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최모(35)씨는 지난달 서울의 한 고깃집에 들렀다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상추, 깻잎, 고추 등이 담긴 채소 바구니 리필을 요청했는데 종업원으로부터 “1500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는 안내를 받은 것이다. 최씨는 “평소 당연히 공짜로 여기던 쌈 채소를 따로 돈을 내고 먹으려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차마 리필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서 평소 공짜로 제공되던 상품이나 서비스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원가 상승 압박에 시달리는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야박하다’는 원성을 감수하고서라도 비용 절감에 나선 것이다. ‘무료 서비스 중단’을 가장 쉽게 체감할 수 있는 곳은 식당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밑반찬 리필을 요구했다가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글이 최근 부쩍 많이 올라온다. 쌈 채소의 경우, 임대료가 비싼 서울·수도권의 고깃집 상당수가 리필 유료화를 이미 도입한 상태다. 다른 밑반찬도 종류에 따라 500원에서 1000원가량 리필 비용을 받는 식당이 늘고 있다. 직장인 양모(33)씨는 “자주 가던 한식당이 ‘간장게장’ 밑반찬 무한 리필을 최근 1회로 제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고객 확보 차원에서 손실을 감수하고 제공하던 혜택이나 서비스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포장 주문 시 중개 수수료를 받지 않던 음식 배달 플랫폼들은 10월부터 해당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가 고객 반발에 부딪혀 수수료 부과 시점을 내년으로 연기했다. 해외 직구 결제액 감소와 수수료 규제 등으로 난관에 봉착한 카드 업계도 신용카드 혜택을 앞다퉈 줄이고 있다. 메리어트·쉐라톤·앰배서더 등 주요 호텔들도 멤버십에 포함된 식음료·레스토랑 할인 혜택을 없애거나 무료 숙박권을 폐지하는 등의 조치에 나섰다.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신음하는 미국에서도 공짜였던 서비스의 유료화 바람이 거세다. 주요 항공사들은 비상구, 복도 등 인기 좌석 예약에 100달러가량의 추가 요금을 ‘편의 비용(convenience fee)’이란 명목으로 부과하기 시작했다. 호텔들은 투숙객에게 주차비나 수영장·사우나 사용료를 따로 받고 있으며, 일부 영화관은 막 개봉한 신작 영화에 1~1.5달러 추가 관람료를 얹었다. 미국 영화관 체인 ‘시네마크’의 멀리사 토머스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영화관의 위치, 상영 시간대, 상영 시기 등에 따라 가격을 차등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공짜 서비스’의 폐지 및 유료화 전환은 요즘 유행하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의 한 유형이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제품의 용량을 줄이는 것으로, 기업들의 우회적인 가격 인상 기법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본 제품 및 서비스 가격은 그대로 둔 채 기존에 포함돼 있던 서비스를 줄이거나 없앤다는 차원에서 최근의 유료화 바람도 슈링크플레이션과 구조가 같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출 부담이 늘어나는 셈이어서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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