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값이 오른다”는 말이 나올 만큼 품목을 가리지 않고 기업들의 가격 인상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제품 가격을 올릴 때 기업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은 ‘전격전’이다. 소비자들에게 사전 통보 없이 기습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것이다.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는 별도 공지 없이 지난 1년 새 전기차 ‘모델3′ 가격을 4차례, ‘모델Y’ 가격은 7차례 올렸다. 현대차 역시 최근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모델인 제네시스 GV70의 2022년형 연식 변경 모델을 출시하면서 가격을 113만원 이상 올렸지만, 평소와 달리 보도자료조차 내지 않았다.
소리 소문 없이 제품 용량을 줄이는 꼼수(슈링크플레이션)도 횡행한다. 미국 도미노피자는 치킨윙 개수를 10조각에서 8조각으로 줄였고, 롯데제과는 작년 9월 카스타드 대용량 제품 개수를 12개에서 10개로, 꼬깔콘 과자 중량을 72g에서 67g으로 축소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솔직함’으로 정면 돌파를 택한 기업들도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본사를 둔 가구 브랜드 헴(Hem)은 올여름 전 세계 고객들에게 이메일 한 통을 보냈다. “글로벌 제조 및 배송 비용 증가로 인해 9월 1일부터 부득이하게 제품 가격을 인상한다”며 “대신 8월 22~28일간 모든 제품 20~40% 할인 행사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올 초 글로벌 공급망 대란이 한창일 때 유아용 분유 회사인 바비(Bobbie) 역시 분유 가격을 개당 2달러씩 인상한다는 사실과 함께 정기구독 서비스 활용 시 인상 전 가격으로 제품을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고객들에게 이메일로 알렸다.
무알코올 식전주를 만드는 기아(Ghia)도 최고경영자(CEO) 명의로 지난 2월 가격 인상을 알리는 이메일을 보냈다. 멜라니 마사린 CEO는 “약 20번 정도 다시 썼다”며 “가격 인상이 기업의 탐욕이나 기회주의로 느껴지지 않게끔 잘 설명하는 게 중요했다”고 했다. 이 회사는 가격 인상 이후에도 매출을 꾸준히 유지 중이다.
조용히 가격을 올리는 것과 솔직하게 가격 인상을 털어놓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현명한 방법일까. 전문가들은 달라진 소비 환경을 고려할 때 후자가 더 나은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마크 코헨 미국 컬럼비아대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요즘 소매업체는 미디어 광고와 소셜 미디어, 개인화된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충성 고객을 확보한다”며 “이런 마케팅은 소비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대가로 사업 관행에 대한 더 높은 투명성을 요구 받는다”고 말했다. 마케팅에서 브랜드 이미지와 사회적 가치가 중시되면서 슈링크플레이션 같은 꼼수의 위험성이 더욱 커졌다는 얘기다.
소비재 전문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닐슨IQ 역시 고객 기업들에 “디지털 환경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입하지 않고도 과거보다 훨씬 상세하게 제품을 파악할 수 있다”며 “가격, 원료, 품질, 생산 공정 등 투명성은 핵심 제품 속성을 통해 초기 구축되었던 신뢰와 브랜드 매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다만 가격 인상의 불가피성을 소비자에게 설득하려면 세심하게 문구를 작성해야 한다. 뉴욕타임스는 “가격 인상을 알리는 이메일은 모두 공감과 사과라는 비슷한 어조를 가졌고, 투명성과 공동체·가치·고품질·임금 지급 약속 등을 많이 언급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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