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Uber)의 발원지이자 미국 혁신 기업의 요람인 캘리포니아주(州) 샌프란시스코에서 세계 최초로 완전 무인(無人) 자율 주행 택시(로보택시) 서비스가 시작됐다. 제너럴모터스(GM)의 자율 주행 사업 부문 크루즈(Cruise)가 개발한 로보택시가 캘리포니아 도시교통청 허가를 받고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유료 서비스에 나선 것이다. 지난달 22일(현지 시각)부터 매일 밤 10시 이후 샌프란시스코 북서부 지역 일대에서 로보택시 30대가 알아서 시내를 돌아다니며 승객을 태운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비상 운전자나 조수석 보조 운전자조차 없는 완전 무인 로보택시가 상용화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크루즈 로보택시의 성공 여부는 완전 자율 주행 서비스의 새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카일 보그트 크루즈 CEO(최고경영자)는 “인구밀도가 높고 복잡한 샌프란시스코에서 운행할 수 있다면 다른 곳에서도 운행할 수 있다”며 “자율 주행이 현실이라는 업계의 신호탄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無人 주행 물꼬 튼 크루즈
미국자동차공학회(SAE)는 자율 주행 수준을 0~5단계로 나누는데, 4단계는 정해진 구역에서만큼은 완벽한 자율 주행을 구사하는 수준을 의미한다. 갑작스러운 끼어들기나 공사 현장, 보행자 무단 횡단 같은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차량 스스로가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크루즈 외에도 많은 기업이 이미 4단계 이상 자율 주행 기술을 갖췄다고 말하지만, 안전 사고 우려나 법·규제 등을 이유로 무인 운행은 기피해 왔다.
구글의 자율 주행 자회사 웨이모가 지난 2020년 세계 최초로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유료 로보택시 운행을 시작하긴 했지만 안전 요원이 탑승한 채였다. 지난해 5월 베이징에서 유료 서비스를 시작한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바이두의 로보택시 ‘아폴로 고’ 역시 안전 요원을 태운 채로 운행하고 있다. 바이두는 지난 4월 베이징에서 완전 무인 로보택시 서비스 운영 허가를 얻었지만 아직 본격적인 무인 주행은 시작하지 않았다.
지난달부터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에서 시범 주행에 나선 현대차그룹의 로보택시 ‘로보라이드’ 역시 기술 수준은 4단계 자율 주행을 표방하지만 비상 운전자를 태운 채 주행한다.
경쟁자들을 제치고 ‘사상 첫 완전 무인 로보택시 상용화’ 타이틀을 딴 크루즈의 지금까지 성적표는 가능성과 한계가 교차한다. 보그트 CEO는 서비스 출시 다음 날 언론 인터뷰에서 “탑승자 상당수가 별점 5개를 줬다”며 “승객들은 낯선 사람(택시 기사)과 타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것에 만족감을 보였다”고 했다.
저렴한 요금도 강점으로 부각됐다. 크루즈 로보택시는 기본 요금 5달러(약 6500원)에 1마일(약 1.61km)당 0.9달러 또는 분(分)당 0.4달러로 책정됐다. 2km를 달리는 데 나오는 요금은 세금 포함 8.72달러(약 1만1500원). 같은 거리를 우버 택시로 가면 최소 10.41달러(약 1만3700원)가 넘는다.
하지만 잡음도 잇따르고 있다. 로보택시 영업이 시작된 지 8일 만인 지난달 30일 자정 무렵 고프와 폴턴 거리 교차로에는 로보택시 약 20대가 승객도 태우지 않은 채 갑자기 집결해 교통 체증을 일으켰다. 크루즈 직원들이 현장으로 출동해 직접 끌고 가기 전까지 약 2시간 정도 도로가 마비됐다.
해당 장면을 찍은 사진은 트위터와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 등을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미국 네티즌들은 “장시간 교통 체증을 유발한 크루즈에 과태료를 부과해야 한다” “마치 로봇들이 인간을 죽이려고 모여있는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등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크루즈도 사고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문제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기술적인 문제”라고만 언급하는 등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미국 CNBC는 “자율 주행차 개발과 상용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상용화를 위해 시험 주행 중이던 지난 4월 초에는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하는 소방차를 가로막은 일이 화제가 됐었다. 소방차가 이중 주차된 쓰레기 트럭을 피해 가려고 반대 차선을 이용하려 했지만 반대 방향에서 오던 크루즈 로보택시가 비켜주지 않아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소방국은 “이번 사건으로 재산 피해와 인명 피해를 초래한 화재에 대한 대응이 늦어졌다”며 크루즈 차량이 이동 차로에 너무 자주 정차해 화재 대응 시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IT 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자율 주행 소프트웨어가 발전하더라도 이런 우연한 사건에 계속 부닥칠 것”이라며 “자율 주행 업계의 많은 사람이 ‘모든 상황에서 자율 주행이 가능한 5단계 자율 주행차는 절대 만들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라고 했다.
◇사람보다 안전하다지만…
자율 주행 기술이 완벽해지는 건 불가능할지 몰라도, 운전 실력만 따지면 이미 사람보다는 낫다는 것이 여러 데이터로 입증된다. 가령 캘리포니아에서 자율 주행차 시험 주행을 허가한 지난 2014년 이후 4년간 완전 자율 주행 모드로 주행 중 발생한 사고는 모두 38건이었는데, 이 중 자율 주행 기능 이상으로 발생한 사고는 단 1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37건은 상대방 차량이나 보행자, 자전거 운전자 등 사람의 과실로 인한 사고였다. 미국 자율주행자동차산업협회 아리엘 울프 법률 고문은 “자율 주행차는 음주 운전도, 과속도 하지 않는다”며 “도로를 더 안전하게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완전 무인 자율 주행 서비스가 본격 상용화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기계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여전히 크다.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60%는 “기회가 돼도 무인 자율 주행차는 타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법과 제도 역시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내 법규상 기존 차량을 개조한 자율 주행차는 반드시 비상 운전자가 탑승해야 한다”며 “특히 어린이 보호 구역이나 노인 보호 구역 같은 교통 약자 보호 구간에선 법적으로 자율 주행이 금지돼 있어 수동 주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 무인 자율 주행차가 사고를 일으켰을 때 어떻게 보험 처리를 할지, 인명 사고 시 형사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 무인 자율 주행차가 야기할 수 있는 대량 실업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지 등의 문제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자율 주행차의 시대는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크루즈의 샌프란시스코 로보택시가 자율 주행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았다”며 “크루즈는 내년에 운전대와 페달마저 없앤 로보택시 ‘오리진’을 두바이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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