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400여 명 규모의 평생교육업체 휴넷은 이달 1일부터 금요일을 휴무로 둔 주 4일 근무제(주 32시간 근무)를 본격 도입했다. 지난 1월부터 일주일 중 원하는 요일에 쉬는 형태로 시범 운영해오다 설문조사를 거쳐 제도를 정착시킨 것이다. 근무 시간은 줄었지만 연봉은 동일하다. 이 회사는 앞서 2019년부터 주 4.5일제를 해왔는데, 매출액이 매년 20% 이상씩 늘어나는 등 성과가 오히려 좋아졌다고 한다. 휴넷 관계자는 “근무 시간이 줄어도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부서별로 집중근무시간 같은 제도를 도입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주 4일제 논의에 불이 붙고 있다. 유연·탄력근로제가 자리 잡으며 근무시간이 곧 생산성이라는 인식이 옅어지고, 코로나 기간 재택근무·단축근무 같은 다양한 근무 형태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근무 제도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싹텄기 때문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기업 입장에서도 인재 유치를 위해 주 4일제를 검토할 수밖에 없게 됐다. 최근엔 주요 국가에서 정부 차원의 검토 과제로도 부상하는 추세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은 “주 40시간 근무를 규정한 공정근로기준법이 (미국에서) 채택된 지 80여 년 만에 또 다른 격동이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세계는 주 4일제 실험 중
국제 비영리단체 ‘포데이위크 글로벌’은 지난달 영국에서 70여 개 기업, 3300여명의 근로자와 함께 주 4일제 근무 실험에 나섰다. 6개월 동안 근로자들이 100%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80%의 시간만 근무하고, 임금은 100% 그대로 받는 ‘100:80:100′ 모델이다. 금융 회사부터 식음료, 화장품 회사까지 다양한 업종이 참여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옥스퍼드대, 미국 보스턴대 연구자들은 이번 실험에서 주 4일로 근무 패턴이 바뀌면 어떤 변화가 발생하는지 측정할 예정이다. 연구를 이끄는 줄리엣 쇼어 보스턴대 사회학과 교수는 “역사적인 실험”이라며 “스트레스와 피로, 직업과 삶의 만족도, 건강, 수면, 여행 등 많은 측면을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8월엔 호주와 뉴질랜드, 10월엔 미국과 캐나다에서 수십 개 기업이 참가하는 주 4일제 실험이 예정돼 있다.
벨기에 정부는 지난 2월 주 4일만 일하도록 하는 내용의 노동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하루 최대 근무시간을 8시간에서 9시간 30분으로 조정, 하루 근무 시간을 늘리는 대신 근무 일수는 줄이는 방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에서는 지난 4월 500명 이상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주 32시간제를 도입하고, 이를 넘겨 근무하면 초과 근무 수당 지급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다만 이 법안은 ‘기업에 부담이 된다’는 반대 의견에 부딪혀 최종 통과되지 못했다. 일본에선 정부가 작년 6월 ‘주 4일제 도입을 권고한다’는 내용의 경제 운영 기본 방침을 공개했다. 이후 히타치, 파나소닉, NEC 등이 주 4일제를 도입했거나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국내에서도 지난 대선 과정에서 근무시간 단축 공약이 쏟아졌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주 4일제를 1호 공약으로 내세웠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주 4.5일제를 공약했다. 정치권 논의와 무관하게 주 4일제를 도입한 기업도 적지 않다. SK텔레콤은 매달 한 번 실시하던 금요일 오프 근무 제도인 ‘해피 프라이데이’를 지난달부터 두 번으로 확대했다. 다만 한 달 기준 근무시간은 주 5일제 때와 같다. 교육업체 에듀윌은 2019년 주 4일제를 도입했고, 카페24와 밀리의서재는 월 2회 주 4일제를 운영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의 경우 주 5일제는 유지하지만 올해부터 근무시간을 주당 32시간으로 줄였다.
◇관건은 임금 보전
주 4일제를 도입한 기업들의 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영국의 마케팅 대행사 럭스는 지난 2020년 임금 감소 없는 주 4일제 실험을 시작했고 평가를 거쳐 지난 1월 정식으로 도입했다. 럭스는 이 기간 월~목요일, 화~금요일 교대 근무조를 구성한 후 고객사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주 4일제가 업무에 방해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럭스 측은 “고객사는 우리가 주 4일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고 지난 2년간 회사 수익은 오히려 30% 증가했다”고 했다. 영국의 주 4일 실험에 참가하고 있는 보조 손잡이 설치업체 ‘핼핑 핸즈’는 하루 작업량이 실험 참가 전보다 오히려 늘었다고 밝혔다. 에듀윌 역시 2019년 주 4일제를 도입한 뒤에도 매출이 매년 두 자릿수 성장하고 있다.
직원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작년 5월부터 매달 두 번씩 주 4일제를 하는 카페24 관계자는 “자기계발이나 취미 활동을 할 시간이 늘고 업무 집중도도 높아져 만족하는 직원이 많다”고 말했다. 올 초 1000여 명의 미국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퀄트릭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2%가 4일 근무에 찬성했고, 이 제도가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고(81%), 인재 채용에도 도움이 될 것(82%)이라고 답했다. 국내 스타트업 퍼블리가 지난달 IT 업계 4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하나의 복지제도만 가능하다고 하면 당신의 선택은?’이라는 설문조사에서도 ‘주 4일제’를 선택한 응답자가 절반에 달했다. 재택·하이브리드 근무(25%), 자유로운 유급휴가(13%)보다 훨씬 많았다.
관건은 임금 보전이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임금을 줄이는 형태의 주 4일제’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한국리서치가 작년 10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 4일제 찬성 응답은 51%로 반대(41%)보다 높았지만, ‘임금 삭감을 동반한 주 4일제’로 물음이 달라지자 ‘반대(64%)’가 ‘찬성(29%)’보다 높아졌다. 경영계에선 근무 시간을 단축한다면 임금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한 만큼 주 4일제 논의가 본격화하면 임금을 둘러싼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주 4일제를 도입할 수 있는 업종이 한정적이어서 직종 간, 기업 간 불평등을 키울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스웨덴에선 2015년 일부 요양시설을 대상으로 하루 근로 시간을 8시간에서 6시간으로 단축하는 실험이 이뤄졌는데, 진보 진영에서조차 “대규모로 시행하기엔 추가 채용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근무자가 반드시 있어야 업무가 돌아가는 직종에선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IT 업종은 근무 시간과 생산성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주 4일제를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제조업 같은 업종에선 확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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