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인기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러브 아일랜드’ 제작진은 지난달 새 시즌을 시작하며 패스트 패션(fast fashion)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자라, 에이치앤엠(H&M), 유니클로 등으로 대표되는 패스트 패션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에 최신 유행을 반영한 상품을 빠르게, 자주 공급하는 형태다. 아시아의 저렴한 노동력과 합성섬유 덕에 지난 20여 년간 패스트 패션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전 세계 의류 생산량은 2000년에서 2014년 사이 두 배로 증가했다.

러브 아일랜드 출연진 역시 지난 4년간 패스트 패션 업체 의상을 입어 매출 신장에 기여해 왔다. 그런데 제작사는 이번 시즌부터 패스트 패션 업체와 후원 계약을 끝내고 온라인 쇼핑사이트 이베이와 새로 후원 계약을 맺었다. 출연진은 이베이가 제공한 중고 의류를 입고 서로 옷장을 공유한다. 옷을 따라 사길 원하는 시청자에겐 이베이에서 비슷한 디자인의 중고 의류를 사라고 안내한다. 러브 아일랜드 측은 “프로그램을 더 친환경적으로 제작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고, 이베이는 “패션에 대한 논의를 바꿀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라고 했다.

영국 인기 리얼리티 TV쇼 ‘러브 아일랜드’는 이번 시즌부터 이베이와 후원 계약을 맺고 출연진들에게 중고 의류를 제공한다. /이베이

러브 아일랜드의 ‘변심’은 최근 패션 시장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평가받는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등에 따르면, 패션 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최대 10%를 차지한다. 합성섬유로 만든 의류가 썩어서 분해되는 데는 200년이나 걸리지만, 매년 버려지는 의류·신발 가운데 재활용·재사용되는 비율은 13%밖에 되지 않는다(2018년 미국 기준). 특히 ‘한 철 입고 버리는 옷’으로 비판받아온 패스트 패션이 낭비와 환경오염 논란의 중심에 있다.

그러자 친환경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패스트 패션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졌다. 빠른 생산을 내세운 중국 패션업체 쉬인이 지난 5월 프랑스에 팝업스토어를 열었을 때 매장 앞에서 벌어진 항의 시위가 이런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스가이디드, 포에버21 같은 일부 패스트 패션 브랜드는 최근 2~3년 새 기업 가치가 급락하며 헐값에 매각되기도 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친환경에 대한 소비자 요구가 커지면서 앞으로 5~10년간 패스트 패션 상품 판매가 최대 30%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중고 의류 시장이다.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전 세계 중고 의류 시장은 2026년까지 127% 성장할 전망이다. 전체 의류 시장 성장세보다 3배 이상 빠른 속도다. 특히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 사이에서 중고 구매가 유행하자 일반 패션 업체들도 앞다퉈 중고 상품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미국 메이드웰은 작년 중고 거래 플랫폼 스레드업과 손잡고 뉴욕에 중고 의류 매장을 열었고, 리바이스는 고객이 입지 않는 제품을 수거, 세척·수선해 되팔고 있다. 국내에서도 코오롱FnC 등이 자사 중고 의류를 파는 서비스를 최근 시작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속가능 경영의 일환으로 시작했지만, 중고 시장 자체가 커지는 추세라 시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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