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명품 거래 사이트 스탁엑스(StockX)에 나온 샤넬 플랩백. 주식처럼 매도가(Sell)와 매수가(Buy)를 제시해 가격이 일치하면 거래가 이뤄진다. 최근 한국에서 특히 젊은 층의 명품 구매가 크게 늘어난 것은 중고 거래 시장의 성장과 깊은 연관이 있다. /스탁엑스

게임을 구매할 때 꼭 실물 디스크로만 구매하는 친구가 있다. 지금은 플레이스테이션이든 엑스박스든 모두 온라인으로 게임을 구매하고 다운받을 수 있는 시대다. 다운로드판은 실물 디스크에 비해 가격도 저렴한 데다 실물처럼 배송 기간도 없어서 사자마자 바로 플레이가 가능하다. 그런데도 굳이 실물을 구매하는 이 친구의 심리는 뭘까. 나중에 물어보니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실물 디스크는 게임을 구매한 뒤에 중고로 팔 수 있지만, 다운로드판은 팔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즉, 구매 가격으로만 보자면 다운로드판이 더 저렴하지만 실물은 중고로 팔 수 있으니 실질적으로 들어간 돈은 더 적다는 이야기다.

이베이부터 당근마켓까지 수많은 중고 거래 플랫폼들이 등장하면서 상품은 더 이상 소비자에게 판매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거래가 계속 이어진다. 중고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한정판 제품 같은 인기 상품을 사고팔아 수익을 올리는 리셀러도 크게 늘어났다.

중고 거래 활성화는 소비자에게 여러 이점을 안겨준다. 그중 하나가 소비자의 실질 구매 가격을 낮춰주는 효과다. 앞서 언급한 예처럼 중고 판매 시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상품의 구매에 들어가는 비용은 ‘구매가-중고 판매가’가 된다. 이 때문에 중고 판매가가 충분히 높게 형성되는 경우라면 소비자 입장에서 상품의 가격은 액면가보다 매우 낮은 저렴한 가격이 된다. 예를 들어 명품 브랜드들은 중고 시장이 매우 발달해 있는데, 고급 브랜드의 경우 상품 가격의 80% 이상에 거래되는 경우가 흔하다. 1000만원짜리 가방의 중고가가 8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실질 구매 가격은 200만원으로 액면가의 5분의 1에 불과한 셈이다.

중고 거래 활성화에 따른 실질 구매 가격 하락 효과는 소비자가 전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는 유인이 된다. 액면가 기준으로 보자면 소득에 비해 과도한 소비처럼 보이더라도 중고 가격이 충분히 지지되는 한 실질 구매가는 낮게 유지되므로 그러한 지출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한 제품을 구매해서 오래 쓰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한이 지난 후에 바꾸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된다. 이는 전보다 더 짧은 기간 동안 더 많은 상품을 소비하면서 소비 주기가 짧아짐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고 거래가 활성화되면 기업의 상품 판매 증진에 도움이 된다. 중고 가격 방어가 잘되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은 경쟁사보다 더 높게 소비자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힘도 생긴다. 이 때문에 자동차나 명품 제조 회사들은 중고 시장의 가격 변동에 많은 관심을 쏟는다. 아예 애플처럼 중고 판매자들을 공식적으로 관리하거나, 현대차처럼 중고 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기업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중고 거래는 단순히 헌 물건을 사고파는 아낌과 나눔의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구매를 촉진하는 입구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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