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에 신음하는 가운데 38년째 가격이 그대로인 상품이 있다. 미국 대형 유통 업체 코스트코에서 판매되는 1.5달러(약 1970원)짜리 순(純)쇠고기 핫도그 세트가 주인공이다. 길이 20㎝, 무게 113.4g인 핫도그와 탄산음료 한 컵(567g)을 제공하는 이 세트의 가격은 1985년 출시 이후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다. 한국 코스트코 매장에서도 핫도그 세트 가격은 2000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용량과 크기를 줄이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과 같은 꼼수도 코스트코 핫도그 세트에는 통하지 않는다.
핫도그 세트를 1.5달러에 팔면서 남는 게 있을까. 지난 수십년간 물가상승률을 감안했을 때 코스트코가 사실상 손해를 보면서 세트를 팔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핫도그용 소시지를 납품받던 코스트코는 어떻게든 원가를 낮추기 위해 2011년과 2018년 각각 캘리포니아와 일리노이에 핫도그 공장을 세웠지만 수익을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할 경우 이 세트가 적어도 현재 가격의 2.8배인 4.13달러(약 5420원)는 받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크레이그 젤리넥 코스트코 CEO(최고경영자)는 최근 CNBC에 “세트 가격을 올릴 계획이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젤리넥 CEO가 지난 2018년 코스트코 창업자인 짐 시네걸에게 “핫도그 세트 가격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다가 “핫도그 세트 가격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혼쭐 난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다고 코스트코가 푸드코트에서 판매하는 모든 메뉴의 가격을 묶어두는 것은 아니다. 코스트코는 이달 초 치킨베이크 가격을 2.99달러에서 3.99달러로, 탄산음료 가격을 59센트에서 69센트로 올렸다.
코스트코가 유독 핫도그 세트 가격만큼은 올리지 않는 이유는 ‘1.5달러 핫도그 세트’가 회사의 상징과도 같은 상품이기 때문이다. 코스트코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핫도그 세트 가격이 수십년간 고정돼 있다는 사실에 큰 호감을 느낀다. 핫도그 세트가 생각나 매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다른 물품 구매를 유도하는 ‘미끼’ 역할도 톡톡히 한다. 코스트코 푸드코트가 매장 입구가 아니라 쇼핑을 마치고 나가야 이용할 수 있는 출구 쪽에 배치돼 있는 이유다. CNN은 “코스트코는 또 다른 인기 상품인 ‘로티세리 치킨(전기통닭구이)’도 13년째 가격을 올리지 않고 4.99달러에 판매한다”며 “핫도그와 로티세리 치킨은 코스트코에 돈을 벌어다 주는 상품이 아니라 돈을 벌게 도와주는 상품”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에는 이처럼 회사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인식돼 가격이 요지부동인 상품들이 여럿 있다. 미국 유명 음료회사인 애리조나베버리지가 30년 넘게 99센트에 판매하고 있는 23온스(약 652g)짜리 아이스티 캔음료가 대표적이다. 대형마트인 샘스클럽과 BJ홀세일클럽도 로티세리치킨 가격을 10년 넘게 4.99달러로 고수하고 있다.
WEEKLY BIZ Newsletter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