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분기 세계 증시는 미 연준(Fed)을 필두로 한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작년 주가 상승분을 거의 다 반납했다. 불확실성과 비관론이 최고조에 달했던 이때, 1억달러(약 1200억원) 이상을 굴리는 ‘큰손’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미국 증시에서 활동하는 기관투자자 약 900곳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분기마다 제출하는 투자 보고서(Form 13F)를 WEEKLY BIZ가 분석했다.

◇저가 매수 나선 투자 구루

헤지펀드 업계 전설로 통하는 조지 소로스는 지난 분기를 성장주 저가 매수(buy the dip) 기회로 봤다.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는 아마존·구글·테슬라·세일즈포스·퀄컴 등 금리 인상 여파로 주가가 크게 추락한 기술주 종목을 쓸어담았다. 아마존은 59만주를 더 사들여 보유 주식수를 200만주 이상으로 늘렸다. 시장가치로 치면 총 2억1290만달러(약 2823억원) 상당에 달한다. 구글은 10만180주를 추가 매입했고, 성장주의 대명사 격인 테슬라도 2012만달러를 들여 2만9883주를 포트폴리오에 새로 편입시켰다. 블룸버그통신은 “소로스가 빅테크(거대 기술기업)를 재장전(reloads)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소로스는 지난해 4분기부터 대량 매수해온 ‘제2의 테슬라’ 리비안 오토모티브는 200만주 이상 대거 처분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역시 이번 약세장에서 손절보단 저가 매수 전략을 유지했다.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2분기 순매수한 규모는 38억달러(약 5조원)에 달한다.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높은 비율(39.81%)을 차지하는 애플도 387만8909주 추가 매입했다. 애플 주가가 20% 넘게 하락하는 걸 매수 기회로 본 것이다. 에너지 기업에 대한 투자도 적극 늘렸다. 버크셔 해서웨이 포트폴리오에서 에너지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작년 말만 해도 1.36%에 불과했지만, 6월 30일에는 10.9%로 늘어났다. 지난 1분기 석유기업 옥시덴털 페트롤리움 지분을 대거 사들인 데 이어 2분기에는 미국 대표 석유기업 셰브론 주식 226만2032주를 추가로 사들였기 때문이다. 셰브론의 경우 버핏의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7.61%를 차지하는데, 애플과 뱅크오브아메리카(10.23%), 코카콜라(8.19%)에 이어 넷째로 높은 비율이다.

버핏의 에너지 베팅은 그대로 적중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유가는 한때 배럴당 120달러 넘게 치솟았고, 거대 석유기업들은 상반기 내내 역대급 실적 잔치를 벌였다. 셰브론만 해도 2분기 순이익이 116억2000만달러(약 15조4232억원)로 작년 동기(30억8000만달러) 대비 4배에 가까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3분기 들어 유가가 하락세에 접어들었지만 버핏은 개의치 않는 듯한 모습이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지난달 옥시덴털 지분을 50%까지 매수할 수 있게 해달라고 미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에 신청해 승인을 얻었다. 그레고리 워런 모닝스타 리서치서비스 애널리스트는 “에너지 시장 변동성이 크다 보니 옥시덴털 주식에 투자해서 벌어들이는 이익보다 이 회사를 자회사로 거느리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이라며 버크셔가 일단 50%까지 지분을 늘린 뒤 아주 더딘 속도로 회사 전체를 인수해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교도소 주식만 남긴 공매도 전설

‘분산 투자의 귀재’ 레이 달리오가 운용하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레이 달리오는 중국 강세론자로 꼽히는 인물이지만 알리바바·JD닷컴·디디글로벌·빌리빌리·넷이즈 등 지난 1분기 보유하고 있던 중국 기술주를 전량 매도했다. 투자 전문 매체 배런스는 5개 종목에 대한 브리지워터의 주식 매도 규모가 10억달러(약 1조3273억원) 이상이라고 추정했다. 지난 1분기 지분을 대폭 늘렸던 신흥국 지수 추종 ETF(상장지수펀드)인 ‘아이셰어스 MSCI 이머징 마켓 ETF(EEM)’와 ‘뱅가드 FTSE 이머징 마켓 ETF(VWO)’, ‘아이셰어스 코어 MSCI 이머징 마켓 ETF(IEMG)’도 대거 팔아 비중을 낮췄다. 특히 EEM 같은 경우 보유량의 92%(1818만6473주)를 매도했다.

브리지워터의 포트폴리오 상위 5개 종목을 살펴보면 1·2·5위가 각각 P&G(프록터앤드갬블·4.11%), 존슨앤드존슨(3.26%), 코카콜라(2.88%)로, 여전히 인플레에 강한 필수 소비재로 구성돼 있다. 이와 함께 구글 94만8500주와 메타 57만5748주를 매입하는 등 주요 기술기업에 대한 투자도 늘렸다. 레이 달리오는 지난 5월 초만 해도 “미국의 기술주 거품은 터졌지만, 아직 주식을 사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고 했는데, 이후 주가가 더 떨어지자 저가 매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표 기술주로 구성된 나스닥 100 지수는 6월 중순 저점을 찍은 이후 20% 넘게 상승했다.

저가 매수는 앞으로 시장이 반등할 것이라고 보기에 취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모두가 밝은 전망을 가진 건 아니다.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견해 큰돈을 번 ‘공매도의 달인’ 마이클 버리는 보유했던 주식을 전량 팔아 다른 큰손들과 대조적인 행보를 보였다. 버리가 운영하는 사이언 애셋 매니지먼트는 지난 2분기 메타(페이스북)와 애플, 구글은 물론 완성차업체 스텔란티스와 결제 기업 글로벌페이먼츠 등 보유하고 있던 12개 종목을 모두 처분했다. 매도 규모는 2억1379만달러에 이른다.

그는 1분기 매수했던 애플 풋옵션(주가가 하락할 때 수익을 내는 파생상품) 20만6000주도 전량 매도했다. 2분기 애플 주가가 20%가량 하락한 것을 감안할 때 수백만달러의 수익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에선 버리의 포트폴리오를 두고 인플레 장기화에 대비해 관망세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한다. 그는 최근 트위터에 “소비자들은 인플레이션을 맞아 지출을 줄이기보다 신용을 기록적인 수준으로 늘렸다”며 “코로나19 때 마구 뿌린 현금은 사람들에게 소비를 가르쳤고 그것은 중독성이 있다. 겨울이 오고 있다”고 적었다. 보유 주식을 대부분 청산한 버리는 포트폴리오에 지오그룹 단 한 종목만 남겨놨다. 북미, 호주, 영국 등에서 민영 교도소와 정신병원을 운영하는 업체로, 버리는 2분기에 이 회사 주식 50만1360주를 330만달러(약 44억원)에 매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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