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재택근무 조건으로 스타트업에 취업한 이모(27)씨는 입사 두 달여 만에 자발적으로 사무실 출근을 시작했다. 이씨는 “영업직이라는 직무 특성상 발로 뛰며 사람 만나는 것이 중요한데 인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노하우가 부족해 성과가 잘 나지 않았다”며 “집에서 일하는 것이 편하긴 하지만 사무실에 나와 선배들 옆에서 일하며 수시로 조언을 구하는 게 업무 역량 향상에는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일상으로 자리 잡았지만 일각에서는 ‘재택근무 회의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회사에 나와야 동료들과 원활한 의견 교환 및 소통이 가능하고, 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소 의외인 점은 ‘회사 출근 선호족(族)’ 중에는 이씨와 같은 Z세대(1990년대 중후반~2010년대 초반생)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직장 상사의 눈을 피해 집이나 카페 등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것을 훨씬 선호할 줄 알았던 Z세대 직장인들이 회사에 출근 도장을 찍고 싶어하는 이유는 뭘까.

일러스트=김영석

◇재택근무 선호도, Z세대가 가장 낮아

재택근무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보통 기업 경영진 쪽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집에 있으면 업무에 임하는 자세가 해이해질 수밖에 없고, 성과도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경영진이 회사 출근을 요구하는 주된 근거였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는 “출근하기 싫으면 회사를 나가라”고 했고,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집에서 일하는 것의 장점을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대다수 직장인은 이러한 시각을 ‘꼰대적 사고’로 규정하고, 재택근무가 “출·퇴근 시간을 아끼고, 업무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 업체 퓨리서치가 올해 초 재택근무 중인 현지 직장인 59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재택근무자의 78%가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재택근무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 1년 전(64%)에 비해 14%포인트나 늘어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재택근무에 대한 선호도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니컬러스 블룸 스탠퍼드대 교수 등이 지난해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전면 재택근무를 희망하는 비율은 50~64세(41%)에서 가장 높았다. 40대(33%)와 30대(29%)가 뒤를 이었고, 20대(24%)에서 전면 재택근무를 희망하는 비율이 가장 낮았다. 최근 미 경제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이 설문 결과를 소개하며 “젊은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좋아할 것이라는 게 사회 통념이지만 실제로는 이들이 사무실에서 시간 보내기를 가장 희망하는 집단”이라고 전했다. 반면 40~50대 직장인은 회사와 거리가 먼 도심 외곽에 살거나 자녀 보육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전면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자율성보다 일 배우는 게 우선”

Z세대 직장인들이 재택근무에 생각보다 미온적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전문성 및 커리어 개발, 열악한 거주지 근무 환경 등과 연결지어 설명한다. Z세대는 사회에 첫발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 선배들로부터 실전 노하우와 업무 관련 기본 지식들을 빠르게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재택근무에서는 교육과 훈련이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지난 5월부터 유통 관련 스타트업에서 일을 시작한 김모(26)씨는 “회사에 나올 필요 없다고 해서 집에서 일했는데 업무 습득 면에서 훨씬 비효율적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트렌드 조사 업체 제너레이션랩이 지난해 미국 대학 재학생 및 졸업생 5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10명 중 4명이 “전면 사무실 근무를 원한다”고 답했다. 전면 재택근무를 원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19%에 그쳤다. 전면 사무실 근무를 원한다고 답한 사람 중 74%(중복 응답)는 재택근무 시 우려스러운 점으로 ‘제한된 커뮤니티 참여 기회’를 들었다. ‘멘토링을 받지 못하는 것’을 단점으로 꼽은 이들도 41%에 달했다. 지난해 미국에 본사를 둔 IT 업체의 엔지니어로 취업해 전면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A씨는 “줌(ZOOM), 이메일, 메신저 등 각종 온라인 도구를 활용하지만 의사소통에 큰 한계가 있다”며 “재택근무를 하면 사무실에서 일할 때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묻고,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고 말했다.

Z세대가 재택근무의 자유로움 못지않게 업무 역량 증진을 통한 자기 개발에 큰 가중치를 둔다는 것은 설문 결과로도 확인된다. 소셜미디어인 링크드인에 따르면 “자신의 커리어에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임금 5% 삭감을 수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Z세대는 10명 중 4명이 “그렇다”고 답해 전체 평균 응답률(26%)의 1.5배가 넘었다. 이 밖에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 좁은 공간에 혼자 사는 경우가 많은 Z세대의 주거 특성상 재택근무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사무실 출근을 선호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재택도 사무실도 필요한 Z세대

그렇다고 해서 Z세대가 재택근무를 꺼리는 것은 아니다. Z세대 직장인 중에는 쾌적한 업무 환경과 커리어 개발을 위해 사무실 출근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1년 내내 그렇게 하는 것에는 선(線)을 긋는 이들이 많다. 외국계 기업에서 마케팅 관련 업무를 하는 이모(29)씨는 주 3일 사무실, 주 2일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회사가 전면 사무실 출근으로의 전환을 검토 중이어서 최근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 이씨는 “2년 넘게 한 재택근무에 익숙해졌고, 자유로운 공간에서 혼자 일할 때 능률이 극대화되는 업무도 있어서 주 5일 사무실 출근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8~34세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사무실 출근이 의무화될 경우 퇴사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기업이 Z세대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려면 결국 근무 장소, 시간 등을 상당 부분 자율에 맡기는 ‘유연한 하이브리드 근무제’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조언한다. 사무실 출근을 어느 정도 강제하려면 여러 지역에 분산 오피스를 운영하거나 사무실에 나오는 요일을 알아서 정할 수 있는 근무 체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숙명여대 경영학부 서용구 교수는 “밀레니얼과 Z세대 대상 각종 설문조사를 보면 재택과 사무실 출근이 적당하게 섞인 하이브리드 근무를 가장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두 가지 시스템을 모두 운영해야 하고, 세심한 성과 평가까지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인적 자원 관리가 이전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으로 변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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