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동운

우리는 불경기를 싫어한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경기가 하강 곡선으로 접어들면 경제성장이 더뎌지거나 후퇴해 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뜨린다. 성장률이 -1~2%만 돼도 누군가는 직장을 잃고, 누군가는 돈을 잃는다.

모두가 불경기를 싫어하지만, 불경기에도 긍정적인 면이 존재한다. 역설적이게도 불경기는 더 큰 경제 위기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사고와 안전 불감증의 관계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대부분 사람들은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사고가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안전 불감증이 생긴다. 이러한 믿음은 실제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수록 더욱 강화된다. 그래서 만에 하나 사고가 벌어졌을 때 매우 취약한 상태로 나아간다. 예를 들어 30년 동안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건물의 건물주는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기 쉽다. 그러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막아줄 안전 조치나 설비 마련에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경제와 자산 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곧잘 벌어진다. 2000년대 초 장기 호황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호황이 장기간 이어지자 사람들은 투자와 경제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갖게 됐고, 잘 발달된 파생상품들이 리스크를 줄여준다고 믿게 됐다. 그러자 사람들은 소비나 투자에 있어 지나치게 과감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짊어지지 않을 과도한 리스크를 짊어지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당시 금융 위기의 도화선이 된 상품들은 주택 시장이 계속 오르고 하락하지 않을 것이란 투자자들의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지지해줄 리스크 분산 기술에 기반해 있었다. 이것이 모럴 해저드를 만들었고, 결국 작은 확률의 사건이 이 취약점을 정확하게 타격하자 전 세계적인 위기가 발발했다.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렙은 예측 가능한 위기나 사고를 제로(0)로 만드는 데 집중하면 오히려 예측할 수 없는 위기에 매우 취약해질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불경기 또한 그와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불경기가 없다면 사람들은 과도한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게 되고, 만에 하나 대형 위기가 터지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경기는 시장 참여자들을 겸허하게 만드는 예방 주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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