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규제는 시장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이어야 하며, 기본적으로 시장 자율에 맡겨두어야 한다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개념이다. 이런 개념이 근대 서유럽 자유주의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자본가(capitalist) 또는 자본주의(capitalism)라는 용어는 17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서 탄생했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이론적·학문적 근거가 마련되기 시작한 것도 근세 유럽에서다. 하지만 정부가 간섭할 때보다 그냥 내버려둘 때 경제가 잘 굴러간다는 개념은 기원전 100년 경 중국에서 쓰여진 유명한 역사책인 사마천 사기에 이미 등장한다.
사마천 사기에는 왕과 제후 외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 열전(列傳)이 있다. 모두 70개의 열전이 있는데 그중 69번째가 화식열전(貨殖列傳)이다. 재화를 불린 사람, 부자들의 열전이다. 이 화식열전에 보면 사마천이 경제를 보는 기본적인 시각이 다음과 같은 구절을 통해 나타나 있다.
‘농부는 먹을 것을 생산하고 어부와 사냥꾼도 먹거리를 공급한다. 기술자들은 물건을 만들고 상인들은 이것을 유통시킨다. 이러한 일이 어찌 법령이나 정부의 지도, 강요에 의해 이루어지겠는가.’
‘경제는 물이 낮은 곳으로 저절로 흐르는 것과 같다. (국가가) 물건을 만들어내려 밤낮으로 애쓰지 않아도 백성들이 스스로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이고 이익을 위해 떠난다.’
‘보이지 않는 손’, ‘사익 추구’ 같은 현대 경제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을 뿐, 시장경제의 기본적 개념을 말하고 있다. 부자, 상인에 대한 인식도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동양적 사고방식과 다르다.
‘부자들은 봉토를 가진 것도 아니고, 법령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나쁜 짓을 해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사물의 이치를 고려해서 행동하고 시세 변화를 살펴 이익을 얻는다.’
‘아껴 쓰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살아가는 바른 길이다. 하지만 부자가 된 사람들은 항상 기이한 기회를 활용한다.’
‘재물을 얻는 데는 농업이 공업만 못하고 공업이 상업만 못하다. 비단에 수를 놓는 것이 시장에서 장사하는 것만 못하다.’
사마천 사기는 중국 최초의 공식 역사서라 할 수 있다. 이런 역사서에 부자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목차로 따로 구분돼 포함되었다는 건 특기할 만하다. 이는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대표되는 동양적 사고방식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상인을 천시하고 부에 대해 부정적인 관념을 가지는 건 유교이다. 백성들이 천박한 재물에 휘둘리지 않도록 정부가 경제를 강력히 통제해야 한다는 발상도 유교에서 중시된다.
중국은 한무제(기원전 141~기원전 87) 이후 유교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인다. 사마천 사기의 화식열전은 동양 사회에 유교가 뿌리를 내리기 전에는 사람들이 현대와 같이 시장경제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상거래와 부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단지 서구에서 수입된 근대의 한 사고방식으로만 보아서는 곤란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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