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김의균

미국 커피 회사 큐리그가 판매하는 일회용 캡슐 커피 ‘그린 마운틴’에는 삼각형과 함께 ‘재활용이 가능하다(recycle)’는 문구가 표면에 새겨져 있다. 이 회사는 “일회용 플라스틱 캡슐에 금속 뚜껑을 벗기고 커피 찌꺼기를 비우면 플라스틱으로 재활용될 수 있다”고 광고했다. 그러자 소비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재활용을 위해 일일이 커피 찌꺼기를 비우는 번거로운 작업을 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는 게 이유였다. 결국 조사에 나선 캐나다 공정거래청은 이 업체의 광고가 거짓이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결론 내리고 벌금 230만달러(약 30억원)를 부과했다.

◇ 친환경인 척 하지마… ‘녹색 위장술’과의 전쟁, 가짜 친환경으로 기업 이미지 세탁 ‘그린워싱’ 논란

최근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 같은 ‘그린 워싱(green washing)’ 논란이 빈발하고 있다.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green)’과 세탁을 뜻하는 ‘워싱(washing)’이 합쳐진 말로,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인 것처럼 홍보하는 등 거짓으로 기업 이미지를 각색하는 것을 뜻한다. ‘녹색 거짓말’ 또는 ‘위장 환경주의’라고도 한다. 기업들이 저마다 ‘친환경’을 외치는데도 기후 위기는 날로 악화되기만 하는 배경에도 그린 워싱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겉은 녹색, 속은 검은색

그린 워싱이라는 단어는 1983년 처음 등장했다. 미국의 환경운동가 제이 웨스터벨트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의 한 호텔에 머물렀는데, 거기서 메모 한 장을 발견했다. ‘환경보호를 위해 수건을 재사용해 달라’는 호텔 측 안내문과 함께 녹색 재활용 마크가 찍혀 있었다. 그는 “호텔이 실질적으로 환경보호를 하지도 않으면서 생색내기 위해 녹색 재활용 마크를 찍었다”고 비판하며 ‘그린 워싱’이란 단어를 만들었다.

그 이후 40년간 그린 워싱이란 단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어떤 행위가 그린 워싱에 해당하는지 법적 기준은 없다. 다만 2000년대 후반 캐나다의 친환경 관련 컨설팅 업체인 테라초이스가 “기업의 환경 관행이나 제품·서비스의 환경적 편익에 대해 소비자를 오도하는 행위”라는 정의와 함께 제시한 그린 워싱의 일곱 가지 기준이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된다.

가장 빈번한 유형은 ‘긍정적인 영향만 부각하는 대신 환경을 파괴하는 요인은 감추는 행위’다. 식음료 기업 네슬레는 “환경과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며 고객들로부터 다 쓴 알루미늄 커피 캡슐을 받아 재활용하는 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네슬레는 캡슐커피 생산을 위해 연간 8000톤에 달하는 알루미늄을 쓰고, 이 과정에서 연간 8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 같은 사실은 감추면서도 ‘재활용과 환경’을 강조하다 보니 그린 워싱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픽= 양진경

친환경 제품이라고 선전했지만 제대로 된 증거를 내놓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디다스의 경우 지난해 ‘스탠스미스’라는 신발을 내놨다가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다. 신발의 최소 50%가 재활용된다며 친환경 제품이라고 홍보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9월 프랑스광고윤리위원회는 “어떤 식으로 재활용되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유죄 평결을 내렸다.

애매모호하게 설명하는 행위도 그린 워싱으로 간주된다. 아모레퍼시픽 자회사인 이니스프리는 화장품 용기를 플라스틱이 아닌 종이로 만들었다고 선전했다. 포장지 겉면에는 ‘Hello, I’m Paper Bottle(안녕, 나는 종이 병이야)’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친환경이라고 홍보했던 종이 병이 플라스틱 용기에 종이를 덧씌운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결국 이 업체는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 밖에 유해 상품을 정당화하는 것도 그린 워싱으로 꼽힌다. 가령 담배 회사가 담배꽁초 줍기 캠페인을 벌이는 식의 행위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담배 자체가 환경 파괴를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인데, 담배 회사가 담배꽁초를 줍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환경보호라는 이미지를 주는 것은 전형적인 그린 워싱”이라고 말했다.

◇투자 업계도 그린 워싱 논란

투자 업계도 그린 워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친환경 기업에 투자한다며 녹색채권이나 녹색펀드 등을 우후죽순 만들어 돈을 끌어모았는데, 실제 투자한 기업을 들여다보니 친환경 기업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미국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 등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전 세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 수는 총 5932개로 2020년보다 1779개 늘었다. 1년 새 ESG 펀드로 투자금 1조921억달러(약 1337조원)가 유입됐다. 그런데 지난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전 세계 상위 20개의 ESG 펀드를 분석해 보니, 각각의 펀드는 평균적으로 화석연료 생산 업체 17곳에 투자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여섯 개 펀드는 미국 최대 정유사인 엑손에, 두 개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회사 아람코에 투자했다. 심지어 중국 석탄 채굴 회사 지분을 갖고 있는 펀드도 있었다. 환경 친화 기업에 투자한다며 돈을 끌어모았지만, 실제로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회사에 투자한 셈이다.

올해 들어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투자 업계의 그린 워싱 논란이 더 가열됐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ESG 펀드의 14%가 전쟁이 나기 전까지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 회사 가즈프롬과 석유회사 로스네프트 등에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뿐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관점에서도 ESG와는 거리가 먼 기업들이다. ESG 전문가인 폴 클레멘스 헌트는 “ESG 투자의 실패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투자 업계의 그린 워싱은 대부분 논란으로 그치지만, 때로는 도가 지나쳐 화를 자초하는 경우도 있다. 독일 자산운용사 DWS는 작년 3월 약 9000억유로(약 1193조원)에 달하는 전체 운용 자산 가운데 절반인 4590억유로(약 608조원)를 ESG 기준에 따라 투자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같은 수치가 허위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DWS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미국과 독일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되자 결국 최고경영자(CEO)가 사임했다.

미국 수탁은행 BNY멜런의 자회사인 ‘BNY멜런 투자자문’도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허위 ESG 투자 정보를 기재한 혐의 등으로 벌금 150만달러(약 18억원)를 부과받았다. SEC가 자문사의 그린 워싱을 규제한 첫 사례다. 이 회사는 고객사들에 제공한 서류에서 “펀드가 집행한 모든 투자가 ESG 품질 검토를 거쳤다”는 내용의 안내문 두 줄을 썼는데, 일부가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억울하다는 기업들

하지만 그린 워싱 논란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미래를 내다보고 펼치는 정책인데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부 문제만을 보고 그린 워싱이라고 낙인찍는다는 게 주된 이유다. 국내 한 정유 업체는 최근 친환경 사업을 위해 탄소 배출이 없는 원유를 도입하기로 했다가 그린 워싱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원유량이 전체 원유 가운데 비중이 극히 작아 생색내기라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친환경을 위해 시도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인데, 단순히 비중이 적다고 해서 그린 워싱이라고 매도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한국 스타벅스의 경우 지난해 본사 창립 50주년을 맞아 친환경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며 플라스틱 다회용 컵을 무료로 증정하는 행사를 열었다가 그린 워싱 비판을 받았다. 중고 시장에서 1만원에 팔릴 정도로 인기가 과열되자 오히려 플라스틱 소비를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컵이 재활용인지 모르고 버리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아 “플라스틱 쓰레기를 생산했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다회용 컵 사용을 위한 인식을 개선하고, 친환경 활동 동참을 위해 진행한 행사인데, 눈앞에 드러난 현상만으로 그린 워싱이라고 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유통업체는 비닐봉투 대신 에코백 들기를 홍보했다가 그린 워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플라스틱으로 비닐봉투를 만드는 것보다 목화로 에코백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 많다는 이유에서다. 영국 환경청은 에코백은 최소 131번을 들어야 환경에 이로운 ‘손익분기점’에 도달한다고 평가한다. 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캠페인을 벌이고 에코백 들기를 장려하면 향후 사람들이 에코백을 더 많이 들게 될 텐데, 당장 많이 들지 않는다고 그린 워싱이라고 하는 건 일종의 트집 잡기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일부 대기업은 그린 워싱 논란에서 시민단체 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불만을 터트린다. 미운털 박힌 기업을 공격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그린워싱이 남용된다는 것이다. 한 에너지 관련 대기업 관계자는 “일부 단체가 근거도 없이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우리 기술을 과소평가했다”며 “목소리가 크다고 진실이 아닌데, 그린 워싱이라고 몰아가니 무척 억울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법적 대응을 하려고 했지만, 더 시끄러워지는 것을 해당 단체들이 원할 거 같아서 포기했다”고 덧붙였다.

◇기준 있어도, 없어도 골치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그린 워싱 논란이 빈번해진 이면에는 기업과 시민단체 간에 오랜 기간 유지돼온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법무법인 지평의 송경훈 변호사는 “시민단체들은 비교적 오랜 기간 환경에 관심을 가져온 반면, 기업들은 친환경이나 ESG 활동을 소홀히 하면 투자도 받기 어려워지다 보니 최근에야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친환경을 강조하는 기업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시민단체의 감시 반경도 넓어지면서 그린 워싱 논란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이 친환경이고, 무엇이 그린 워싱인지 가르는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도 논란을 키우는 원인으로 꼽힌다. 삼일회계법인 ESG 플랫폼 소속 이진규 파트너는 “기업의 재무 정보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등 법제화된 공시 규정에 따라 부정과 오류로 인한 공시 위배 여부가 판단되지만, ESG 정보 공시는 관련 법률과 규정이 아직 법제화되지 않아 기업들이 ESG 정보를 완전하고 정확하게 공시하지 않는다”며 “이렇다 보니 유리한 것만 부각하고, 불리한 것은 감추는 일종의 ‘체리피킹(맛있는 것만 골라 먹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진짜 친환경’ 기준을 마련하려는 작업이 국내외에서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미 SEC는 그린 워싱을 방지하겠다며 투자자문사와 자산운용사 ESG 공시 표준화 등을 담은 규칙 개정안을 상정해 의견을 모으는 중이다. 개정안은 환경적인 요소가 포함된 ESG 중점 펀드에는 온실가스 배출량 관련 정보를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의 범위를 정한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 최종안을 마련해 지난 6일 통과시켰다. 기업과 투자자들이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지침서로도 활용되는 EU 차원의 공식 친환경 기준이다. 신용평가사 또는 지수 사업자들이 만들어 내놓는 ESG 평가 등급이나 ESG 지수도 친환경의 기준을 정하려는 시도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기준 자체에 대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EU가 택소노미에 가스와 원전을 포함하자 “천연가스가 온실가스 주 배출원 가운데 하나이고, 원전의 위험성과 폐기물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유럽사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S&P글로벌이 지난 5월 전기차 업체 테슬라를 저탄소 전략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S&P500 ESG 지수에서 제외해 논란이 일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석유 기업 엑손 모빌이 ESG 순위 10위권에 올라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ESG는 ‘사기(scam)’”라고 비난했다.

김창균 인하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친환경 활동을 과장해 홍보하는 것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면서도 “(기업이) 처음 친환경 경영을 펼치다 보면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고 서투를 수 있는데,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거나 작은 잘못 때문에 그린 워싱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린워싱(green washing)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으면서도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지칭하는 용어. ‘위장 환경주의’라고도 불린다. 미디어에서 백인이 분장을 통해 흑인 역할을 맡아 흑인의 존재감을 지우는 것을 ‘화이트워싱(white washing)’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 따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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