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전기차보다 더 빠르게 전동화되는 시장이 있다. 잔디깎이와 낙엽 청소기를 비롯한 정원 장비 시장이다. 원래 이런 장비들은 휘발유로 구동되는 엔진을 장착한 것이 기본이었다. 그런데 시장조사기관 프리도니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정원 장비 시장에서 배터리로 구동되는 전기 장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17%에 달했다. 같은 해 미국에서 전기차 비율이 3%에도 못 미치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전환율이다.
잔디깎이 외에도 배터리는 여러 영역에서 내연기관을 빠르게 잠식 중이다. 캐나다 스타트업 타이가 모터스는 올해부터 세계 최초로 전동화된 스노 모빌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고가의 배터리를 탑재하는 만큼 기본 가격이 1만7490달러(약 2240만원)로 일반 스노 모빌의 약 두 배 수준이지만, 3월 말 현재 누적 주문량이 2886대에 달한다. 타이가 스노 모빌의 첫 고객인 스키리조트 운영사 타오스 스키밸리의 데이비드 노든 CEO(최고경영자)는 “(전기 스노 모빌이 더) 비싸더라도 연료값과 유지관리 비용까지 감안하면 손익분기점에 가까워질 것”이라며 “환경뿐 아니라 우리의 수익을 위해서도 좋은 결정”이라고 했다. 기름값이 들지 않는 데다가 내연기관 모델보다 구조가 단순해 잔고장이 적은 측면까지 감안하면 경제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전기 보트 시대 개막도 눈앞이다. 전기차 경주 대회 ‘포뮬러e’를 창설한 스페인 사업가 알레한드로 아가그는 지난 2020년 세계 최초의 전기 보트 경주 대회 ‘E1′ 설립을 공언한 뒤 경주용 전기 보트 ‘레이스버드’ 개발에 착수해 지난달 이탈리아 북부 포(Po) 강에서 세계 최초로 테스트 주행에 성공했다. 뉴욕타임스는 “전기차 선도기업(테슬라)이 140년 역사의 완성차 시장 판도를 바꾼 ‘테슬라 효과(Tesla Effect)’가 여러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각국에서 배출가스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여서 전동화 물결은 앞으로 더 거세질 전망이다. 선도적인 환경 규제로 주목받는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에선 당장 2024년부터 휘발유 엔진으로 돌아가는 잔디깎이 기계나 송풍기 판매가 금지된다. 소형 내연기관들이 내뿜는 배출가스가 내연기관 차량보다 대기를 더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에 따르면, 시중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잔디깎이와 낙엽 청소기를 1시간 사용할 때 발생하는 오염 물질은 2017년식 도요타 캠리를 각각 483㎞, 1770㎞ 운행할 때 나오는 양에 육박한다.
전동화가 대세라지만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배터리가 고가인 만큼 가격 경쟁력을 높이려면 생산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지만, 그만큼 시장 규모가 못 받쳐주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작년 기준 전 세계에 판매된 스노 모빌은 13만5000대에 불과하다. 같은 해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6670만대였다. 세계 최대 스노 모빌 제조사인 BRP의 호세 보이졸리 CEO는 “시장이 훨씬 작아 대량 생산에 따른 비용 절감을 달성하기 어렵다”며 “변화는 생각보다 천천히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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