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감소와 규제 강화 등으로 코너에 몰린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경제학자들을 ‘경영 책사(策士)’로 대거 채용하며 위기 타개에 나서고 있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경영 전략을 짜거나 가격 정책 등을 수립하고, 당국의 규제에 맞설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경제학 지식이 갈수록 긴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미국 내 10개 주요 경제학 대학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취업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경제학 박사 학위 취득자 7명 중 1명이 IT 기업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명 중 1명꼴이었던 2018년과 비교하면 4년 만에 3배 가까이로 늘었다. 아마존은 빅테크 중에서도 경제학자들의 가장 큰 고용주로 꼽힌다. 아마존에는 400여 명의 경제학자가 정규직으로 근무해 웬만한 대학이나 연구기관 규모를 능가한다. 차량 공유 업체 우버도 경제학자들을 대거 끌어모으고 있다. 지난해에는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과정 졸업생 중 5분의 1을 싹쓸이해갔다.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른 주요 IT 기업들도 유력 경제학자 영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빅테크들이 경제학자 구하기에 나선 것은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 등에 따른 경기 둔화로 매출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돌파구 마련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 게임이론 등 다양한 분석 틀을 통해 혁신적 사업 모델을 발굴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가격 정책을 수립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실제로 미시경제학의 대가인 할 배리안 전(前)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반 구글에 영입돼 구글의 광고 경쟁입찰 시스템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마크 저커버그와 함께 페이스북을 ‘소셜미디어 제국’으로 만든 셰릴 샌드버그 역시 하버드대 경제학과 출신의 촉망받는 경제학도였다. 샌드버그는 구글을 거쳐 창업 초기 페이스북에 2007년 합류한 뒤, 경제학 이론에 기반한 수익 모델을 개발해 페이스북을 구글과 함께 전 세계 디지털 광고 시장을 양분하는 거대 플랫폼으로 키웠다. 가격 이론 분야에서 유명한 글렌 웨일 전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도 2019년 마이크로소프트로 자리를 옮겨 경영진이 경제학적 관점에서 IT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돕고 있다.
이 밖에도 빅테크 기업들은 독과점이나 개인 정보 수집 논란 등으로 높아진 규제 압력에 맞서기 위해 빅테크가 사회적 편익을 늘렸다는 연구를 경제학자들에게 맡기고 있다. 미국 IT 매체 쿼츠에 따르면 우버의 경제학자들은 전 세계에서 수집된 차량 주행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 각종 대관(對官)용 보고서를 만든다. 이경전 경희대 교수는 “합리적 의사 결정에 유용한 경제학적 방법론이 무궁무진하기에 빅테크들은 경제 전문가들을 찾을 수밖에 없다”며 “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디지털 이해도가 높은 경제학자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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