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말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온라인 세션에서는 ‘양자 컴퓨팅이 가상화폐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해킹할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됐다. 블록체인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수많은 네트워크 참여 컴퓨터에 정보를 분산 저장하는 기술이어서 위·변조와 해킹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날 온라인 세션에서 전문가들은 “양자 컴퓨터를 활용하면 막대한 양의 가상화폐를 훔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결론 내렸다.
양자 컴퓨터 시대가 코앞에 다가오면서 사이버 보안에 대한 우려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IBM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아마존 등 거대 기술 기업들이 양자 컴퓨터 상용화에 성큼 다가가면서 기존 암호화 체계가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진 것이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최고경영자)는 지난 2020년 WEF에서 “앞으로 5~10년 사이에 양자 컴퓨터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암호화를 깨뜨릴 것”이라고 했었다.
양자 컴퓨터는 반도체가 아닌 양자역학 현상을 이용해 만들어 종전 컴퓨터 성능을 아득히 뛰어넘어 자연현상까지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일종의 수퍼 컴퓨터다. 기존 컴퓨터는 0 또는 1이라는 이진법으로 연산하지만, 양자 컴퓨터에선 0과 1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어 연산 속도가 극대화된다. 가령, 구글이 지난 2019년 공개한 53큐비트(양자 컴퓨터 성능 단위) 양자 컴퓨터 시커모어는 기존 최고 성능의 수퍼 컴퓨터가 1만년 걸릴 과제를 약 200초면 풀 수 있다. 양자 컴퓨터 성능이 기존 수퍼 컴퓨터를 넘어서는 ‘양자 우월성(Quantum supremacy)’에 도달했다고 입증한 건 시커모어가 처음이었다.
시커모어의 등장과 함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구글과 함께 양자 컴퓨터 개발 선두 기업으로 이미 지난 2016년 5큐비트 수준의 범용 양자 컴퓨터를 발표했던 IBM은 지난 2020년 20큐비트 양자 컴퓨터 ‘IBM Q 시스템 원’을 공개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 127큐비트 수준의 범용 양자 프로세서 ‘이글(Eagle)’을 발표했다. 중국과학기술대학(USTC)도 작년 6월 시커모어를 넘어선 66큐비트 수준의 양자 컴퓨터를 개발해 시연까지 마쳤다고 밝혔다.
전자 지갑에 있는 가상화폐를 해킹하는 데 필요한 양자 컴퓨터 성능은 약 1000만 큐비트로 추정된다. 현재 개발된 양자 컴퓨터 성능과 비교하면 한참 앞선 수준이지만, 마냥 먼 미래는 아니다. 금융 산업 위험 연구 기관 글로벌 리스크 인스티튜트(GRI)가 올해 1월 발표한 양자 위협 보고서에 따르면, 양자 컴퓨터는 앞으로 10~15년 안에 1000만 큐비트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다른 한편에서는 양자 컴퓨터 시대에 맞는 새로운 보안 체계를 개발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양자역학의 특징을 활용해 양자 컴퓨터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암호 체계인 양자 암호다. 국내에서는 지난 8일 SK브로드밴드가 세계 최초로 국가 기간 통신망에 양자 암호 기술을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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