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농산물 생산국이 식량 안보를 내세워 농산물 해외 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잇따라 내리면서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미국 세계식량정책연구소(IFPRI)에 따르면, 이달 초 기준 식량 수출 금지 및 제한 조치에 나선 나라는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모두 27국이다. 인도가 지난달 밀 수출을 전격 금지하고 설탕 수출을 제한(올해 1000만톤)한 것을 비롯해 지난 4월 인도네시아는 식물성 기름인 팜유 수출을, 이집트는 밀과 콩 등 주요 곡물 수출을 일시 중단시켰다. 이 밖에도 터키와 아르헨티나, 세르비아, 이란,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등이 줄줄이 농산물 수출 금지 및 제한 조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에는 농산물 수출 금지 및 제한 국가가 4곳에 불과했지만 4개월여 만에 7배로 늘었다.
수출 규제에 나선 국가 중 상당수는 세계 식량 공급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인도는 세계 2위 밀 생산국이자 설탕 수출국이며,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팜유 수출국이다. 대두유 수출을 제한하고 있는 아르헨티나도 해당 부문 1위 수출국이고, 세르비아는 유럽 5대 옥수수 수출국이다. 수출 금지 및 제한 조치를 취한 나라들이 전 세계 농산물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열량(칼로리) 기준 17%에 달한다. 이상 기후와 개발도상국들의 수요 급증으로 극심한 식량 위기가 닥쳤던 2008년에 이 비율은 12%까지 치솟은 적이 있는데, 현재는 당시보다 5%포인트나 높다.
공급망 대란, 기상 악화에 따른 생산량 감소,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더해 수출 금지 및 제한 조치까지 취해지면서 농산물 가격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올 들어 20% 가까이 상승(133.7→158.5)했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우리나라의 농축수산물 수입가격지수(118.4) 역시 전년 대비 32.7%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농산물 가격 급등이 선진국에 소비 침체를 불러오는 한편 개도국 국민의 생존을 위협할 것으로 우려한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베아타 야보르칙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식량 보호무역주의가 이미 기록적 수준으로 치솟은 전 세계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며 “이 때문에 빈곤율이 높아지고, 독재 정권이 더 억압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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