작업장 스크린에는 담아야 할 제품의 사진과 수량이 표시된다. 아마존은 지난해 9월 매사추세츠 3만2000㎡(약 9700평) 부지에 ‘로보틱스 이노베이션 허브’라는 공간도 조성했다. 이곳에는 로봇 개발 연구소와 로봇 제조 설비 등이 들어서 있다. 생산한 로봇은 전 세계 아마존 물류 센터로 투입된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는 “지금까지는 로봇이 인간 수준의 시각적 인식과 손재주를 요구하는 적재 작업을 할 수 없어서 사람을 고용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바뀔 것”이라며 로봇이 사람을 전면 대체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심지어 사람을 대체하기 어렵다고 평가된 분야에서도 로봇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옥스퍼드 ‘고용의 미래’는 레크리에이션을 활용한 치료처럼 정신적 질환을 돌보는 직업을 ‘사라질 가능성이 낮은 직업’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강제 격리 등으로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늘면서 이들을 돌보는 로봇 등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스라엘 로봇 기업 ‘인튜이션 로보틱스’가 개발한 로봇 ‘엘리큐’는 고령자에게 의사 상담과 약물 복용 시간 알림, 음악과 동영상 추천 등의 업무를 해낸다. 사용자가 로봇을 통해 가족이나 간병인에게 연결할 수 있게 설계됐다. 이용자들은 “코로나19 때문에 느꼈던 외로움이나 사회적 고립감을 줄일 수 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 로봇 회사 톰봇이 개발한 로봇 ‘제니’는 반려견 가운데 한 종류인 골든 레트리버를 모방했다. 주인이 만지면 꼬리를 흔들고 주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등 실제 강아지와 비슷한 행동을 한다.
반면 예상보다 대체 속도가 더딘 분야도 있다. ‘고용의 미래’ 보고서는 회계사가 20년 안에 로봇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업종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2017년 한국고용정보원이 인공지능과 로봇 전문가 2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대체하기 어려운 직업 1위로 회계사(22.1%)가 꼽혔다. 단순 회계 업무는 로봇이 처리할 수 있지만, 변화하는 법과 제도 등 상황에 맞게 복잡한 재무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 여전히 로봇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구인난이 무인화 앞당긴다
로봇에는 일자리 잠식이라는 꼬리표가 늘 붙는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 2020년 “인공지능(AI)과 로봇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은 새로운 세대의 스마트 머신이 기존 인간 직업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기업들이 데이터 입력이나 행정 업무 등에 사람이 아닌 기술을 활용하면서 일자리 창출이 둔화하고 일자리 파괴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2025년까지 약 7500만개의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될 것이며, 기계와 인간이 수행하는 업무의 비율이 30대70에서 50대50으로 동등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대런 애스모글루 MIT 교수 등이 내놓은 ‘로봇과 일자리’ 보고서는 미국에서 근로자 1000명당 로봇이 한 대씩 추가될 때마다 임금이 0.42% 감소하고, 고용률도 0.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인공지능 자동화 로봇 하나가 일자리 3.3개를 대체한다”며 “인공지능을 사람의 새로운 과제를 찾고 해결하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촉발된 구인난과 임금 상승이 무인화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령 미국 아마존과 코스트코는 최저 시급을 15달러에서 각각 18달러와 17달러로 올렸는데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지난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업 재무 담당자에게 물었더니 3분의 1이 직원 구하는 게 여의치 않아 근로자를 대체할 로봇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미국 멕시칸 음식 체인 ‘치폴레’는 구인난 해결을 위해 간판 메뉴인 토르티야칩 제조를 로봇에 맡겼다.
하지만 로봇의 확산으로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에 대해 반론도 있다. 지난 10년간 생산 현장에서 쓰이는 산업용 로봇이 두 배로 늘었지만, 예상했던 일자리 감소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오히려 구인난이 심화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만 해도 일자리 3000만개가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비어 있다. 필립 아기온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기업 차원에서 자동화는 일자리를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인화로 수익성이 증대되면 사업을 확장하면서 채용을 늘린다는 의미다. 세계 최고 무인화 수준을 자랑하는 테슬라가 세계 곳곳에 공장을 늘리며 직원을 새로 채용하는 게 좋은 예다. 테슬라는 새로 문을 연 베를린 공장에서 1만200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팬데믹 2년간 로봇에 대한 투자가 늘었지만 자동화가 실업을 유발했다는 증거는 아직까지 매우 희박하다”고 했다.
로봇이 인류의 일자리 총량을 감소시키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자동화와 관련해 확실한 사실들도 있다. 자동화 속도는 국가별·산업별로 다르며, 무인화 시대에 대비해 근로자 재교육이 시급하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은 세계에서 로봇 사용이 가장 활발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국제로봇연맹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은 노동자 1만명당 로봇 대수(산업용 로봇 밀도)가 932대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2025년까지 로봇으로 대체할 경우 감소하는 노동 비용을 국가별로 예측, 비교한 결과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33%로 조사됐다. 자동화로 인한 불평등이 가장 빨리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혜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재교육과 직업 훈련을 확대하고, 교육 체제 정비 등으로 노동생산성이 제고되도록 유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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