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착륙(hard landing)을 피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내년 심한 경기침체가 올 확률은 50% 이상이라고 봅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세 번째 자이언트 스텝(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은 지난달 22일 한국을 찾은 미국의 두 거시경제학자는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발레리 래미(Ramey·62) UC샌디에이고 석좌교수와 유리 고로드니첸코(Gorodnichenko·43) UC버클리 석좌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 2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대우관에서 만난 발레리 래미 UC샌디에이고 석좌교수(위)와 유리 고로드니첸코 UC버클리 석좌교수(아래). 두 거시경제학자는 연세대 조락교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오종찬 기자

래미 교수는 미국의 경기침체 여부를 판단해 공식 선언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 경기순환결정위원회에 속한 8명의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재정지출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전 세계 경제 학술지 중 가장 권위가 높은 전미경제학회지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의 공동 편집자를 역임하기도 했다. 래미 교수는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을 유일한 방법은 성장 침체(growth recession)를 일으키는 것”이라며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출신인 고로드니첸코 교수는 21년 전 미국으로 넘어와 박사 학위를 딴 뒤 인플레이션과 통화정책 연구로 주목받는 젊은 학자다. 프랑스 중앙은행이 주는 세계의 젊은 금융경제학상을 받았고, 2020년 미 경제학논문문학회(RePEc) 선정 ‘세계 최고의 젊은 경제학자’에도 뽑혔다. 그는 “미국의 경기침체는 데이터상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유럽은 이미 경기침체 국면인 것 같다”며 “올해 말까지 유럽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은 80~90%로 본다”고 했다.

연세대 조락교경제학상을 수상하기 위해 최근 한국을 찾은 두 명의 거시경제 전문가에게 WEEKLY BIZ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은 세계 경제 전망에 대해 물었다. 최상엽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인터뷰를 도왔다.

◇연준은 경기침체 신경 안 써

고로드니첸코 교수는 연준이 경기침체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단언했다. 지난 8월 세계 중앙은행장들의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인 ‘잭슨홀 미팅’에 참석한 그는 “내가 ‘경기침체를 일으키지 않고 인플레를 잡을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자 그들(연준)은 ‘상관없다. 인플레만 잡으면 된다’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며 “경착륙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만 래미 교수는 당장 경기침체가 시작됐다고 보긴 이르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올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2분기 연속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이미 경기침체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그는 “NBER은 GDP 외에 GDI(국내총소득)도 같이 살피고 있고, 고용과 실업 같은 노동시장 지표와 소비 지출, 개인 가처분 소득 등 여러 지표를 가지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결론을 내린다”며 “특히 GDP 데이터는 항상 나중에 수정되는데 몇 년 후 데이터 수정으로 경기침체가 아닌 걸로 밝혀진 적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월스트리트저널은 GDI로 보면 최근 미국 경제가 경기후퇴가 아닌 경기정체 상태에 가깝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 상반기 GDI가 전년 대비 1.6% 성장했기 때문이다.

◇단기 스태그플레이션 감내해야

두 교수는 지금 같은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경우 인플레는 충분히 잡힐 것으로 봤다. 하지만 금리 인상 효과가 실물경제에 닿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경기침체와 고물가 현상이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단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래미 교수는 “지금처럼 강력한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 물가는 결국 잡히겠지만, 1년 이내 단기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은 감내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고로드니첸코 교수 역시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본다”며 “아직 낮은 미국의 실업률도 아마 곧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강(强)달러 현상으로 주요국 통화 가치가 일제히 급락하면서 불거진 글로벌 외환위기 우려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래미 교수는 “1981~1982년에도 연준이 급격히 금리를 올리며 발생한 달러 강세 현상이 문제가 됐지만 글로벌 외환위기로 번지진 않았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며 각국의 체력이 많이 나아졌고, 수출 측면에선 이득이기 때문에 크게 우려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고로드니첸코 교수는 “유럽중앙은행(ECB)만 해도 (미국의) 금리가 계속 오를 경우 유럽의 많은 정부가 심각한 문제를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며 “저금리 시기 정부·기업·가계는 많은 대출을 받았고, 부채가 많은 나라들은 금리 인상에 민감한 만큼 글로벌 외환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중앙은행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는 것이 참 아쉽다”며 “이런 문제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저출산에 발목 잡힌 한국 경제

세계 경제의 장기 전망에 대해서는 생산성 증가 둔화와 고령화가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래미 교수는 “이 두 가지 요인 때문에 선진국의 잠재 성장률은 점점 떨어질 것”이라며 “특히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지정학적 위험이 촉진한 탈세계화와 리쇼어링(생산 기지 본국 회귀)이 생산성 하락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출산 국가의 대명사인 한국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래미 교수는 “캐런 다이넌(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의 논문을 통해 알게 됐는데 한국은 출산율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모두 낮았다”며 “여성 입장에서 볼 때 경제활동과 출산 및 양육 활동은 일종의 대체 관계(trade-off)인데, 한국 여성들은 왜 둘 다 하지 않는 것인지 경제학자 시선에서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얼른 그 배경과 원인을 찾고 해결해야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는 취지다. 실제로 한국의 출산율은 작년 기준 0.81로 전 세계 꼴찌를 기록했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역시 작년 기준 59.9%로 OECD 평균인 64.8%보다 낮다. 다이넌 교수의 논문은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낮은 배경으로 경력단절 현상 등 한국 노동시장의 성차별을 지적했다.

두 교수는 이번 조락교경제학상 수상으로 각각 1억원의 상금을 받게 됐다. 상금 사용 계획을 묻자 래미 교수는 웃으며 “지금 타고 있는 차량이 19년 정도 돼서 바꾸려고 하는데 테슬라(전기차) 아니면 하이브리드차를 사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고로드니첸코 교수는 아직도 전쟁에 시달리는 고국을 떠올렸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다닌 대학(키예프-모힐라 아카데미 국립대)이 전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상금은 모교에 전액 기부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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