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을 거치면서 브랜드의 중요성은 더 커졌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칸타(Kantar)의 웨인 레빙스(Wayne Levings) 아시아 태평양 지역 CEO(최고경영자)는 WEEKLY BIZ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사업 점검차 한국을 방문한 레빙스 CEO는 ‘팬데믹 이후 시장의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기업과 소비자 모두 경영과 생계의 위기를 겪으며 비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며 “이런 경향이 새 브랜드보단 애용하던 단골 브랜드를 다시 찾는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S&P 500 지수가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인 2006년부터 작년까지 224% 오르는 동안 세계 500대 브랜드 기업의 주가는 363% 늘어났다”며 “위기일수록 브랜드는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칸타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웨인 레빙스 칸타 아태지역 CEO는 "코로나 팬데믹이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어떤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든 반드시 소비자의 웰빙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남강호기자

◇위기 때 빛나는 브랜드의 힘

레빙스 CEO가 몸담은 칸타는 닐슨·아이큐비아·가트너·입소스 등과 함께 매출 기준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시장조사기관이다. 본사는 영국 런던에 있다. 마케팅 컨설팅과 데이터 리서치를 주력으로 삼으며 고객사만 1000여 개에 달한다. 구글·메타(페이스북)·아마존·유니레버·코카콜라·삼성·현대차 등 포천(Fortune)지 선정 100대 기업 중 65개사가 칸타의 고객이다. 어느 기업이든 해외시장에 진출하려면 브랜드 이미지와 타깃 소비자층, 제품 가격, 접근 채널 등을 설정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시장과 소비자의 특성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런 일을 도맡아 하는 게 칸타 같은 회사들이다.

마케팅 컨설턴트로 칸타에 합류해 소매 부문 CEO와 북미 지역 지사장, CCO(최고고객책임자)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레빙스 CEO는 “과거에는 P&G나 유니레버 같은 소비재 기업이 가장 큰 고객이었지만, 요즘은 구글­·메타·아마존 같은 기술 기업들의 의뢰가 많아졌고 자동차나 금융 서비스 역시 우리를 찾는 등 고객층이 정말 광범위해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 기업에 대해선 “한국 지사(칸타코리아) 매출의 50% 이상이 해외 프로젝트에서 나온다”며 “과거에는 삼성·LG·현대차 같은 대기업만 해외시장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젠 중견 기업들도 사업 시작 단계에서부터 해외 비즈니스를 염두에 두고 (브랜딩에 관한) 시장조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기업들이 브랜드의 힘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면 인식 기술로 소비자 반응 파악

문제는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분석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레빙스 CEO는 “예전에는 신문과 방송만으로도 충분히 시장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며 “사회와 기술 발달로 소비자 취향은 더욱 세분화됐고, 각종 소셜미디어 등 접촉점(touch point)도 늘어나면서 데이터 분석의 복잡성이 지나치게 커졌다”고 했다. 소비자 데이터의 양뿐만 아니라 분석해야 할 항목도 크게 늘면서 데이터를 해석하고 유의미한 관점을 도출하는 작업이 그만큼 힘들어진 것이다.

칸타를 비롯한 시장조사기관들이 돌파구로 택한 것은 인공지능(AI)과 뉴로사이언스 같은 신기술이다. 칸타가 8년 전 업계 최초로 도입한 안면(顏面) 코딩 기술이 대표적이다. 사전 동의를 받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안면코딩 기술은 웹캠을 통해 광고를 보는 소비자의 얼굴 표정 변화를 세세하게 포착해 광고 몰입도와 감정 반응을 분석한다. 이런 기술 덕에 칸타의 전 세계 사전 광고 테스트 시장 점유율은 94%에 달한다.

레빙스 CEO는 “5만개 이상 광고를 분석하고 1150만개가 넘는 얼굴 영상을 캡처해 분석했더니, 이름이 알려진 중·대형 브랜드의 광고일수록 표정과 매출의 상관관계가 높았다”고 말했다. 2020년 6월에는 광고 효과를 분석해주는 인공지능 서비스 ‘링크(Link) AI’를 출시해 이 분야를 더 강화했다. 그는 “구글과 유니레버도 작년부터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며 “구글의 경우 매출과 브랜드 가치를 견인하는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1만1000개 이상의 광고 분석을 의뢰했는데, 분석을 마치는 데 걸린 기간은 단 한 달에 불과했다”고 자랑했다. 인력으로 이 정도 규모의 광고를 분석하려면 통상 41개월이 소요된다고 한다.

◇팬데믹 이후 빅 트렌드는 정신 건강

칸타는 이런 기술 플랫폼으로 지난해 5억달러(약 626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작년 칸타의 전체 매출액(약 33억달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5% 수준이지만, 주요 사업부 중 하나인 퍼블릭(선거 관련 여론조사) 부문의 매출(약 2억1800만달러)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덜 중요한 사업부를 정리하고 소비자와 마케팅 조사 분야 기술 투자를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칸타는 지난해 4월 생명과학 분야 사업부인 칸타 헬스를 3억7500만달러에 매각했고, 지난달에는 퍼블릭 사업부를 사모펀드에 판다고 발표했다. 반대로 데이터 분야 기술을 가진 기업은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데이터 및 기술 분야 시장조사기관인 뉴머레이터를 14억달러에 인수했고, 유럽의 AI 기반 마케팅 설루션 기업 블랙우드 세븐과 영국의 유료 앱(App) 서베이 플랫폼 큐미(Qmee)도 인수하기로 했다. 레빙스 CEO는 “인수합병을 제외한 자본 투자액(Capex)도 1억1800만달러(약 1477억원)에 달한다”며 “올해도 기술 고도화에 집중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늘 시장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그는 앞으로 성장성이 높은 유망 시장으로 정신 건강 시장을 꼽았다. 레빙스 CEO는 “다음 팬데믹은 정신 질환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팬데믹 2년간의 봉쇄와 제약은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소비자의 웰빙은 이제 모든 제품 카테고리에 걸쳐 고려돼야 할 필수 요소로 간주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팬데믹 후폭풍으로 정신 질환은 주요 사회현상으로 대두될 것이며, 힐링과 명상, 야외 활동 등 정신 건강을 돌보는 산업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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