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드레스덴의 관광명소인 프라우엔 교회 평소 모습(왼쪽 사진)과 최근 모습. 평소 환하게 불을 밝히던 이 교회는 최근 에너지 절약을 위해 야간에도 조명을 켜지 않는다. /로이터연합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진 것을 보면 여름도 막바지로 향하는 듯합니다. 돌이켜 보면 이번 여름은 그다지 힘들지 않게 난 편입니다. 지하철과 버스, 회사 사무실과 식당, 커피숍까지 어딜 가나 빵빵하게 틀어둔 에어컨 덕에 늘 쾌적했습니다.

이번 주 커버 스토리로 실은 ‘유럽의 에너지 위기’를 준비하면서 마음껏 전기를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새삼 실감합니다. 폭염으로 수천 명이 사망한 스페인에선 상업용 건물 온도를 27도 이상으로 유지하라는 정부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에어컨을 끄고 샤워를 5분만 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독일 뮌헨에선 신호등에 쓰는 전기까지 쥐어짜는 형편입니다. 모두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통제해 생긴 일입니다.

더 큰 문제는 몇 달 앞으로 다가온 겨울입니다. 러시아가 가스관을 끊고 혹한까지 닥친다면 유럽인들은 말 그대로 동사(凍死) 위기에 내몰릴 판국입니다. 주택용 난방 연료를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가스 배급제를 실시하거나 일부 산업 시설 가동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유럽 사람들이 이런 처지에 몰린 건 결국 에너지 주권을 남의 손에 맡겼기 때문입니다. 이미 10여 년 전 비슷한 위기를 겪었지만, 유럽의 맹주인 독일은 도리어 러시아에서 더 많은 가스를 수입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러시아와 유럽이 경제적으로 더 밀착되면 평화가 정착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죠. 이런 믿음이 안이하고 순진했다는 게 드러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말 ‘국민 엄마’ 칭송을 받으며 퇴임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러시아 유화 정책을 주도한 대가로 요즘 독일 언론으로부터 “끔찍한 실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마음이 쓰리겠지만, 추위에 떨며 겨울을 나야 하는 국민들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죠. 에너지 자급률이 세계 최하위권인 우리나라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다가오는 유럽의 겨울이 부디 잔인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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