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2010년 직원 7명짜리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전자상거래 기업이다. G마켓이나 옥션 같은 오픈마켓을 이용하면 택배 회사를 통해 사나흘 후에나 받아볼 수 있는 반면, 쿠팡은 주문 다음 날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일명 ‘로켓 배송’을 들고나왔다. 이를 위해 상품을 직접 사들여서 보관했다가 주문자에게 발송하는 시스템을 갖춰 나갔다. 전국 곳곳에 물류 센터를 건립했고, 자체 배송 인력인 쿠팡맨도 채용했다.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고, 어느덧 규모로는 우리나라 1위 온라인 유통 기업이 됐다. 지난해 매출은 약 22조원으로 이마트(16조4500억원)와 SSG닷컴(1조4942억원) 매출(별도 기준)을 더한 것보다 많다. 직원 수는 6만5700여 명에 달한다.
기세를 몰아 작년 3월에는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하는 데 성공했다. 공모가 35달러(약 4만5147원)에 5조원 가까운 자본을 조달해 미국 증시에 상장한 아시아 기업 중 넷째로 컸다. 초기 시장 반응도 호의적이어서 공모가보다 81% 높은 63.5달러로 첫 거래를 시작했다. 기업 가치는 한때 630억달러(약 81조2700억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후엔 줄곧 내리막이다. 상장 두 달 만에 주가는 30달러대로 내려왔고, 8월이 되자 20달러대를 찍었다. 올 들어서는 10달러 벽이 무너지기도 했다. 투자자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지만, 김범석 쿠팡 창업주는 지난달 초 실적 발표에서 “앞으로도 회사는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아마존’이 되겠다는 쿠팡의 꿈은 과연 계획대로 진행 중인 것일까.
◇큰 손실 본 큰손들, 버티기 모드
지난해 상장 당시 세계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쿠팡에 대체로 박한 평가를 내렸다. JP모건·도이체방크·미즈호증권·크레디트스위스 등은 ‘중립’(보유) 투자 의견을 내놨다. 크레디트스위스는 당시 “쿠팡이 다른 주요 시장의 경쟁자들만큼 우위에 있지 않으며, 웃돈을 주고 살 만한 주식은 아니다”라고 했다. 투자은행 중 유일하게 쿠팡을 ‘사라’고 줄곧 권유한 곳은 상장 주관사를 맡은 골드만삭스다. 상장 초기 골드만삭스는 목표 주가를 60달러로 제시하며 ‘매수’ 의견을 내놨다. 올해 3월 말에도 골드만삭스는 쿠팡에 대한 투자 의견을 ‘매수’에서 ‘강력 매수’로 상향하며 목표 주가를 52달러로 올려 잡았다. 이때 쿠팡 주가는 10달러대였다.
하지만 골드만삭스의 낙관적 전망과 달리 주가는 반등의 기미가 없다. 이 때문에 지난해 주가를 ‘바닥’으로 생각하고 쿠팡 주식을 매입한 내로라하는 투자자들은 엄청난 평가 손실에 직면했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3~4분기에 기관 106곳이 쿠팡 주식을 샀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경우 지난해 4분기에 주가 29달러일 때 쿠팡 주식 1619만주를 매입했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6053억원어치다. 워싱턴대학교도 평균 28달러 수준에 543만주(약 1961억원어치)를 샀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운영하는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은 주가가 꼭대기에 있던 작년 1분기 49달러에 571만주를 사들였다.
미국의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인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작년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225만주 넘게 추가 매입했다. 작년 말 기준으로 그가 보유한 쿠팡 주식은 1776만3525주, 지분 가치는 5억2189만달러(약 6728억원)에 달한다. 테슬라를 발굴한 것으로 잘 알려진 영국 자산운용사 베일리기포드는 작년 말 쿠팡 주식 6461만주를 매입해 포트폴리오의 약 1.04%를 쿠팡으로 구성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는 약 4500만주를 더 사들였다. 지난해 1~2분기 쿠팡 주식을 관망하던 국민연금도 3~4분기에 평균 39.4달러 정도에 매수에 나섰다가 낭패를 봤다. 현재 주가로 따지면 손실이 70%에 가깝다. 아예 눈물을 머금고 손절한 곳도 있다. 성장주 투자 전문 헤지펀드 타이거글로벌은 지난해 평단가 49.35달러에 쿠팡 주식 357만주를 매입했다가 올해 1분기 전량 매도했다. 추정 손실액은 1억달러가 넘는다.
◇“공포 과도, 시장점유율 보라”
많은 큰손 투자자가 쿠팡 주식을 매수한 뒤 버티는 이유는 이미 손실이 너무 크기도 하지만, 언젠가 주가가 반등할 잠재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증권 전문 매체 모틀리풀은 쿠팡의 주가매출비율(매출액 대비 주가 비율·PSR)이 시장 평균(2.5)보다 낮은(1.2) 점 등을 들며 “쿠팡이 성장을 위해 투자하면서 지난 1년 간 약 10억달러 현금을 쓰다 보니 투자자들이 불안해 할 수 있지만, 여전히 30억달러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다. 도이체방크도 “쿠팡과 같은 아시아 기술주에 대해 투자자들이 지나친 공포심을 갖고 있다”며 “주가가 10달러대에 있는 지금이 기회”라고 했다. 골드만삭스는 “전자상거래 업계가 경쟁이 심해지고 있고 성장은 둔화하고 있지만 쿠팡 주가에는 각종 악재가 이미 반영돼 있다”고 했다.
높은 시장점유율도 강점으로 꼽힌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쿠팡이 지난해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포털은 제외)에서 차지한 점유율은 약 23%다. 2위인 이베이코리아(9%)보다 14%포인트나 높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쿠팡처럼 미래를 보고 사업하는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시장점유율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2위 업체와 10%포인트 이상 격차를 유지하고 있어 한국의 아마존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빅테크주 상당수가 금리인상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하락세에 있는 만큼 쿠팡만 콕집어 주가 하락이 지나치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최근 6개월간 넷플릭스(70.45%), 이커머스업체 쇼피파이(76.8%)는 같은 기간 쿠팡 주가 하락폭((60.5%) 보다 컸다.
◇”고비용 구조, 시장도 포화”
하지만 끊임없이 적자를 내며 외형을 키우는 쿠팡식 사업 방식이 지속 가능한지 의구심도 높아진다. 미국 경제 잡지 엔터프러너는 쿠팡의 지난 1년간 매출총이익률(매출에서 얼마만큼의 이익을 얻느냐를 나타내는 재무 비율)이 16.9%로 업계 평균인 35.8%의 절반 수준인 점을 지적하며 “쿠팡이 수익성을 개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주가가 회복되기는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실제 쿠팡은 창업 이래 단 한 해도 이익을 낸 적이 없다. 창업 초기인 2013년 160억원 적자를 시작으로 2015년에는 5470억원, 2018년에는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적자가 1조8000억원을 넘어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낸 적자는 6조1000억원이 넘는다.
수익성이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물류 센터를 늘리는 데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팡은 창업 이래 전국 400만㎡(약 121만평) 부지에 물류 센터 약 100곳을 지었다. 이를 바탕으로 전국 가구의 70%가 쿠팡 물류 시설과 10km 이내에 있다는 게 쿠팡의 설명이다. 작년에는 3200억원을 들여 대구에 물류 센터를 지었고, 향후 부산과 전북 완주, 경남 창원 등 6곳에 물류 센터를 짓기 위해 1조원 넘는 돈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물류 센터를 건설하는 것뿐 아니라 유지하는 데도 적지 않은 인건비가 든다는 점이다. 상품별로 정해진 공간에 물건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일반적인 물류 센터와 달리 쿠팡은 적은 양의 다양한 제품을 공간 구분 없이 센터 곳곳에 배치하는 랜덤 스토(random stow)방식으로 물류 센터를 운영한다. 더 많은 제품을 더 빨리 내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게 큰 단점이다. 고객 주문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점점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보니 인건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 쿠팡 인력은 해마다 크게 늘어, 작년 한 해 인건비로만 4조7000억원 넘게 썼다. 현병언 한국IT유통물류학회장은 “빠른 배송을 위해 배달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고 랜덤 스토 방식을 채택하다 보니 물류 서비스 질은 좋아졌지만 인건비 부담도 커졌다”며 “빠른 배송 등을 자제하고 이익과 매출과 균형을 맞추는 식으로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전자상거래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점도 장래를 어둡게 한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작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소매 판매액 중 전자상거래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0년 현재 25.9%에 이른다. 중국(24.9%), 영국(23.3%), 미국(14.0%), 호주(9.4%), 싱가포르(11.7%) 등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의 경우 전자상거래 비율이 6.7%(2019년 기준)에 불과하다. 전자상거래 시장이 이미 성숙 단계에 다다른 터라 앞으로 성장이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실제 통계로도 나타난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3월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17조232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증가했다. 작년 3월 온라인 쇼핑 거래액이 전년 대비 26% 성장한 것에 비하면 성장률이 반 토막 난 셈이다. 미국의 투자 전문 매체 시킹알파는 올해 초 ‘쿠팡이 아시아에서 최고의 투자 대상이 아니다’라는 기사에서 “한국이 전자상거래가 가장 발달한 시장인데, 기존 사업자들이 각자 몫을 가져간 상황이어서 쿠팡이 성장을 위해서는 경쟁자들로부터 소비자를 끌어와야만 한다”고 했다. 하지만 쿠팡 못지않게 자금력이 탄탄한 경쟁자들은 쉽게 시장을 내주지 않을 태세다.
쿠팡이 각종 사건·사고로 꾸준히 구설에 오른 것도 리스크다. 작년 6월에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쿠팡 덕평 물류 센터에서 불이 나 소방관 1명이 순직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밖에 새벽 배송 업무에 나선 배송 기사가 사망하자 과로사 논란이 불거졌고, 부천에 있는 물류 센터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환자가 80여 명 발생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기업으로 각인됐다. 쿠팡은 직원 수가 6만 5000여명에 이르지만, 창업 후 업무상 재해 사고로 인정받은 사례는 1건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멤버십 요금 인상이 시험대
수익성과 지속 가능성 논란이 창업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됐지만, 쿠팡은 신규 사업 투자 등으로 생긴 ‘계획된 적자’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수조 원을 들여 물류 센터를 확충하고 음식 배달 서비스 ‘쿠팡이츠’,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쿠팡플레이’ 등 신사업에 뛰어들면서 발생한 적자일 뿐 곧 흑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로 창업 12주년을 맞는 쿠팡은 1분기에도 2억570만달러(약 2648억원) 영업 손실을 냈지만, 작년 1분기(2억6731만달러)보다는 적자가 축소됐다. 당기순손실도 2억929만달러(약 2693억원)로 작년(2억9503만달러)보다 30% 가까이 줄었다. 특히 로켓 배송과 로켓프레시 등 핵심 사업인 제품 커머스 부문에서 EBITDA(이자·세금·감가상각 전 이익·기업이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현금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수익성 지표)는 287만달러(약 37억원)로 사상 첫 흑자를 냈다. 쿠팡 측은 “핵심 사업인 로켓 배송 사업에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이른 시일 안에 완전한 흑자로 돌아설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하나금융투자 박종대 연구원은 “시장점유율은 안정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는 만큼 영업 적자를 계속 줄일 수 있느냐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삼성증권 박은경 수석연구위원은 “쿠팡이 지금까지 저금리 시대를 누리며 투자도 많이 받아 공격적인 투자를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금리가 오르면서 현금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투자자들이 현금 흐름을 더욱 눈여겨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멤버십 요금 인상은 쿠팡의 이익 창출 능력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쿠팡은 멤버십 서비스인 ‘로켓와우’ 한 달 이용료를 2900원에서 이달 들어 4990원으로 올렸다. 두 배 가까운 멤버십 요금 인상에도 회원수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로켓와우는 로켓 배송 무료 배송(건당 3000원)과 30일 무료 반품(건당 5000원), 로켓 직구 무료 배송(건당 2500원), 쿠팡플레이 무료 시청 등 혜택을 제공한다. 지난해 말 기준 로켓와우 회원 수는 약 900만명인데, 초기 회원을 끌어모으려 요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했다. 이로 인해 매년 수천억 원씩 적자가 났고, 이를 유지하고자 지금까지 수조 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골드만삭스는 “로켓와우 멤버십으로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 있고, 효율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시장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생태계를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면서 요금 인상으로 약 525억원의 현금이 들어올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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