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로 많은 주택에서 침수나 누수가 발생하는 일이 있었다. 이번에 한강의 본류와 주변 지형을 바꾼 을축년 대홍수 이야기가 나올 만큼 단기간에 많은 비가 내렸기에 주택이 침수되거나 누수가 발생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다. 그런데 일부 아파트에서 이런 피해가 발생하자 특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피해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주민자치회에서 함구령을 내린 것이다. 이유는 결국 ‘집값’이다.
침수나 누수가 발생한 집은 비에 취약하다는 것이고 그만큼 아파트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아파트의 소유자들은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는 일을 용납하지 못한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거주민들의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지위재의 특성도 가지고 있다. 아파트의 가격은 그 지위를 드러내는 숫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아파트 가격 하락은 단순한 자산 가치의 하락이 아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사회경제적 위치의 추락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 주거 공간이 물이 샌다거나 잠긴다는 사실은 노출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 된다. 고학력 엘리트들이 사기 피해를 당하더라도 피해 사실을 대외적으로 드러내길 꺼리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지위재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지만, 이러한 아파트의 물신화가 확산되면 될수록 장기적으로 주거의 질이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판매자가 상품의 결함을 알고 있지만 이를 대외적으로 숨기고 거래하려는 시장을 경제학에서 레몬 시장이라고 한다. 여기서 레몬은 ‘빛 좋은 개살구’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자신이 소유한 아파트의 결함을 알고는 있지만 집값 때문에 대외적으로 쉬쉬한다면 이 결함은 소유자만이 알고 있는 정보가 된다. 이른바 정보 비대칭이 발생하는 것이다. 매매나 전세를 하려는 사람은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실제 가치보다 높은 비용을 치르게 된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고 많은 사람이 경험한다면 주택 시장에서 신뢰도는 하락하게 되고 그만큼 거래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아파트 소유자들이 아파트 자체의 결함을 쉬쉬하는 현상이 가속화될 경우 시공사 입장에서는 잘 지어야 할 이유가 줄어들게 된다. 이는 시장에 그만큼 결함 있는 아파트가 더 많이 공급될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또 이를 소유자들이 쉬쉬한다면 거래의 신뢰도는 하락하고 아파트 시장은 점점 레몬화로 치닫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하고 소비하는 물건을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한다. 하지만 자신을 표현하고 과시하는 수단을 넘어 아파트를 물신화하고 애써 결함까지 감추기 위해 애를 쓴다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정보 비대칭이 시장의 신뢰를 저하시킨다. 결국 그 피해는 이를 소유하고 소비하는 사람들, 그리고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것이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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